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초조하다… 공포의 '하원 시간'
엄마는 초조하다… 공포의 '하원 시간'
  • 칼럼니스트 한희숙
  • 승인 2019.02.1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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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 육아일기 한 줄] 엄마가 달려갈게!

아이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눈물을 보였다. 가슴이 쿵쾅쿵쾅한 게 여기까지 왔다며 손으로는 제 머리끝을 가리켰다. "엄마가 너를 돌보느라 힘드니까 할머니 집에 가서 지내다 오라"고 푸념조로 말했는데 아이가 진심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컨디션이 나빠 아이는 며칠째 어린이집에 등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다 피로도가 제일 높은 늦은 오후라서 나도 꽤 지친 상태였다. 그래도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 들키지 말았어야 할 속마음이었다. 엄마와 떨어질까 깜짝 놀라 우는 아이를 보니 몹시 미안했다. 

아니라고, 엄마가 미안하다고 아이를 다독인 뒤 남은 힘을 쥐어짜서 해달라는 대로 놀아줬다. 하지만 우리 사이의 평화는 길지 않았다. 좀 쉬었다가 해도 좋으련만 아이는 끊임없이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요구했다. 이 정도면 되었다 싶어서 엄마도 쉬자 하면 아이는 "흥!" 하고 샐쭉 토라졌다. 

놀이에 조금만 소홀해도 귀신같이 내 마음을 읽었다.

"엄마, 하기 싫구나?"

"빨리 끝내고 싶어서 그러는구나?" 

싸웠다가 풀었다가, 웃었다가 울었다가. 아이와 둘이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감정의 폭은 심하게 널뛰었다. 주말까지 연이어 붙어 지내며 우리는 신경전을 이어갔다.

마침내 월요일 아침, 아이가 등원했다. 아이를 보내고 뒤돌아서는데 마음이 가벼웠다. 여유를 부리고 싶었지만 서둘러야 했다. 아이 없이 보내는 고요하고 달콤한 시간은 잠시뿐이므로. 아이를 등원시키면 엄마의 시곗바늘은 하원 시간을 향해 빠르게 달려간다.

아이를 종일 돌봐야 하는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참으로 더디게 가는 시간이 아이가 원에 있을 때는 잘도 간다. 그렇게 금방 찾아온 아이의 하원 시간. 내 체력은 아직 바닥인데 할 일은 태산이다. 아이랑 오후에는 뭘 하며 어떻게 보낼지 걱정이 밀려온다. 복잡한 감정을 일단 접고 아이를 맞으러 나선다.

그림책 〈호랑이를 탄 엄마〉의 한 장면. ⓒ한희숙
그림책 「호랑이를 탄 엄마」의 한 장면. ⓒ느림보

나와는 다르게 아이 하원 시간을 간절히 기다리는 엄마들도 있다. 그림책 「호랑이를 탄 엄마」(서선연 글, 오승민 그림, 느림보, 2015년)의 엄마는 오후 6시만 기다린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한 엄마’의 퇴근 시간이기도 하거니와 원에 맡겨 두었던 아이를 만나러 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기다리겠다. 얼른 가야지.” 엄마와 종일 떨어져 지낸 어린 자식을 걱정하며 엄마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어서 아이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호랑이쯤은 겁 없이 맞선다. 일하는 엄마의 녹록치 않은 현실을 반영한 그림책이다.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엄마는 오늘도 아이들과 무사히 재회한다. 언뜻 보면 해피엔딩이지만 일하는 엄마를 둘러싼 환경이 바뀌지 않는 이상 내일도 모레도 고단한 하루가 계속될 것이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좋은 결말이라는 게 뭘까 생각해 본다. 어쩐지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림책 속 엄마처럼 나도 비슷한 처지에서 눈물짓던 때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아이의 하원 시간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게 된 것은 아이의 성장과 맞물려 있다. 일하는 엄마든 아니든 상황에 따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처음 아이를 원에 보내놓고 걱정되는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나도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어린이집에 놓고 일하며 매일매일 아이가 잘 지낼까 걱정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한 해 두 해 지나며 아이는 원에 잘 적응해 엄마의 걱정을 덜었다. 아이가 특별한 사건 없이 재밌게 잘 지내서 나도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사실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만 달라진 것은 아니다. 하원 시간, 나를 맞는 아이의 행동을 보며 전과는 달라진 온도 차를 느낀다. 아이는 나를 발견하면 저만치부터 힘껏 달려와 안기곤 했다. 반가운 마음을 그렇게 몸으로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이제는 특별히 반가운 기색을 드러내지 않는다. 가끔 세게 부딪혀 아프기도 하고 그 때문에 하지 말라고 타이를 때도 있었는데 어쩐지 아쉽다. 친구와 재미있게 노는 중이었는데 엄마가 와서 못했다며 실망할 때는 머쓱한 기분이다. 엄마와 헤어지기 싫다고 울고 불던 아기였는데 이제는 어린이집에 가기 싫을 때면 엄마랑 같이 있고 싶다며 꾀를 부린다.

엄마만 바라보던 아이의 시선이 점점 넓어짐을 느낀다. 지금은 아이에게 엄마의 존재가 간절하지만 점차 엄마가 아닌 사람, 그리고 세상사에 아이는 온 관심을 집중시킬 것이다. 그렇다고 부모의 자식 사랑이 변할 리 없다. 하원 시간, 아이를 만나러 가기까지는 굼뜨지만 아이를 다시 보면 참 반갑다.

아이가 원에서 있었던 일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내게 무언가 보여줄 게 있다며 가방 속을 뒤적이며 눈을 반짝이는 순간, 행복해진다. 특별했던 순간을 엄마와 공유하려는 아이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비록 집에 돌아가면 십중팔구 별거 아닌 일로 서로 신경전을 벌일지라도 당장은 애틋한 마음이 든다.

물론 하원하는 아이 기분이 늘 좋은 것은 아니다. 친구와 다툰 일을 두고 집으로 돌아오며 길게 상담을 해줘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일곱 살 우리 아이에게 나는 요즘 좋은 상담자가 되고자 애쓰는 중이다.

그림책 「엄마가 달려갈게!」(김영진, 길벗어린이, 2017년)는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한 여러 순간들을 이야기한다. 그때마다 엄마는 거침없이 달려가 아이를 돕는다. 나도 아이가 나를 원할 때 좀 더 힘을 내 달려가야지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하원 시간이다. 어서 아이한테 달려가야겠다.

*칼럼니스트 한희숙은 좋은 그림책을 아이가 알아봐 주지 못할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엄마이다. 수년간 편집자로 남의 글만 만지다가 운 좋게 자기 글을 쓰게 된 아기엄마이기도 하다. 되짚어 육아일기 쓰기 딱 좋은 나이, 일곱 살 장난꾸러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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