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생은 명탐정] 움직이는 사자상 사건 1-2
[전학생은 명탐정] 움직이는 사자상 사건 1-2
  • 소설가 나혁진
  • 승인 2019.01.2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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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혁진 어린이 추리소설 '전학생은 명탐정' 3장

학교 옆문에 도착했을 때는 셋 다 흠뻑 젖은 생쥐였다. 아, 우리의 목적지는 처음부터 정문이 아니라 옆문이었다.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다들 알다시피 옆문은 학교 부지의 서쪽에 나 있고, 정문은 남쪽에 있다. 정문 쪽 못지않게 서쪽에도 집이나 빌라가 많아서 학생들이 편하게 다니라고 옆문을 낸 것이다.

사실 우리들의 집에서는 정문이 더 가까웠지만 정문에는 수위실이 붙어 있어 수위 아저씨가 밤새도록 감시를 하기 때문에 옆문을 골랐다. 막 도착한 옆문은 예상대로 튼튼히 잠겨 있었지만 빈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감옥처럼 세로로 쇠창살이 이어진 철문 아래에 어린이만이 간신히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땅바닥에서 문 아래쪽까지 몇 십 센티미터가량이 뻥 뚫려 있는 이 철문을 만든 사람은 어른 도둑의 침입은 경계했겠지만 설마 우리 같은 꼬마들이 밤에 몰래 학교 안으로 들어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터였다.

우리를 이곳에 끌고 온 책임감을 느꼈는지 용수 형이 제일 먼저 축축한 땅바닥에 하늘을 보는 자세로 누웠다. 비쩍 마른 용수 형이 등허리를 몇 번 움찔움찔하자 어느새 문 저쪽이었다. 다음 차례는 역시나 덩치가 작은 유천이 차례. 유천이도 별로 걸리는 것 없이 한 번에 통과였다. 문제는 제법 덩치가 있는 나였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등에 바닥을 댔다. 가뜩이나 비에 함빡 젖은 옷을 흙바닥에 뒹굴기까지 하니 말도 못하게 더러워졌겠지. 집에 가면 엄마한테 등짝을 세게 후려 맞을 게 뻔했지만 타이탄X를 떠올리며 용기를 냈다.

아니나 다를까, 볼록 튀어나온 배 부근에서 딱 걸리고 말았다. 철문 아래쪽과 땅바닥 사이에 꽉 끼어버린 내가 울상을 짓자 용수 형과 유천이가 내 두 손을 잡고 낑낑거렸다. 셋이서 한참 용을 쓰고 나서야 간신히 옆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움직이는 사자상보다 이따 집에 갈 때도 이 고생을 또 해야 한다는 게 더 무서웠다.

옆문은 운동장과 학교 건물, 딱 중간에 나 있어 사자상이 있는 건물 뒤쪽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조금만 참으면 끝이라는 마음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언뜻 옆으로 널찍한 학교 건물의 현관 쪽을 보니 죄다 불이 꺼져 음산하게 느껴졌다. 매일 오가는 건물이지만 밤에 보는 건 처음이라서 그런 것 같다. 쳐다볼수록 더 무서워져 얼른 고개를 숙이고 용수 형을 따라 건물의 왼쪽에 난 길로 접어들었다. 이 길을 따라서 쭉 가다가 오른쪽으로 한 번만 꺾으면 건물 뒤로 나갈 수 있다. 우리는 몇 초도 안 돼서 건물의 서쪽과 북쪽 면이 만나는, 건물 북서쪽 모서리에 도착했다. 비는 진작부터 억수같이 내려 우리의 옷에서는 빗물이 뚝뚝 떨어졌고, 몸이 약한 유천이는 이까지 딱딱 부딪치며 덜덜 떨었다. 용수 형 또한 유천이가 걱정되는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난 유천이 보고 있을 테니까 너만 얼른 갔다 와. 여기까지 같이 왔으면 우린 할 만큼 해준 거잖아.”

얘기가 달라진 것에 화가 났지만 꾹 참았다. 형 말대로 유천이 상태도 심각해 보였고, 지금 서 있는 이 모퉁이를 돌아서 몇 발짝만 가면 사자상이니 눈 딱 감고 얼른 다녀오자 싶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모퉁이를 돌았다.

