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두 살 아들도 엄마 없인 아침에 못 일어나요
서른두 살 아들도 엄마 없인 아침에 못 일어나요
  • 칼럼니스트 이기선
  • 승인 2019.02.22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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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 어떻게 이해할까] 걸음마기 부모의 반응이 아이의 '자율성'을 결정합니다

Q. '따르릉'

"여보세요?"

"아침에 아이 깨우는 방법도 알려주시나요?"

"네. 그럼요.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원하세요?"

"우리 아들은 아침에 혼자 못 일어나요. 아휴, 이젠 내가 힘이 들어서요…."

"그렇군요. 아드님이 몇 살인가요?"

"우리 아들요, 서른두 살이에요."

'헉, 어떻게 이런일이!' 

인간의 자율성은 난생 처음 혼자 걸었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베이비뉴스
인간의 자율성은 난생 처음 혼자 걸었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베이비뉴스

A. 위의 사례는 실제로 제가 겪은 일입니다. 이 글을 읽는 젊은 어머님들은 아득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머나, 우리 신랑이랑 동갑인데 그 나이까지?", "우리 동생하고 똑같네! 내 동생도 저래"라고 혼잣말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애를 어떻게 키우면 저렇게 되고, 엄마는 또 무슨 죄인가도 싶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아이가 한 돌 무렵 걷기를 시작할 때부터 그 씨앗이 싹틉니다. "헉~ 이게 무슨 소리야. 서른 넘은 어른의 이야기가 어떻게 걸음마기까지 간단 말이야!"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자녀가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아서 걱정인 어머님들은 당장 지금의 이유를 찾기 보다는 지금은 아득해진 옛 기억을 떠올려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인간의 자율성은 난생 처음 혼자 걸었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이 때 부모가 아기의 걷기에 어떻게 대처했냐에 따라 아기는 자신의 행동에 자신감을 갖고 계속하거나 계속하지 않거나로 나뉩니다.

아기들은 엄마 품에서 젖을 빠는 것으로 인생을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는 엄마의 따뜻한 품에서 젖을 빨면서 삶을 즐기죠. 엄마의 젖은 따뜻하고, 자기를 바라보는 부드러운 엄마의 눈빛만으로도 아기의 인생은 한없이 행복합니다. 그러다가 5개월을 넘어서면서부터 조금씩 아기의 눈에는 엄마 외에 다른 세상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아기의 관심사가 외부 세상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 사물이 궁금할 뿐입니다. 엄마를 졸라 그 사물에게 갈 수도 있지만, ‘내 맘대로 내 발’로 움직이는 것보다 더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다만 엄마 품에서 "이 다음에 혼자 갈 수 있을 때, 저기에 가 봐야지. 저기에도, 저기에도 가야지"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누워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때입니다.

드디어! 걸을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이제는 엄마가 아니라도 내 발로 직접 가서 그것을 보고 만지고 냄새를 맡으며, 흔들어서 소리도 들어보고 입으로 맛도 볼 수 있습니다. 누워서 볼 때 궁금했던 것들을 오감을 활용해서 확인합니다.

"아, 이건 너무 딱딱해. 먹는 게 아니구나.", "이건 맛있네, 우와, 이건 무슨 냄새야?"라며 인상을 찡그리기도 합니다. 아기는 자기가 직접 걸어가서 만지고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너무 신나고 기분 좋습니다. 엄마가 없어도 내가 했다는 성취감을 만끽하면서 많은 것들이 있는 곳으로 걷고 뛰면서 바쁘게 돌아다닙니다. “내가 했어! 내가 할 거야! 나도 할 수 있어!”를 부르짖으며 집안을 온통 헤집고 돌아다니는데요, 이런 상황을 '탐색'이라고 합니다.

아뿔싸! “안돼!” 엄마의 급정지 소리에 신나게 돌아다니던 아기는 흠칫 걸음을 멈춥니다. “뭐지?” 하고 돌아보는 순간, 엄마의 화난 얼굴이 아기를 무섭게 내려보고 있습니다. 엄마는 "하지 말랬지. 더 하면 혼난다. 가만히 좀 있어. 정신 없어!" 라고 눈빛으로 말합니다. 한참 기분 좋게 집안을 탐색하던 아기는 주춤거리고, 엄마의 눈치를 살핍니다. 그러다 '휴우~ 그만 해야지’ 라는 듯 시무룩하게 고개를 내리고 주저앉습니다. 반짝거리던 눈빛은 희미해지고, 자신감에 넘치던 표정은 위축되며, 신나게 내딛던 팔다리는 축 쳐칩니다. 이제 더 이상 아기는 걷는 것이 재미 없습니다. 

이렇게 탐색활동에 지속적인 방해를 받으면, 아기는 엄마가 하라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게 됩니다. 점점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물론 엄마는 아기의 안전을 위해서 위험한 행동을 제지하는 것이지만, 엄마가 아기의 탐색을 지나치게 방해하면, 아기는 호기심을 가지고 시도 해보려는 욕구조차 나타내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무섭기 때문이죠. 아기들에게 엄마의 화난 표정은 공포 그 자체입니다. 아기는 더 이상 그런 무서운 상황을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엄마 없이 혼자서도 할 수 있어. 이것 봐! 엄마, 나 봤지? 나 봤어? 나 좀 봐! 나 좀 보라니까! 봐봐, 엄마! 나 좀 보라구!"라고 아기가 표현할 때 부모는 아기를 봐줘야 합니다. 거기에는 아기의 '성취'가 있습니다. 그 성취를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물론 걸음마기 아기는 위험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안전한 환경을 마련해놓고, 그 안에서 맘껏 걷고 뛰면서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아기에게 제공해야 합니다. 이것이 아기의 자율성을 결정합니다. 걷기를 통해서 아기가 경험하는 세상은 엄마 품에만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성장이 숨어 있습니다. 

걷기를 '제2의 탄생'이라고 말하는 이유,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칼럼니스트 이기선은 동덕여대에서 아동학(박사)을 공부하고, 메가원격평생교육원 아동학과 교수로 있다. 토브언어심리상담센터의 부모교육상담가, 함께하는아버지들의 정책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자녀와 싸우지 마라」 「봄의 요정 보미」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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