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수린이의 소망, '작은이들의 행복한 세상'
아홉 살 수린이의 소망, '작은이들의 행복한 세상'
  • 칼럼니스트 김정은
  • 승인 2018.12.1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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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그림 엄마글] 말 트임이 늦었던 딸의 그림 이야기

“엄마, 집은 왜 사유재산이에요?”

열 살 수린이가 물었습니다. 사유재산? 열 살 아이와의 대화에 어려운 단어가 등장해서 순간 당황했습니다. 놀란 눈으로 쳐다봤더니 아이가 다시 물었습니다.

“도서관이나 학교는 사유재산이 아니잖아요. 왜 집은 사유재산이에요?”

‘그래. 집이 사유재산이 아니면 얼마나 좋을까? 2년마다 전세금을 올려주지 않아도 되고. 그러고 보니 전세계약 만료가 다가오고 있잖아? 이번엔 얼마나 더 올려달라고 할까? 그 큰돈을 또 어디서 구한담? 아이고, 이게 벌써 몇 번째야? 이 동네로 이사온 지 이제 겨우 8년인데, 그동안 이사를 네 번이나 했잖아. 2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다닌 셈이네.

아유, 집을 비워달라고 하면 이 추운 날 집 보러 다녀야 하는데..., 큰일이야. 그래. 집 비워달라고 하는 것보단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하는 게 외려 낫겠어. 집 구하기도 어렵고, 이사하기는 더 힘들고, 이사 비용도 만만치 않고... 그나저나 집이 왜 사유재산이냐고? 이 아이가 혹시 내 걱정거리를 눈치 챈 걸까?!’

온갖 걱정거리로 정신이 안드로메다에 가 있을 때, 수린이가 불렀습니다.

“엄마, 엄마?”

“으응, 응?”

“엄마, 날씨가 점점 더 추워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걱정이에요.”

열 살 수린이의 걱정은 이랬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거리의 노숙자 아저씨들이 걱정이라고요. 집에 있어도 추운데 집 밖은 얼마나 추울까요? 노숙자 아저씨들 옷이 얇아서 찬바람이 숭숭 몸속으로 들어갈 테고요. 밤이면 더 추워지니까 맨 바닥에 종이박스를 깔고 신문지를 덮고 자다가 얼어 죽을지도 모르잖아요. 눈이 내리는 날엔 종이가 축축해지고 옷도 다 젖을 텐데, 꽁꽁 어는 건 아닌지 너무너무 걱정이라고요.

“그렇구나. 정말, 얼마나 추울까?”

안드로메다에서 돌아오자마자, 새로운 걱정에 휩싸였습니다.

“이 집은 누구 것 저 집은 누구 것이 아니라, 집도 학교나 도서관처럼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열 살 수린이 말에 맞장구를 쳤습니다.

작은이들의 행복한 세상(9세 그림). ©유수린
작은이들의 행복한 세상(9세 그림). ©유수린

열 살 수린이가 아홉 살 때 그렸던 그림을 가져왔습니다. ‘작은이들의 행복한 세상’이랍니다. 작은이들이 사는 세상에는 뭉게뭉게 구름 낀 하늘 아래 맑은 강이 흐르고, 길가에 가로수가 빼곡히 심어져 있습니다. 

왼쪽 맨 앞 노란색 건물은 ‘누구나 무엇이든 학교’입니다. 배우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곳이랍니다. 학교 바로 뒤에 있는 작은 집은 ‘아무나 개집’입니다. 아무 개나 살 수 있습니다. 개집 바로 뒤에 있는 ‘모든 신 교회’는 어떤 신이든 믿을 수 있는 곳입니다.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알라신이든 누구나 자신이 믿고 싶은 걸 믿으면 됩니다.

교회 뒤에 있는 ‘그냥 써 슈퍼’에서는 물건을 팔지 않습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그냥 가져가서 쓰면 됩니다. 종이에다 사용할 물건의 이름과 사용기간을 쓰고, 그 기간 동안 물건을 쓰고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기만 하면 됩니다. 그림에는 너무 작아서 잘 안 보이지만 그림의 정중앙에 ‘무엇이든 음식점’이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이면 누구나 들어가서 음식을 먹으면 됩니다. 음식을 집으로 가져가도 됩니다.  

오른쪽 맨 앞에 있는 집이 바로 누구나 살 수 있는 ‘누구나 집’입니다. ‘누구나 집’이 있어서 ‘작은이들의 행복한 세상’에는 노숙자가 없습니다. 집이 사유재산이 아니어서 집주인도 세입자도 없습니다. 누구나 집 바로 뒤에 있는 ‘마음껏 도서관’은 원하는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마음껏 도서관 바로 뒤에는 한창 공사 중인 건물이 있습니다. 어떤 건물이 들어설지 궁금합니다.

수린이 덕분에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었지만, 희망도 생겼습니다. 거주권이 보장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꾸자꾸 상상하고, 상상한 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림이 현실이 되도록 조금씩 노력한다면 머지않아 상상이 현실이 되는 날이 오겠지요. 아홉 살 수린이의 걱정이 사라진 ‘작은이들의 행복한 세상’이 얼른 왔으면 좋겠습니다.

*칼럼니스트 김정은은 글 쓰는 엄마입니다. 다년간 온 가족이 함께 책을 읽은 경험을 담은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2016)과 엄마와 두 딸의 목소리를 담은 「엄마의 글쓰기」(2017)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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