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곳곳에 한유총 '기시감'… 정부정책 늦추자는 국책연구소
[단독] 곳곳에 한유총 '기시감'… 정부정책 늦추자는 국책연구소
  • 김재희 기자
  • 승인 2019.01.2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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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 어린이집 전환·감사 유예' 제안 보고서 낸 육아정책연구소

【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사립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 추진 시 사인사립유치원을 어린이집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하거나 감사 유예기간을 두는 것을 고려하자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가 나왔다. 이미 지난해 10월 정부가 발표한 유치원 공공성 방안보다도 후퇴한 수준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같은 내용은 육아정책연구소(소장 백선희)가 지난 11일 공개한 육아정책브리프 73호 ‘사립유치원, 회계투명성을 넘어 공공성을 확보해야’에 담겨 있다.

이 보고서는 “사립유치원의 회계투명성과 공공성 강화 방안의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향후 보완하거나 고려할 사항을 중심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작성 의도를 밝혔다. 보고서를 발행한 육아정책연구소는 국무조정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국책연구기관이다.

지난 11일에 공개된 육아정책연구소의 육아정책브리프 73호 '사립유치원, 회계투명성을 넘어 공공성을 확보해야'. ⓒ육아정책연구소
지난 11일에 공개된 육아정책연구소의 육아정책브리프 73호 '사립유치원, 회계투명성을 넘어 공공성을 확보해야'. ⓒ육아정책연구소

◇ 회계투명성 핵심인 에듀파인 도입에 “한계 감안해야”

보고서는 국가회계시스템 에듀파인 도입 시기를 두고 “사립유치원의 회계전문성 및 행정인력의 한계를 감안하여 에듀파인 적용 시 현장의 혼란이 최소화되는 방향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서술했다. 

에듀파인 의무화는 사립유치원과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가 강하게 반발하는 사항이다. 한유총은 지난해 10월 18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날 교육부가 ‘처음학교로’ 참여와 ‘에듀파인’ 채택을 촉구한 것에 대해 “몸에 맞지도 앉는 옷을 입으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사립유치원에 적합한 재무·회계규칙을 입안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맞섰다.

자유한국당은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제출한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일부개정안)과 병합심사를 하기 위한 법안을 발표했다. 자유한국당의 유아교육법 개정안은 에듀파인 도입을 포함하되, 정부지원금을 보조금으로 바꾸는 방안을 제외했다. 이 안에 따르면 정부지원금은 국가회계로, 보조금은 일반회계로 관리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일반회계로 관리하는 보조금은 현행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관리하기 어렵게 된다.

이른바 '유치원 3법' 개정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정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10월 교육부는 유치원 공공성 강화방안에서 ‘유치원 에듀파인 적용’을 중점 추진 과제로 정했다.

지난 16일에는 ‘사립유치원 회계투명성 강화를 위한 에듀파인 도입계획’에서 오는 3월 200명 이상 대형 유치원 581개원을 대상으로 에듀파인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사립유치원에 에듀파인을 적용하기 위해 기능 개선을 추진하고, 전문 인력으로 꾸려진 대표 강사로 사립유치원 연수를 실시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여기에 에듀파인 컨설팅단과 0079 콜센터를 운영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처럼 정부는 에듀파인 의무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 지난해 유치원 3법 통과 여론을 주도해온 시민사회단체들은 “에듀파인 도입은 의지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대표는 “에듀파인은 신규교사도 5분이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며, “에듀파인이 어렵다고 도입을 미루자는 것은 한유총의 논리”라고 지적했다. 김경희 참여연대 간사도 “회계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하면서 에듀파인 사용을 위한 전문인력이 적으니 도입을 늦추자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연구책임자인 김동훈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에듀파인 도입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보고 있고 원칙은 시스템 도입에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에듀파인은 다양한 기능이 많은 큰 시스템”이라고 설명하면서, “에듀파인을 구동하는 국공립유치원을 방문했을 때 일반 교사나 원장님은 일이 상당히 많아져 별도의 행정직원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인용했다”고 설명했다.

◇ 정부도 타협 않겠다 했는데… ‘사립유치원, 어린이집으로 바꾸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국공립 유치원 평균 취원율은 66.9%에 달한다. 반면 한국은 1/3 수준인 21.1%에 불과하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은 지난해 10월 29일 브리핑에서 “개인이 세우고 운영하다 보니 일부에서는 ‘내 재산’이라는 생각으로 학부모가 납부한 돈도 국가가 지원한 돈도 호주머니에 들어오면 ‘내 수입’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논평한 바 있다. 

