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30개월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우리 아이는 마트에서 물건 하나를 고르는 데에 30분은 걸리나봐요. 왜 저렇게 꾸물거리나 속이 터질 것 같은데, 아이는 물건을 하나하나 유심히 쳐다보면서 만져보느라 하염없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럴때마다 저는 아이를 냅다 안고 “그냥, 이거 해”라며 그 물건을 사서 나옵니다. 아이는 울고 짜증을 부립니다. 도대체 뭘 그렇게 유심히 보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아이는 왜 이렇게 꾸물댈까요? 정말 답답합니다.
A. 엄마는 바쁜데, 아이는 한량없이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으면 정말 답답하지요. 아이가 그런 엄마의 심정을 알 턱이 있나요. 자기 시간에 한껏 빠져 있을테니까요. 이 질문을 하시는 엄마와 아이의 상황이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어머님의 이야기만은 아니고, 2~3세 영아를 가진 부모들의 흔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흔한 일상의 모습들이 우리 아이만 유별스럽게 보이는 것은 이 시기 영아의 탐색과 몰입 상황을 무심코 흘려버리기 때문입니다. 위의 어머님처럼 아이의 선택을 기다리지 않고, 성급하게 엄마가 결정해버리는 것이지요.
아기는 걷기를 시작하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진귀한 경험으로 다가온다고 앞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밖으로 나가면 한창 걷다가 갑자기 멈춰 서곤 합니다. 왜 저러나? 싶어 쳐다보면, 어느 한 지점에 아이의 시선이 머물러 있습니다. 그 시선을 따라가 보면, 거기에는 개미가 있을 수도 있고, 지렁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구름을 보기도 합니다.
엄마의 표정은 일그러집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는 개미나 지렁이를 손으로 잡아 올려서 더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우악~” 엄마는 소리치고 맙니다. “당장 버려!” 아이는 그 소리에 놀랍니다. 엄마가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엄마는 아이가 곤충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싫습니다. 곤충에는 여러 가지 병균이 있을 것도 같아서 만지면 오염될 것 같은 불결함과 불쾌함이 몰려옵니다.
그러나 아이의 눈에 개미의 움직임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자기 발 아래에 작은 미물이 꾸물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진귀합니다. 꿈틀거리고 움직이는 그 모습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봅니다.
아이들이 뭔가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는 모습은 몰입의 상황입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하찮아 보이지만, 아이는 지금 그 모습을 머리에 이미지로 담고 있는 것입니다. 한참을 서서 바라보다가 며칠 후에 그 모습을 재연하기도 합니다. 개미의 모습을 자기 몸으로 재연하거나, 구름의 모습을 몸의 동작으로 표현해냅니다. 또는 아빠가 세차하는 모습을 봤다가 자기 자전거를 닦는 모습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 몰입하는 아이, 고도의 뇌 발달 중입니다
이런 과정을 '표상'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의 표상은 상징능력의 시작입니다. 이 상징능력이 최고조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언어입니다. 인간의 상징 중에서 최고도의 상징이 바로 언어랍니다. 언어를 통해서 인간은 시공을 초월하여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두 돌 내외의 영아들이 상징능력을 형성하는 것은 고도의 뇌 발달과 더불어 사고능력을 보유하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아이가 마트에서 물건을 구경하느라 보내는 시간은 상징과 사고능력 발달을 위한 전조입니다. 아이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어, 이건 뭐지? 와, 재밌겠다. 조금만 더 보고 가야지.’ 그러다가 ‘어, 저건 또 뭐야? 이거랑 비슷하잖아. 저것도 봐야지!’ 라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저걸로는 뭘 하면 재밌겠다. 이걸로는 또 뭘 하면 재밌겠는걸’ 한층 즐거운 상징놀이에 몰입 중인데, 갑자기 엄마가 와서 자기를 안고 나갑니다. 뜻하지 않게 그 몰입의 자리를 벗어나게 됩니다. 갑자기 즐거운 몰입은 밑도 끝도 없이 사라져버립니다.
물론 엄마도 한량없이 기다리는 것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만, 몰입 상황은 방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방해받지 않으면, 아이는 몰입에서 자연히 빠져 나옵니다. 그 때, 아이의 표정은 활짝 피어납니다. 한 손에 뭔가를 들고 옵니다. “엄마, 이것 봐.” 엄마는 무슨 뜻인지 영문을 알 수 없지만, 아이는 뭔가 얻어낸 것입니다.
"내 머리에 저걸 넣었어. 나도 할 수 있어, 엄마, 기다려~" 엄마가 기다려주면, 그 기다림에서 아이는 자신감을 꽃피울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자율성의 발달이 달라집니다. “엄마,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합니다.”
*칼럼니스트 이기선은 동덕여대에서 아동학(박사)을 공부하고, 메가원격평생교육원 아동학과 교수로 있다. 토브언어심리상담센터의 부모교육상담가, 함께하는아버지들의 정책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자녀와 싸우지 마라」 「봄의 요정 보미」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