"아빠 저리 가" 왜 아이들은 아빠를 안 좋아할까
"아빠 저리 가" 왜 아이들은 아빠를 안 좋아할까
  • 칼럼니스트 김경옥
  • 승인 2018.12.13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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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 나는 믿는다, 몰입의 힘을

"아이가 엄마를 좋아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아이 아빠는 종종 이런 말을 했다.

"그렇지 않겠어? 열 달을 배 속에서 함께 생활했는데, 한 몸이었는데 어떻게 끌리지 않을 수가 있겠어. 그러니까 늘 아빠는 엄마에게 질 수밖에 없는 거야."

아이는 엄마인 나를 잘 따른다. 엄마와 노는 것을 좋아하고 엄마와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엄마가 옷도 갈아입혀 주어야 하고 엄마가 치카도 해줘야 하고 응아를 할 때에도 엄마를 부른다.

그러니 잠을 잘 때는 어떻겠는가. 엄마와 둘이 누워 있다가 아빠가 슬쩍 와 한편에 몸을 누이면 당장에 "아빠, 저리 가."를 외친다. 그러면 아빠는 서운함과, 한편으로는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이 생긴다는 해방감이 묘하게 어린 눈빛을 내게 보내며 방문을 닫고 나간다.

내가 일을 마치고 늦게 집에 들어간 어느 날이었다. 아이와 남편이 따로 잠을 자고 있었다. 아이는 침대 밑에서 그리고 남편은 침대 위에서. 워낙 겁이 많은 아이라 잠잘 때 꼭 누가 옆에 있어야 하는 아이인데, 그 광경이 희한해서 다음 날 아이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는 침대 위로 올라가서 자래. 자기 옆에 오지 말래."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아이 아빠는 스스로 결론을 내버렸다. '아이와 엄마는 각별한 사이이다. 열 달을 한 몸으로 살았으니 그러할 것이다. 그러니 아빠는 엄마보다 늘 뒷전인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그럴까? 정말 그게 이유였을까?

한 지인이 SNS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백일도 채 안 된 아기가 아빠의 품에 안겨 곤히 잠을 자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남긴 짧은 그의 한마디.

"3년 전 뭣 모르고 내 배를 침대 삼아 꿀잠 자던 녀석의 요즘 아침인사는 '아빠! 저리 가!'이다."

그의 글을 읽고 (모든 아빠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다들 참 비슷하게 산다, 싶었다.

어느 날 남편이 책 한 권을 손에 들었다. 아빠의 육아 방식에 대한 책이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육아 관련 서적을 뒤적이나 싶었는데, 그 책을 읽고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아이가 아빠를 찾는 횟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이 아빠가 말했다.

"그 책에서 보니까 아이와 놀아줄 때 집중을 해야 한대."

그러고 보니 남편이 아이와 놀아주는 태도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동안 아이 아빠는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아빠 이거 봐요. 멋지죠?" 하면 "응, 그러네~ 멋지다~" 영혼 없이 입으로만 놀아주었다. 가끔은 텔레비전을 켜놓고 눈은 그것을 주시하면서 입은 아이와 말하는 이상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변했다. 그가 철이 든 것이다! 아이가 로봇을 가지고 오면 자신도 로봇 하나를 꺼내 악당 역할을 열심히 해낸다. 매번 정의로운 로봇에게 얻어터지고 온갖 모욕적인 말을 듣지만 그는 잘 견뎌내고 있다. 참으로 기쁘고 기특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여전히 잠을 잘 땐 엄마 곁이어야 하고 "엄마가 해줘."라는 말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에는 나보다는 아빠를 많이 찾는다. 그리하여 나에게 자유가 생겼다. (올레!) 아이와 남편이 저쪽 방에서 로봇으로 전쟁을 치를 때, 거실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는 감격스러운 시간이 나에게 생긴 것이다.

그의 몰입은 나에게 자유를 선물한다.
그의 몰입은 나에게 자유를 선물한다 ⓒ김경옥

또 한 번 몰입의 힘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이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누가 자신과 즐겁게 진심으로 놀아주고 있는지 말이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내 앞에 누군가가 영혼 없는 눈빛으로 의미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을 때 그 얼마나 헛헛하던가. 뒤돌아 나오면서 '내가 괜한 소리를 했나' 싶어 입안이 쓰디쓰지 않던가.

아이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아이와 함께 있는 그 시간만큼은 (맞벌이 부모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사실 길지도 않다) 최선을 다해 아이의 놀이에 몰입해야 한다.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놀아야 하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의 길고 짧음보다 중요한 것은 '깊이'이다.

*칼럼니스트 김경옥은 아나운서로, ‘육아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일하는 엄마, 육아하는 방송인’이다. 현재는 경인방송에서 ‘뮤직 인사이드 김경옥입니다’를 제작·진행하고 있다. 또한 ‘북라이크 홍보대사’로서 아이들의 말하기와 책읽기를 지도하는 일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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