건물 뒤쪽은 해발 217미터의 나지막한 우학산과 맞닿아 있다. 우리 동네에서 시작되어 산줄기가 근처의 여러 동네로 길게 이어지는 우학산은 등산로가 여섯 개쯤 있는데, 그중 하나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산자락에서 시작되는 수십 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본격적인 등산로와 만나 우학산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마치 우학산의 수문장과도 같은 위엄을 보여주는 사자상은 계단의 왼쪽 옆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나는 왼편에서 사자상을 똑바로 바라보며 걸음을 서둘렀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번쩍하고 빛나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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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을 순간적으로 멀게 한 밝은 빛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저쪽 멀리 보이는 집채만 한 은행나무에서 불꽃이 요란하게 튀었다. 그러고는 1초도 안 지나서 쿠르릉 쾅 하고 영화에서 본 폭탄 터지는 소리 같은 게 온 세상에 울려 퍼졌다. 그 엄청난 소리에 뒤이어 은행나무가 빠르게 앞으로 쓰러졌다.

은행나무가 땅바닥에 충돌하자 다시금 쿵 하는 거대한 소리가 났다. 사태가 그쯤 되자 안 그래도 두려웠던 나는 꼭 기절할 것만 같아서 애써 정신을 붙잡았다. 별거 아니야. 그저 벼락이 떨어져서 은행나무에 맞았을 뿐이야.

그래도 여전히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지만 간신히 주저앉지 않고 버텼다. 마음이 좀 진정되고 나서 자세히 살펴보니 벼락에 맞아 밑동에서부터 부러진 은행나무는 지금 용수 형과 유천이 기다리고 있는 학교 북서쪽 모서리의 정반대 편인 북동쪽 모서리를 완전히 가로막고 있었다. 만약에 저 벼락이 나한테 떨어졌으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하니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거세게 쏟아지는 비에 천둥번개까지 겪고 나니 더 이상 이곳에서는 1초도 있기 싫었다. 나는 최대한 빨리 주머니 속의 대추를 입에 던져 넣기 위해 사자상 쪽으로 다가갔다.

바로 그때였다. 사자상이 내 쪽 방향으로 빙그르르 움직이는 게 아닌가!

말로만 듣던 움직이는 사자상은 역시 실제였던 것이다. 마침내 사자상이 내 쪽으로 몸을 완전히 돌리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사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 본 순간, 나는 압도적인 공포에 정신을 잃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얘, 일어나! 얘야, 정신 차려봐!”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누군가 내 뺨을 찰싹찰싹 때리며 어깨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실눈을 떠보니 푸른색 수위복을 입은 수위 아저씨였다.

“아저씨… 사자상이 진짜로 움직여요….”

힘없이 말하고 나는 다시 기절했다. 그 후 수위 아저씨가 재빨리 119에 전화해주신 덕분에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나중에 들었는데, 용수 형과 유천이는 갑자기 수위 아저씨가 나타나자마자 혼날까 봐 무서워 후다닥 옆문을 향해 튀었다고 한다. 의리 없는 사촌들 같으니라고!

하지만 내가 일주일 동안 입원을 하는 바람에 용수 형이 한 짓은 전부 들통이 났고 큰아버지한테 엄청나게 혼났다. 유천이는 감기에 된통 걸려 나처럼 일주일 넘게 이불 속에서 끙끙댔다고 하니 그것도 조금 쌤통이다. 아, 비록 대추를 놓고 오진 못했지만 용수 형은 미안했던지 나에게 타이탄X를 선물했다. 그게 그나마 유일하게 기분 좋았던 일이다.

이상이 그날 밤 내가 겪은 일의 전부이다. 나는 움직이는 사자상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 더 이상 그 누구도 사자상의 불가사의를 의심하지 않길 바라며, 특히 밤에는 절대 사자상에 가까이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처럼 밤마다 사자상의 악몽에 시달리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라. 난 분명히 경고했다. 가능한 한 움직이는 사자상을 멀리하라고….

*소설가 나혁진은 현재 영화화 진행 중인 「브라더」(북퀘스트, 2013년)를 비롯해 모두 네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조카가 태어난 걸 계기로 아동소설에도 관심이 생겨 '전학생은 명탐정'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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