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의지는 확고했다 '학원은 노땡큐!'
아이의 의지는 확고했다 '학원은 노땡큐!'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9.02.1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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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베트남에서 한 달 살기, 원어민 수업을 포기하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고 하면, 백이면 백 “어머 대단하세요, 어떻게… 불안하지 않으세요?” 하고 묻는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이건 나에게 물어야 할 게 아니다. 내 아이가 그렇게 하겠다 한 것이므로. 나는 학원에 보내고 싶다. 가지 않겠다고 선택한 건 딸이다.

초등학교 입학하고 학원은 당연히 가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아이는 "학원에 가고 싶지 않다"라고 했다. 집에서 학습지를 하거나, 학습지 선생님이 집으로 오는 건 괜찮지만 학원만은 가지 않겠다고 했다.

2학년 때는 달라지겠지, 친구랑 놀고 싶으면 저도 가겠다고 하겠지, 그때만 해도 그랬다. 나는 아이가 ‘심심해, 학원에 보내줘’ 할 때를 기다렸다. 6학년에 올라가는 지금까지 그 말은 듣지 못했다. 아이의 의지는 확고했다. 학원은 노땡큐!

5년 전이나 1년 전이나, 이유를 물으면 한결같다. 학교 숙제도 많은데, 학원 숙제까지 하면 얼마나 많겠냐는 거다. 또 친구들이 모두 학원에 가는 걸 싫어하고(한 명도 좋아하는 친구를 보지 못했단다), 학교-학원-숙제 매일 이렇게 돌아야 하는 게 숨 막힐 것 같다고 했다.

그걸 알면서 학원에 가고 싶은 아이는 없을 거다. 나라도 가기 싫을 것 같다. 그래, 언제까지 안 가겠다고 하나 보자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혹시라도 학교 수업이 따라가기 어려우면 말해달라고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까지 학교 수업이 어렵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래도 영어는 시켜야 하지 않아요?” 맞다. 나도 100% 공감한다. ‘그래도 남들은 다 가는데… 특히 영어는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데… 그냥 이렇게 둬도 될까?’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한다. 영어는 완전히 포기가 되지 않는다.

학원은 싫다니 겨우 설득해서 일주일에 한 번 선생님이 집으로 오는 영어학습지를 1년 남짓 했지만, 4학년 때 그만뒀다. 선생님이 “진이는 영어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라고 전화를 해서 알려줬다. 차라리 고마웠다. 진이도 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대신 집에서 스스로 공부하겠다고, 엄마가 도와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고, 아이야. 뜻은 가상하다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였다. 영어 문법 기초가 없는 것 같아서, 쉬운 문제집을 같이 풀었다. 얕은 내 영어 실력이 발목을 잡았다. 아이에게 알려줄 만한 영어 밑천이 내겐 없었다. 

꾸준함도 문제였다. 회사에서 늦는 날이면 그날 일정이 틀어졌다. 저녁 약속이라도 있는 날이면 일정이 또 틀어졌다. 실력도 떨어지고, 보강도 불가능한 엄마표 영어. 한계가 명백했다. 그러면서 아이도 나도 서서히 무뎌져 갔다. ‘이렇게 내버려 둬도 될까?’ 불안만이 엄습했다.

“넌 진이가 어떤 영어를 하길 원해?”

“원어민과 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정도를 원하지.”

“학교 영어 성적이 아니라?”

“응!”

“그럼 방법을 바꿔. 지금 문법이 중요한 게 아냐.”

나를 '최자매'라 부르는, 오랜 시간 동안 아이의 가능성을 믿고 기다려준 언니의 말이다. 언니의 아들은 고등학교 때 야간 자율학습 대신 식구들 밥을 차리면서 요리에 대한 꿈을 키웠다. 야간 자율학습을 면제해주는 대신 담임 선생님이 내건 조건은 영어로 레시피를 쓰는 것.

그 영어는 학원에서 배운 게 아닌, 초등학생 때부터 본 유튜브에서 배운 영어라고 했다. 지금은 대학에 가서 영어로 수업을 듣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오히려 사교육을 받은 아이들보다 더 잘한다고 했다.

“문제집 대신 영화를 반복해서 봐. 그게 지금은 효과가 제일 좋을 거야.”

그럴까?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해리포터'.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아이는 석 달간, 하루 20~30분씩 해리포터 1편을 열다섯 번 반복해서 봤다. 지금은 해리포터 2편을 반복해서 보고 있다. “지겹지 않니?”라고 물으면 괜찮단다.

단어는 외우지 않는다. 문장도 외우지 않는다. 그저 들리기만 하면 되었다. 1편은 거의 영어 자막 없이 봤다. 2편은 영어 자막을 깔고 본다. 5학년 담임 선생님도 칭찬한 아이의 '타고난 성실함'은 이럴 때 빛난다. 베트남에서도 이런저런 영어 단어를 만나면 유추해서 읽는다. 아는 단어가 나오면 반가워 하고, 이렇게 발음하는 게 맞는지 묻기도 한다.

