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의 고민, 책 속에 답 있을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의 고민, 책 속에 답 있을까?
  • 칼럼니스트 한희숙
  • 승인 2018.12.2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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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 육아일기 한 줄] 걱정을 덜어주는 그림책 읽기

어린이집 하원 시간,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아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다. “왜 그래?” 이유를 물어보니 친구 누구누구와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다. 친구가 같이 놀자고 하기에 원래 같이 놀던 친구랑 셋이 놀자 했는데 선생님께 이른다며 으름장을 놓았다는 것이다.

점토놀이를 하는데 다가와서 자꾸만 무얼 만들어달라고 재촉하는 친구 때문에 불편한 일도 있었단다. 분홍색 양말을 신고 갔더니 남자가 여자 양말을 신었다고 놀림을 받았다고 할 때도 있고, 제 소지품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친구 때문에 귀찮았다는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일주일에 두세 번쯤 아이는 이런 사건을 이유로 어두운 얼굴을 하고 하원한다.

아이가 속상했다며 털어놓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어른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 싶은 것들이다. 그럼에도 아이는 그 상황에서 받아치지 못하고 쉽게 상처받는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슬펐겠어?”라며 자기의 감정에 지지해달라고 호소한다. “속상했겠다” “왜 그랬을까?” 같은 말로 아이가 느꼈을 감정에 공감하고 다음에 친구와 그런 일이 생기면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고 엄마 딴에는 최선을 다해 설명한다.

내 말을 듣고 아이가 근심을 털어내면 좋으련만 고민이 길어질 때도 있다. 아이는 이다음에 엄마가 알려준 대로 말을 못할까 걱정이고, 아무리 말해도 친구가 우길까 걱정이다. 인내심을 갖고 차분히 답해도 아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이어갈 때면 솔직히 짜증도 나고 답답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엄마의 대답이 아이에게는 명쾌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질문이 끝나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아이의 고민이 깊음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여섯 살 아이의 친구 관계는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친구가 중요해지는 나이다 보니 친구와 갈등이 생기면 더 크게 받아들이기에 엄마로서 도움을 주고 싶은데 어렵다.

소꿉놀이에서 번번이 아기만 맡게 되어 속상했다는 이야기, 아이의 물건을 빼앗고 제 것처럼 쓰는 친구가 있다는 이야기, 한글을 못 뗐다고 바보라고 놀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말 한 마디가 조심스러워진다. 그러다 보니 아이에게 매우 심각했을 걱정과 질문에 궁색한 답을 내놓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엄마인 내가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음을 느낀다.

이름 석 자 중 한 글자를 온전히 쓰지 못해 고민하는 우리 아이를 위해 「걱정 먹는 도서관」(김응·김유, 하늘을나는교실, 2017년)에서 슬쩍 답을 찾아본다. 이 책을 쓴 두 작가는 아이들로부터 고민을 듣고 이에 응답하는 편지를 썼다. 책 속에는 아이들의 생생한 고민과 작가의 다정한 위로와 조언, 격려가 함께 담겨 있다.

우리 아이는 제 뜻대로 글자가 안 써진다고, 색종이 자르기가 저만 엉성하다고 때때로 낙심한다. 그럴 때 나는 네가 안 해봤고 해봤더라도 남들보다 횟수가 적어서 어려움을 겪는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조금만 더 해보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못해도 된다는 말은 맨 마지막이다. 글씨 쓰기와 종이 자르기 연습을 통해 문제 자체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걱정 먹는 도서관] 의 한 장면
「걱정 먹는 도서관」의 한 장면 ⓒ하늘을나는교실

「걱정 먹는 도서관」에서 작가는 비슷한 고민을 겪는 아이에게 “나는 빠른 것보다 느린 걸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 못하는데 잘할 수 있다고 밀어붙이지 않는 다정한 위로다. 숙제와 시험이라는 과업을 성취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아이에게 “느린 걸 좋아하는 거북이가 토끼처럼 빨라지면 행복도 커질까?”라고 묻는다.

행복의 기준이 다른 데 있음을 알려주고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한다. 빠른 거북을 꿈꾸는 ‘꾸물이’가 나오는 그림책 「슈퍼 거북」(유설화, 책읽는곰, 2014년)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아이들에게 친숙한 그림책을 통해 위로와 조언을 전하니 아이로서는 더 가깝고 구체적으로 느끼는 게 당연하다.

물론 아이의 걱정을 해소할 지혜가 전부 책 속에 있을 리 없다. 책 속에서 문제 해결의 열쇠를 얻었다고 해도 행동으로 옮기고 변화를 이끌어내기까지 지난한 과정도 남아 있다. 사실 직업 특성상 아이를 낳고 키우기 전부터 육아서를 접할 기회가 남들보다 많았다. 그 덕에 육아서를 두루두루 읽었지만 내 아이에게 적용하기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육아의 보편적인 지혜는 얻을 수 있었을지 몰라도 각자의 특수성 때문에 결국 엄마가, 그리고 아이가 상황에 맞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수두룩했다. 아이와 관련된 크고 작은 고민을 풀기 위해 책도 뒤졌지만, 인터넷상에서 같은 고민을 겪는 이들과 이야기도 나눴고 가까운 육아 선배들을 붙들고 하소연도 했다.

그래도 분명한 사실은 책읽기를 통해 내가 고민했던 문제에 대한 길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 해결의 여러 가지 방법 중 책도 한 가지 길임을 아이가 배웠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 아이가 때때로 그림책을 읽고 친구 문제는 물론이고 살면서 맞닥뜨리게 될 다양한 일들을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얻기를 바란다.

좋아하는 만화가 바뀐 뒤 아이는 새 장난감을 구입할 기회를 노리는 중이다. 그럴 때면 아이와 읽었던 그림책 「빨간 오토바이 사줘」(미셸 피크말, 국민서관, 2010년) 이야기를 꺼낸다. 다 갖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가 알기 바랐던 엄마와 피콜로의 에피소드를 나누면서 아이는 장난감을 향한 욕심을 참는다.

이렇듯 아이와 함께 읽은 그림책은 육아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줄 때가 있다. 날마다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문제와 걱정이 쌓인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펼쳐본다. 우리 앞에 놓인 걱정과 고민을 풀 작은 실마리가 지금 펼치는 책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으므로.

*칼럼니스트 한희숙은 좋은 그림책을 아이가 알아봐 주지 못할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엄마이다. 수년간 편집자로 남의 글만 만지다가 운 좋게 자기 글을 쓰게 된 아기엄마이기도 하다. 되짚어 육아일기 쓰기 딱 좋은 나이, 여섯 살 장난꾸러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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