윤소하 정의당 국회의원은 지난해 11월 유치원도 초·중·고등학교, 대학교처럼 법인만 설립 가능하도록 하자는 내용을 담은 유아교육법과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당시 윤 의원은 “일부 사인 등이 경영하는 유치원의 경우 부정·비리 문제 등으로 인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실정”이라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정부는 ‘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을 발표하며 한유총과 타협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해 10월 22일 사립유치원 학부모 비공개 간담회에서 “교육부가 포기하고 타협하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한유총은 지난해 12월 1일 입장문에서 “정책에 순응할 수 있는 국민과 세금이 지원되지 않는 다른 업종으로 유아교육을 영위하려는 국민, 더는 유아교육에 매진할 수 없는 국민으로 나눠 각각에게 잔류·변화·퇴로를 제공해야 한다”며 집단 폐원 가능성을 언급했다.

육아정책연구소는 해당 보고서에서 “법인화는 유치원의 투명성 확보와 공공성의 강화에 좋은 방법이나 예산이나 유인책 부족으로 한계가 있다”며, “향후 신설 사립유치원은 법인으로만 한정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보건복지부 및 지자체 등과의 협력을 통해 사인사립유치원을 어린이집으로 전환하여 민간 위탁하거나, 일정요건을 충족할 경우 국공립어린이집 등 인건비지원시설로 장기임대하는 방식 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경희 간사는 보고서 의견에 “법인화 대해서도 예산이나 유인책 한계는 있을 수 있지만 신설에 한정하는 게 아니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평가했다. ‘사인사립유치원을 어린이집 전환해 민간 위탁을 하자’는 제안에 “정부가 공급주체로서 적극 나서야 공공성 강화라는 문제가 해결된다”며, “유치원을 보육시설로 바꾼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김동훈 부연구위원은 “사립유치원의 교육기능을 유지하면서 기타 운영비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덧붙여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타협점을 마련했다”며 일종의 ‘퇴로’ 성격의 정책제안임을 강조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해 12월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을 확정·발표했다. ⓒ교육부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해 12월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을 확정·발표했다. ⓒ교육부

◇ “처벌 위한 감사 좋지 않다” 감사에도 미온적 입장

보고서는 사립유치원 감사 실시에 대해서도 미온적인 입장을 보였다. “사립유치원이 잘못된 관행을 바꿀 수 있도록 일정 기간 자정기간을 두거나 감사유예기간을 두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감사기간 유예’는 한유총이 2017년 9월부터 요구해온 사항이다. 당시 한유총은 집단 휴업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사립유치원 누리과정 지원금 인상 ▲국공립유치원 확대 정책 중단 ▲설립자의 재산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 개정 등과 함께 사립유치원 감사를 일정 기간 유예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해 발표한 유치원 공공성 강화방안에서 교육부는 “유치원은 사립학교법·유아교육법에 따른 학교로서 ‘공공감사법’의 대상으로 정기적 종합감사 대상”이라며, “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일부 유치원의 감사 비협조가 있다”고 짚었다. 이에 따라 감사결과 공개와 고액·대형 유치원 우선 감사를 즉각 추진 과제로 삼고 진행 중에 있다.

윤소하 의원실 관계자는 “사립유치원의 잘못된 관행을 바꿀 수 있는 자정 기간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에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잘못된 관행을 지적하고 적발하는 것도 감사지만, 지도하는 것도 감사의 범위에 있다”며, “감사를 진행하면서 사립유치원에 필요한 것을 보강해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경희 간사는 “참여연대는 계속해서 사립유치원 대상 감사를 전면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면서, “유예기간을 둔다는 것은 불필요하게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 발표대로 즉각적으로 감사를 진행하는 것이 정책적 혼란을 던다는 지적이다.

김동훈 부연구위원은 위와 같은 지적에 “감사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처벌을 위한 감사는 좋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해 10월 감사결과가 발표된 후 사립유치원은 신뢰를 잃고 타격도 입었다”며, “국민의 요구를 아는 상황에서 유치원 자체적으로 자정기간을 주고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기간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연구소 내 '공공성 TF' 첫 결과물… 교육부 “연구진 의견일 뿐”

육아정책연구소는 육아정책브리프를 “육아 정책 현안에 대한 신속한 분석과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월간 현안지”라고 소개하고 있다. 논란이 된 해당 보고서는 연구소 내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 TF(태스크포스)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보고서 작성자인 김 부연구위원은 “공공성 강화 방안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는데 사립유치원과 정부 간의 갈등은 해결이 안 되는 것 같다”며, “해결 방안을 고민하다 생각한 제안 수준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교육부는 해당 보고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16일 전화 인터뷰에서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 담당자는 ‘보고서 내용과 관련해 사전 소통이 있었는지’를 묻자, “국책연구기관과 협업해 정책연구를 하지만 연구 자율성은 보장한다”며 “정부 방안과는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보고서에 대해서도 “연구는 연구진의 의견이며 정책 제안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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