매일 하루 꾸준히 '해리포터'를 보고 있는 아이. 지겨울 때까지 보고 또 보고. ⓒ최은경
매일 하루 꾸준히 '해리포터'를 보고 있는 아이. 지겨울 때까지 보고 또 보고. ⓒ최은경

그런데도 나는 만족이 안 됐다. 욕심이 났다. 베트남에서 원어민 교사와 수업하는 비용이 한국만큼 비싸지 않았다. 마침 그룹으로 원어민과 함께 영어 수업할 학생을 찾는다는 소식도 접했다. 나는 이 기회를 잡고 싶었다. 하지만 진이는 아니었다. “여기 와서 왜 영어를? 하고 싶지 않다”라고 했다. 그보다 시간이 많으니까, 그림은 좀 그려보고 싶다고 했다. 그룹 과외를 주선한 선생님이 말했다.

“진아, 선생님은 여기서 영어만 잘하면 1등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영어를 못해서 2등만 해. 영어는 정말 중요하고, 꼭 공부해야 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진이는 입을 꾹 닫았다. 집에 온 진이는 “영어는 '해리포터'를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그냥 경험이다 생각하면 좋을 텐데 그 한 번의 경험이 그렇게 어려울까? 아이의 소심함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진이는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것보다 늘 스스로 원하는 걸 하는 아이였지. 그리고 그런 진이의 그런 선택은 늘 옳지 않았나? 한 달 동안 원어민과 이야기해 봐야 얼마나 실력이 는다고. 또 이런 상태면 입도 벙긋 안 할 게 뻔한데… 내가 또 쓸데없는 욕심을 부렸구나.’

유시민은 그의 책 「어떻게 살 것인가」(생각의길, 2013년)에서 크라잉넛 멤버들이 자신보다 훨씬 훌륭하게 살았다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크라잇넛과 다르게) 나는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지도 않았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지도 못했다. 마음 가는 대로 살지 못했다. 죽을 때까지 이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나는 크라잉넛 멤버들이 나보다 훨씬 훌륭하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내 문제는 꿈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게는 무엇인가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없었다. 인생을 어떤 색조로 꾸미고 싶다는 소망도 없었다. 그저 현실에 잘 적응했을 뿐이다."

유시민의 말대로라면, 진이는 아직 어리고 서툴지만 지금은 그림을 그리는 게 즐거운(그 끝이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잘 가고 있는 거였다. 잘 가고 있는 길을 헤매는 건 언제나 나였다. 뭔가 더 해줘야 하는 게 아닌 불안감과 압박감 때문에.

미술 학원에 잠시 다녔을 때. 6개월 정도 다니다가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학원'과는 좀처럼 궁합이 맞지 않는 모양이다. ⓒ최은경
미술 학원에 잠시 다녔을 때. 6개월 정도 다니다가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학원'과는 좀처럼 궁합이 맞지 않는 모양이다. ⓒ최은경

방송과 뉴스에서 나오는 아이들은 늘 ‘불안한’ 존재들이었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경기를 잘해도 불안하다고 말하는 아이들. ‘경쟁’이라는 무대에서 늘 긴장된 상태로 있는 아이들. 그 끝이 어딘지, 어떤 상태일지 몰라 불안한 아이들. 마치 책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 폴러스)에 나오는 애벌레들 같다. 저 높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밟고 밟히며 올라가는 애벌레들.

뉴스 속 밤 늦도록 학원을 전전하면서도 불안하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이에게 “넌 불안하지 않니?” 하고 물은 적 있다. 진이는 “불안하지 않은데? 지금이 좋아”라고 말했다. “지금이 행복해?” 하고 다시 물으니 당연하다는 듯 “응, 행복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들으며 ‘지금, 행복하다는데 뭘 바라겠나, 내 욕심보다 아이 행복이 우선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시간이 지나면 미련이란 아이가 내 앞에 와서 자꾸 기웃거리는 거다. 베트남에서 영어 수업을 알아보는 것처럼. 왜 자꾸 아이가 원치 않는 걸 기어코 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왜 자꾸 아이를 불안의 늪으로 못 보내서 안달인 건지 모르겠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유시민은 같은 책에서 "행복은 삶에서 기쁨을 느끼고 자기 삶에 만족하여 마음이 흐뭇한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언제 이런 흐뭇함을 느끼게 되는가? 스스로 설계한 삶을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살면서,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성취했을 때 행복을 느낀다"라고 썼다.

진이는 어설프게나마 자신이 설계한 대로 아직까지 잘 가고 있다. 그러니 내가 기억해야 할 건 하나다. ‘지금’ 행복한 진이의 행복을 막지 않는 거다. 오늘, 또 한 번의 위기를 잘 넘겼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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