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공부하러 갑니다
내 아이를 공부하러 갑니다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9.01.1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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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아빠 없는 한 달 살기의 시작

올해 아홉 살 윤이(가명)가 그린 엄마 그림이다. 성난 상어처럼 이빨이 사납다. 그림을 보자마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엄마를 왜 이렇게 무섭게 그렸어?"라고 물으니 자기한테 엄마는 늘 그런 표정이란다. '아닌데…' 억울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러다가 '내가 진짜 그랬나?' 반성도 해본다.

올해 아홉 살 윤이(가명)가 그린 엄마 그림 ⓒ최은경

아빠 껌딱지 윤이는 사실 내가 뭘 해도 그저 그런 반응이다. 엄마 없이는 살아도 아빠 없이는 못 산다는 아이니까. 지난가을 아빠가 출장 가고 없는 2주 동안이 걱정된 건 그래서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떨어져 지낸 적이 없는데… 그랬는데 아빠 없이도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았다. 그걸 보며 '괜한 걱정이었군' 했다. 그렇게 4일까진 좋았는데 아니었다. 올 것이 왔다.

"아빠 오면 다 이를 거야. 나한테 사자머리 했다고 한 거랑, 이거도 저거도 안 된다고 한 거… 아빠 오면 다 이를 거야."

"엄마… 아빠가 못 돌아오면 어떡해? 죽으면 어떡해? 아빠가 죽으면 산타할아버지한테 살려놓으라고 기도해야지."

멀쩡한 아빠가 죽으면 어떡하냐니… 아빠가 회식으로 늦어질 때면 가끔 이런 말을 해서 당황한 적이 있다. 윤이에게 왜 이런 불안이 생긴 걸까. 정말 내가 문제인 걸까. 윤이에게 말해놓고 아차 싶을 때가 있다. 진이(큰아이 가명) 키울 때는 잘하지 않던 말들이 거침없이 나와 후회할 때도 있다. 이런 게 엄마 권력인 걸까. 엄마라서, 엄마니까 이래도 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에 나조차 놀랄 때가 있다.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쩨쩨하게 안 할 때도 있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문제라서 그렇다는 말도 많이 했다. 윤이가 아빠 껌딱지라는 이유로 많은 일을 아빠에게 미룬 것도 사실이다. 어찌 보면 이 모든 게 내 행동의 결과라는 게 더 암담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마음이 더 많이 들었다. 당장 아이에게 섭섭한 걸 떠나 불안한 마음, 이대로 나에게로 향하는 문이 닫히면 어쩌나 하는 그런 마음이. 그래서 결정한 육아휴직이었음에도 회사 내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일을 정리하는 마지막 날까지 홀가분한 마음은 아니었다. 그런데, 12월 마지막으로 출근하던 날, 후배와 차를 마실 때였다.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점점 더 그런 생각이 들어요."

후배는 회사 걱정에서 한 말이었지만, 미안하게도 내겐 그 말이 '전혀' 다르게 들렸다. 

'그래 시간이 없다. 아이들과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다. 이제라도 육아휴직을 결정하길 잘했다. 큰아이는 6학년, 작은아이는 2학년… 큰아이도 내년이면, 작은아이도 몇 년 후면 내 품을 떠나겠지? 아이들이 나를 기다려주지는 않을 테니까. 내가 먼저 그 시간을 만들어야지.' 

물론 나도 육아휴직으로 인한 내 커리어가, 회사 문제가 걸리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런데 어느 책에 '괴로움을 버리는 연습'이라면서 이렇게 써놨더라.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인가?

그렇다면 해결하자.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인가?

그렇다면 내버려두자."

같은 질문을 나에게 해봤다. 회사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고 아이들과의 문제는 어느 정도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질 거라는 믿음이 내겐 있었다.

어느 글에서도 그랬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면 육아서가 아닌 내 아이를 공부하면 좋겠다고. 남이 아닌, 내 가족 중심의 육아를 하라는 말이었다. 육아휴직을 결정하는 데, 그리고 아빠 없는 한달살이를 결정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 말이다. 윤이를 더 잘 알고 싶다. 또 엄마인 나를 윤이에게 좀 더 알려주고 싶다. 사서 고생하는 한달살이의 시작이었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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