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내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아?"
"엄마는 왜 내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아?"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9.02.26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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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잘 들을게"라는 말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

“엄마 언니가...”

뭔가 하나를 해주면, 그 틈을 타서 열 개를 얻으려는 윤이(둘째 가명)다. 그만큼 욕심이 많다. 나를 더 시켜먹으려고 하고, 뭐라도 하나 더 얻어내려고 한다. 그야말로 협상의 달인(이라 쓰고 우기기의 달인이라 읽는다)이다.

4살 터울의 다자매. 서로 갈등이 좁혀지지 않을 때가 제일 어렵다. ⓒ최은경
4살 터울의 다자매. 서로 갈등이 좁혀지지 않을 때가 제일 어렵다. ⓒ최은경

베트남에 와서 느껴보지 못한 자매애를 발견하고 기쁠 때도 많았지만, 도저히 참기 어려울 때도 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싶어서 그냥 넘어 가다가도 나도 내 성질을 이기지 못할 때가 오더라는 말이다. 무리한 요구를 할 때. 그날도 그랬다. “엄마, 언니가...”, “엄마 왜 언니만...“ 이 말을 한 열 번쯤 했던가. 내 머릿속에서 빨간불이 켜졌다. 이런 내 기분을 윤이에게 알려야 한다. 안그러면 내 감정이 폭발할 테니까.

“엄마는 네가 그런 말 좀 안 하면 좋겠어요. 기분이 안 좋아져요. 왜 자꾸 언니 하고 비교하는 말을 해요? 언니는 언니고, 너는 너잖아. 언니가 하는 걸 네가 다 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언니는 너가 하는 걸 다 해 달라고도 하지 않잖아요. 그건 네 말대로 공평한 게 아니지 않나요?”

둘째에게 훈육할 때면 일부러 존댓말을 쓴다. 내 나름의 자정 장치다. 몇 번의 ‘엄마 갑질’ 이후 내가 스스로 내린 처방이다. 존댓말은 엄마 갑질을 막는데, 나름 큰 도움이 된다. 훈육할 때 내 밑바닥을 드러내는 것 같은 몹쓸 말들을 덜 하게 된다. 내가 존댓말을 쓰면 아이도 훈육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비교적 차분하게 자신의 기분과 상황을 말하려고 애쓴다.

“엄마, 언니가...“

“윤아... 왜 또 그래. 언니랑 엄마는 지금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잖아요.”

“그럼 나는?”

“윤이도 지금 이 시간은 윤이가 할 일을 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거의 울기 직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하잖아.”

“그게 뭔데요?”

“(울면서) 어제 언니가 쓴 글... 그거 보고 싶은데, 언니가 못 보게 하잖아.”

“윤아, 언니가 쓴 글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건 언니 마음이지. 그걸 엄마가 억지로 보여주라고 할 수는 없어.”

“그래도 왜 못 보게 하는데!”

이정도면 답이 없는, 도돌이표 대화가 될 조짐이다. 윤이와 공간을 분리해 있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거실에서 방으로 갔다. 잠시 우는 소리로 시끄러워지는가 했더니 내가 있는 방으로 들어오는 윤이. 눈물은 거둔 상태였다.

“엄마한테 할 말이 있어 왔어요? 말해 봐요.”

“내가 아까 말했잖아.”

“네가 엄마한테 한 말이 많은데, 뭘 말했다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좀 구체적으로 말해줄래요?”

“내가 아까 말했는데, 왜 또 말하라고 하는데... 왜 그래야 하는데...”

“네가 아까 한 말은 언니가 쓴 글을 보고 싶다는 거였잖아요. 근데, 그건 언니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거니까, 지금 엄마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요.”

“그거 말고, 내가 또 말했잖아. 엄마는 왜 내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데? 왜 또 말하라고 하는데?”

뭐지? 뭐였지? 난 정말 그것 말고는 들은 게 없는데... 거실에서 책을 보고 있었는데, 반은 듣고 반은 흘려들은 건가? 도무지 기억 나는 게 1도 없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빠른 사과뿐이다.

“미안해. 엄마가 들은 건 그게 전부야. 뭐 다른 걸 말했니?”

“구몬스터....”

“응? 구몬스터가 뭐야.”

“어제 쓴 글 말고... 언니가 지난 번에 쓴 다른 글, 구몬스터 보고 싶다고...”

“그, 그런 게 있었어?”

확인해보니 구몬스터 글은 진이(큰아이 가명)가 이미 동생에게 한번 보여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으로 협상 타결. 그렇게 또 한번의 위기를 넘겼다. 그런데 윤이의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왜 내 말은 귀 기울여 듣지 않느냐?”라는.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유튜브를 보며 종이접기 하는 아이들. 이러다가도 싸운다. ⓒ최은경
유튜브를 보며 종이접기 하는 아이들. 이러다가도 싸운다. ⓒ최은경

사실 윤이 말 뿐만 아니라 진이가 하는 말도 잘 듣지 못할 때가 더러 있는 것 같다. 자꾸 깜빡하는 일이 생기고, 요즘에는 특히 말도 헛나와서 본의 아니게 아이들에게 큰웃음을 주는 경우도 생긴다.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할 때면 내가 왜 이러지 싶기도.

그럴 때마다 그저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나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입장에서는 내가 예전보다 자신들의 말을 덜 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마음은 오히려 정반대인데... 그래도 "이제라도 더 잘 기억할게"라고 말해주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사실 잘 기억할 자신이 없다. 더 큰 오해가 생기기 전에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줬다.

“다다야... 엄마가 예전보다 관심이 줄어서 너희가 한 말을 기억 못하는 게 아니야. 기억해야 할 게 많은데, 엄마 뇌도 나이가 드니까 너무 많은 걸 기억하기가 어려워서 그러는 것 같아. 그러니 정말 중요하고 기억해야 할 건 적어 주거나, 엄마가 지금 제대로 듣고 있는지 꼭 확인해 줘. 짜증 내지 말고. 엄마는 컴퓨터나 기계가 아니잖아. 너희들이 도와주면 엄마가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알았지?”

이후로도 내가 우려한 대로 못 듣는 일은 계속 생겼다. 그럴 때마다 윤이는 속상해 하지 않고 이렇게 물었다.

"엄마 내 말 못 들었어요?"

못 들었다고 하면 내 눈을 보며 "잘 들어요" 하고 다시 말해주었다. 내가 내 부족함을 알려주기 전과는 확실히 다른 태도였다. 그런 아이가 눈물나게 고마웠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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