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큰아들'이 아닙니다
남편은 '큰아들'이 아닙니다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9.01.3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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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스스로 하기, 못하는 게 이상한 거다

“지난 여름방학 때 회사 동료 와이프가 애랑 둘이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를 했대.”

“아, 정말? 좋았대? 뭐래? 나도 하고 싶은데….”

“응, 그 아이도 우리 진이처럼 영어에 관심이 없었는데, 좋았나 봐. 한국에 와서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다시 가자고 한다고.”

“그래? 진이도 한 달 살기 가면 영어를 좋아하게 될까? 자긴 어떻게 생각해?”

“글쎄, 영어도 영어지만 오전에 학원 끝나면 집에 와서 매일 수영하고, 놀아서 더 좋았던 것 같았어.”

“뭐 그것도 좋겠지. 둘 다 좋으면 됐지 뭐. 이번 겨울에도 간다고 하면, 우리도 같이 가자고 해. 하하”

“그래… 한번 물어볼게.”

의외였다. 남편이 그런 반응을 보일 줄 몰랐다. 남편은 외동아들이다. 결혼 전까지 외롭게 살았다며 혼자 밥 먹는 것도, 혼자 여행 가는 것도, 혼자 노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한다. 뭐든 같이 해야 재밌단다. 텔레비전도 혼자 보는 것보다 같이 보는 게 더 재밌다는 남자다. 기러기 아빠는 절대 못한다는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한 달 살기를 알아봐 주겠다니. 역시 자식이 제일 무서운 거였어!

어쨌거나, 그렇게 남편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서 시작된 베트남 한 달 살기다.

한 달 동안 떠나 있다고, 어느 텔레비전 광고처럼 곰탕은 끓이지 않았다. 오히려 베트남으로 출발하는 날까지 내 미션은 ‘냉장고 털어먹기’였다. 냉장고에 있는 모든 반찬과 재료들을 소진하려 애썼다.

생각해보니 한 달간 내가 없을 것만 생각했지, 즉 버리게 될 음식물 쓰레기만 생각했지, 남편이 먹어야 할 음식에 대한 대비는 하나도 해놓지 않았다. 점심, 저녁은 회사에서 먹고 와도 아침은 꼭 먹는 사람인데, 그리고 무려 다섯 번의 주말을 혼자 보내야 했는데 말이다. 떠나기 전날 밤, 텅 빈 냉장고를 바라보며 "알아서 잘 챙겨먹을 수 있겠지?" 하고 남편에게 한번 물었을 뿐이었다.

베트남에서 한 달 살기. 한달간 렌트한 집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는 다자매들.
베트남에서 한 달 살기. 한 달간 렌트한 집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는 다자매들. ⓒ최은경

지금 와서 후회한다고 해도 소용없지만, 내심 남편이 충분히 혼자 생활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은 있었다. 지난해 3개월의 육아휴직 동안, 그리고 그 이후 남편을 지켜보건대 그랬다.

기본적인 음식은 물론이고, 청소, 설거지, 그리고 살면서 ‘절대’ 해보지 않았거나 할 필요가 없던 일들에 대한 도전으로 나를 놀라게 했던 남편이었으니까. 자기가 입을 바지를 사서 들어오지 않나(태어나 처음이라고 했다), 쉬는 날 혼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들어오질 않나(이것도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했다).

여자든 남자든 기대지 않고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온 나였다. 굴욕적이게도 난 아직 ‘운전’ 독립을 못했는데, 그 사이 남편은 차근차근 혼자서도 생활이 가능한 연습을 나름대로 해왔던 거다. 스스로 변화해온 거다. 평생 살아온 습관을 버리고 말이다. 함께 살수록 남편이 괜찮다고 느껴지는 이유다. 그런 탓에 한 달 살기를 준비하면서 집에 혼자 있는 남편에 대한 고민은 크게 없었다.

그런데 내가 남편 없이 아이들이랑 한 달 살기 간다고 하면 “남편은?”이라는 말이 꼭 돌아왔다. 왜 나와 아이들이 아니라 ‘남편’을 궁금해 하는 걸까. 이해는 된다. 사실 아내가 하루만 외박한다고 해도 “아이는?”, “남편은?” 하고 묻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들은 진심으로 ‘남편들이’ 걱정되는 걸까? ‘남편은 큰아들’이란 말이 진짜 맞는 걸까.

베트남은 아침을 해먹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아침 소박한 밥상을 차려 맛있게 먹었다.
베트남은 아침을 해먹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아침 소박한 밥상을 차려 맛있게 먹었다. ⓒ최은경

설사 그렇더라도 ‘잠시만 안녕’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충분히 독립적일 수 있다. 만약 남편이 한 달 살기를 막았다면 어땠을까? 다행히 남편은 내 의지를 존중해줬다. 나 역시 나와 아이들이 잘 있으면, 남편도 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또 잘하지 못하면 어떤가. 선택과 판단에는 책임이 따른다. 모든 일에는 배울 게 있다.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구나, 아빠 없이 아이들은 이렇게 지내는구나, 아내와 아이들이 없으니 이런 점은 아쉽구나, 혹은 좋구나 하는 걸 알게 되는 기회로 삼아도 좋지 않을까?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아, 그런데 이게 웬일? 우리가 떠난 지 보름 가까이 지낸 지금, 남편이 내가 걱정하지 않았던 밥 문제로 힘들어 할 줄이야.

“응? 아니 왜? 혼자서도 잘 챙겨 먹잖아.”

“근데… 그게 애들이 있을 때는 애들 먹여야 하니까 뭐라도 하게 되는데, 나 혼자 있으니까 오히려 영 아무것도 안 하게 되네. 국을 끓여도 계속 그것만 먹는 것도 지겹고. 그래서 아침을 굶거나 대충 때우게 되네….”

“아, 정말? 그래도 우리가 아침은 꼭 챙겨 먹었는데…. 나도 그 생각은 미처 못했네. 우린 여기서 꼬박꼬박 아침 잘 챙겨 먹는데…. 난 여기 애들 먹이러 온 것 같아. 하하하. 그러니 당신도 잘 챙겨 먹어. 김치냉장고에 미숫가루 있거든. 아침에 굶지 말고 그거라도 한 잔 타 마시고 다니세요.”

남편에게 말은 안 했지만, 전화를 끊고 좀 먹먹했다. 매일 아침이면 내가 먼저 출근하는 통에 애들을 깨워 먹이고 입혀 학교에 보냈던 남편이다. 겨울방학을 하자마자 베트남으로 왔으니 아이들 없는 아침 식탁이 남편도 무척이나 어색하고 허전하고 쓸쓸했을 거다. '먹을 반찬'이 없어서가 아니라 '함께할 사람'이 없어서 힘들 거란 생각은 미처 못했다. 나도 그리고 남편도.

내일 아침 아이들이 일어나면 꼭 말해줘야겠다. 아빠의 쓸쓸한 아침 식탁에 대해. 그리고 다자매를 사랑하는 아빠의 마음에 대해.

9살 둘째 아이가 방학숙제 교재에 쓴 글. 여자는 책을 읽고, 아들은 놀고, 엄마가 tv 보고 아빠가 설거지 하는 게 이상한가? 뭐가 이상한가? 이상하게 생각할 일이 전혀 아니다.
아홉 살 둘째 아이가 방학숙제 교재에 쓴 글. 여자는 책을 읽고, 아들은 놀고, 엄마가 tv 보고 아빠가 설거지 하는 게 이상한가? 뭐가 이상한가? 이상하게 생각할 일이 전혀 아니다. ⓒ베이비뉴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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