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 잡고 3초만 기다려주세요" 
"문고리 잡고 3초만 기다려주세요" 
  • 기고 = 정신숙
  • 승인 2018.12.1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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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정신숙 인구보건복지협회 서울지회 본부장 

"너 결혼 안할거니? 나도 안할건데. 언제 돈 벌어서 집 사고 아기 키우니? 아기는 누가 키우고? 애 키우는데 돈도 많이 든다던데, 그냥 나 혼자 여행 다니고 자유롭게 살지 뭐."

우연히 20대 청년 둘의 대화를 들었다. 청년들은 상가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같았다. 기성세대인 내가 듣기엔 매우 당황스러울 정도로 말투가 단호했다. 

'지금은 그렇지만 나이 들면 외롭기도 하고 쓸쓸해서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갖고 싶을 거야.'

내 생각은 여기까지였다. 그들의 생각에 쉽게 공감하지 못했다. 청년들의 다음 대화는 이랬다.

"집에서는 결혼 안하냐고, 어디 취직했냐고 하도 물어봐서 고향도 안내려가."

나는 어느새 그들의 현실적인 고민에 수긍했다. 소위 '결혼적령기'가 되면 결혼을 하고, 임신과 출산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기성세대인 '나'의 가치관과 배치하는 순간도 접하게 됐다.

물론 이들이 2030세대를, 나 또한 기성세대를 전부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의 고민거리는 모든 세대가 공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화를 듣다 문득, 나름 저출산 대책사업을 10년 넘게 해왔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그간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출산을 장려하는 민간단체로 일과 가정의 양립, 결혼,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렇지만 오늘날 젊은 세대는 비혼이 만연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기를 낳지 않은 채 부부만의 삶을 택하는 가구가 증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정부와 지자체, 민간단체들은 노력을 하지 않은 걸까? 매년 정부와 지자체의 저출산 대책 예산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많은 저출산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2017년 현재 합계출산율은 1.05명까지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연말이면 어떤가. 저출산의 해법을 찾겠다는 토론회와 포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근본 문제부터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지는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젊은이들의 대화에 모든 문제가 함축되어 있는 듯하다. 이들이 고민했던 문제는 고용, 육아, 양육비용이다. 물론 다양한 이유가 더 있겠지만 침체된 경기로 인한 취업의 문제, 육아전쟁, 자녀의 사교육비 부담 등은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하는 큰 요인일 것이다. 이런 문제는 사회전반적인 변화를 필요로 한다. 다만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해결된다 해도 출산율이 갑자기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자녀 양육에 필요한 경제적 부담해소를 위한 정책과제는 당연히 구체적이고 지속적으로 수립·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임신·육아에 대한 친화적인 문화를 조성하는 것은 일상에서부터 꾸준히 이뤄져야 할 부분이다. ⓒ베이비뉴스 
자녀 양육에 필요한 경제적 부담해소를 위한 정책과제는 당연히 구체적이고 지속적으로 수립·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임신·육아에 대한 친화적인 문화를 조성하는 것은 일상에서부터 꾸준히 이뤄져야 할 부분이다. ⓒ베이비뉴스 

그럼 무엇이 더 필요할까? 답은 '배려'에 있다.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임산부나 육아 중인 이웃을 배려하는 문화를 사회 전반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지인의 딸이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왔을 때의 일이다. 지인의 딸이 유모차를 끌고 가는데 아무도 문을 잡아주지 않더란다. 외국에서는 유모차를 갖고 다니면 주변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나 출입문의 문을 열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당연한 에티켓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빠르게 문을 닫아버린다고. 3초만 문을 잡고 기다려준다면 유모차를 멈추고, 출입문을 열고, 다시 유모차를 끌고 가는 번거로움을 겪지 않아도 될텐데, 그 배려의 힘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감이 많이 가는 얘기였다.

2017년에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저출산에 대한 국민인식조사를 한 결과 저출산의 원인으로 자녀양육의 경제적 부담(64.3%)과 ,일과 육아 양립 문화의 어려움(33.3%)을 꼽았다.

저출산 해결을 위한 정책으로는 출산 및 육아지원 확대를 가장 높게 꼽았으며, 30대와 50대에서 일과 가정 양립 기업문화 개선, 결혼과 가족에 대한 가치관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원인과 대책에서 육아지원 확대와, 일과 육아 양립 문화의 어려움이 공통적으로 제시된 것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자녀 양육에 필요한 경제적 부담해소를 위한 정책과제는 당연히 구체적이고 지속적으로 수립·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임신·육아에 대한 친화적인 문화를 조성하는 것은 일상에서부터 꾸준히 이뤄져야 할 부분이다. 

육아를 힘들게 하는 흔한 말부터 줄여보자. 가까운 사이에서 무심코 던지는 말들이 육아를 더 지치게 한다. 가정에서는 “육아는 엄마 전문이잖아”라고 육아를 당연히 엄마의 몫으로만 돌리는 말, “오늘 일 끝나고 회식, 다들 괜찮지?”같은 직장상사의 갑작스러운 회식 공지 등은 삼가야 한다.

임산부를 위한 많은 배려도 잊지 말자. 대중교통 임산부 배려석은 비워놓고, 임산부 우선 주차장을 비롯해 공공시설에서부터 임산부를 위한 공간에 우선순위를 배정하는 등의 작은 배려가 임산부에게 큰 힘과 행복을 줄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혼자하면 힘든육아, 함께하면 든든육아’는 좋은 슬로건이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서울지회 정신숙 본부장은 저출산 인식개선 및 가족 친화적 출산 양육 환경조성사업과 취약계층의 생식보건, 건강증진 사업을 위한 가족보건의원을 총괄하고 있다. 또한 서울 저출산극복 사회연대회의 참여단체 실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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