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생은 명탐정] 움직이는 사자상 사건 1-1
[전학생은 명탐정] 움직이는 사자상 사건 1-1
  • 소설가 나혁진
  • 승인 2019.01.08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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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혁진 어린이 추리소설 '전학생은 명탐정' 3장

영지와 인터뷰를 하고 사흘이 지났다. 처음에는 내 얘기가 신문에 어떻게 나올지 몹시 궁금했다. 하지만 반이 다른 탓에 며칠째 영지의 얼굴도 못 봤고, 별다른 설명도 없어서 차츰차츰 인터뷰를 했던 사실 자체를 잊게 되었다. 물론 그동안에도 밤이면 밤마다 악몽을 꾸었고, 낮에는 아이들의 호기심 섞인 수군거림이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목요일 아침, 여전히 잠을 설쳐 뒤숭숭한 기분으로 학교에 갔다. 등교 시간인 8시 40분에서 10분을 남겨놓고 헐레벌떡 도착해 땀을 닦고 있는데, 반 아이들의 분위기가 왠지 이상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나와 얘기라도 나누면 자기들도 나처럼 무서운 일을 당할 거라 걱정했는지 멀리서 속닥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나를 손가락질하며 킥킥 웃는다거나 대놓고 휘파람을 불면서 나를 놀리는 게 아닌가. 심지어 짝 세영이는 나한테 무슨 냄새가 나는 것처럼 코를 싸쥐는 시늉을 하더니 책상을 들어 나와의 거리를 최대한 넓게 벌리기까지 했다.

나를 둘러싼 기묘한 분위기에 눈만 깜박거리는 내가 안쓰러웠나 보다. 그나마 친한 재호가 내 자리로 다가와 뭔가를 건넸다. 자세히 살펴보니 흰 종이 4장을 스테이플러로 묶은 것이었다. 맨 앞장 위에 굵은 글씨로 ‘우학 뉴스 제5호’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제야 이 종이들이 영지가 내는 신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영지가 동네 복사가게에서 수십 부를 미리 만들어놓고 학교 앞에서 500원에 팔더라.”

아하, 재호를 포함한 애들은 등굣길에 영지한테서 신문을 샀지만 나는 너무 늦게 오는 바람에 영지를 못 봤구나. 재호가 뭐라고 말을 더 하려 했지만 손을 흔들어 재호를 쫓아버렸다. 얼른 내 인터뷰를 찾아보고 싶어서 잠시도 견딜 수 없었다.

내 인터뷰는 특종인 만큼 맨 첫 장에 실려 있었다. 영지가 직접 가서 찍었는지 끔찍한 사자상도 사진으로 실려 있었는데, 사진으로만 봐도 온몸이 떨릴 만큼 무서웠다. 그 사진 밑에 ‘학교 7대 불가사의 : 움직이는 사자상’이라는 제목으로 사흘 전에 내가 영지에게 했던 얘기들이 낱낱이 쓰여 있었다. 큰아버지가 제삿밥을 먹인 얘기랑 용수 형이 사자상 입에 대추를 놓고 오면 타이탄X를 준다는 얘기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대충 넘기고 그다음부터 한 글자씩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학교 7대 불가사의 : 움직이는 사자상’

3학년 1반 박용재가 겪은 일.

ⓒ베이비뉴스
ⓒ베이비뉴스

내가 1학년 때부터 우리 우학초등학교에는 7대 불가사의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사촌 형들이 주로 그런 얘기를 해줬는데, 아무도 없는 음악실에서 밤새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거나 과학실의 해골 모형이 진짜 사람 뼈라는 얘기 등이었다. 재미있는 건 형들이 말해준 불가사의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서 나중에는 거의 스무 개가 넘었다는 것이다. 그럼 우학초등학교 20대 불가사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움직이는 사자상’ 얘기만큼은 누가 말해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 우리 학교 뒷산을 오르내리는 계단 옆에 늠름하게 자리 잡은 돌사자상 말이다. 웬만한 어른보다 커다래서 가끔 용감한 아이들이 등에 타고 놀아도 끄떡없는 그 무거운 사자상이 밤만 되면 깨어나서 학교 부지를 돌아다닌다는 전설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사자상 전설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 낮에도 그쪽은 잘 가지 않는다. 하물며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밤에 혼자 거길 가서 사자 입에 대추를 놓고 오라니. 이건 용수 형이 타이탄X를 주기 싫어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는 게 분명하다. 그러자 너무 분하고 속상해서 눈물이 났다. 큰아버지가 분명 나한테 준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는데!

내가 엉엉 울자 용수 형은 난처한지 어쩔 줄 몰라 했다. 용수 형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이, 울지 마. 줄게. 줄 테니까 그만 뚝.”

용수 형의 말에 나는 눈물을 애써 참고 형을 바라보았다. 내 눈물이 멈춘 걸 확인한 용수 형이 한쪽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

“그냥 주면 재미없잖아. 어차피 오늘 밤에 할 것도 없고. 말 나온 김에 진짜 사자상이 움직이는지 우리가 한번 확인해보자.”

내가 다시금 기겁을 하자 용수 형은 유천이와 함께 가줄 테니 하나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혼자가 아니라 셋이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지기는 하지만 완전히 괜찮은 건 아니었다. 여전히 무섭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그래도… 타이탄X를 너무 갖고 싶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이 토요일이라서 남자 어른들은 제사가 끝남과 동시에 안방에서 술을 마시느라 정신이 없었고, 엄마(엄마는 어머니라고 부르라고 하지 않아서)를 비롯한 여자 어른들은 거실에 모여 커피를 마시며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우리 셋이 나가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학교까지는 우리들 걸음으로 10분이면 충분하다. 밤 12시에 우리끼리만 나가는 게 생전처음이라서 왠지 흥겹고 모험을 떠나는 기분마저 들었다. 어두운 밤거리를 걸어도 확실히 셋이니까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까지 반쯤 남았을 때 머리 위에 후드득 차가운 빗물이 떨어졌다. 하필 이런 때 비라니 정말 되는 일이 없다. 빗방울이 꽤나 굵은 게 한두 방울 오고 말 비가 아니라 엄청 많이 쏟아질 비였다. 금세 어깨까지 젖은 내가 말했다.

“형, 비 오는데? 어떡하지?”

뾰족한 수가 없는 용수 형도 당황한 눈치였다. 잘하면 사자상에 안 가더라도 타이탄X를 받을지 몰라 더 우는소리를 해봤다.

“형, 그냥 집에 가자. 내가 안 가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비가 이렇게 많이 오잖아.”

안타깝게도 짜릿한 모험을 중단하기 싫었던 용수 형이 꾀를 내었다. 길가에 수북하게 쌓인 쓰레기에서 비교적 깨끗한 비닐봉지와 신문 등을 골라내더니 나와 유천이에게 머리 위에 쓰라고 건네주었다.

“야, 학교까지 조금만 가면 되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되지.”

용수 형이 먼저 신문으로 머리를 가리는 시범을 보이며 말했다. 유천이도 별 투정 없이 따라하니 나만 버틸 재간이 없었다. 나는 파란색 비닐봉지를 머리 위에 뒤집어썼다. 용수 형은 우리들 모습이 정글을 누비는 탐험가 같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영락없는 거지꼴이었다.

*소설가 나혁진은 현재 영화화 진행 중인 「브라더」(북퀘스트, 2013년)를 비롯해 모두 네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조카가 태어난 걸 계기로 아동소설에도 관심이 생겨 '전학생은 명탐정'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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