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거실에서 놀고 있던 두 딸의 대화를 옆에서 우연히 엿듣게 됐다.
"너는 커서 누가 될 거야?"
9살 언니는 7살 동생에게 갑자기 거창한 장래희망을 묻고 있었다.
동생은 "응, 나는 '알바생'이 되고 싶어"라고 말했다.
"알바생?"
"응, 드라마 '도깨비' 보면 주인공 언니가 치킨집에서 알바하잖아. 나도 그런 알바생이 될 거야."
옆에서 그 대답을 듣은 나는 잠시 머릿속이 하애졌다.
'내 딸의 꿈이 알바생이라니….'
멋진 왕자님까지 만나는 모습을 봤으니… 아이의 눈에는 그 '알바생'의 모습이 마냥 즐거워보여 부러웠나 보다.
장차 알바생이 꿈인 둘째가 언니에게 되물었다.
"언니는?"
"나? 나는 커서 아빠처럼 아이들 키우는 엄마가 될 거야."
"언니, 엄마는 직업이 아니야. 다른 거 말해!"
엄마는 직업이 아니라는 둘째의 대답에 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말로 엄마는 직업이 아닌가?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살짝 헷갈렸다.
'엄마라는 사람은 사실 직업은 아니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엄마라고 불리니까.'
우리 두 딸은 엄마가 일하고 아빠가 주부로 사는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당연하게 보면서 자라왔다. 그래서 나는 우리 두 딸이 다른 아이들보다 양성평등의 개념에 익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대화를 엿들으면서 그들의 마음 속 생각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됐다.
엄마도 일을 할 수 있고 아빠도 집에서 살림을 할 수 있다는 것. '엄마'라는 단어는 '직업'이 아니라는 걸.
아이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나도 가끔씩 물어보기도 했다.
"의선아, 너는 엄마가 일하고 아빠가 집에 있는 걸 어떻게 생각해?"
7살 딸아이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일하는 집도 있고 아빠가 일하는 집도 있잖아요. 저는 아빠가 집에서 우리들을 돌봐주는 게 더 좋아요."
나를 살짝 배려해서 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뭔가 나의 역할에 대한 위로와 지지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아닌 우리 아이들에게서 이런 따스한 말을 들을 줄이야.
몇 년 동안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 하던 나의 생활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 남들이 우리를 이상하고 측은하게 바라볼지라도 우리 아이들이 나를 이해해주고 우리 부부가 열심히 각자의 역할에서 잘 산다면 다른 건 문제 없다.'
남자는 일, 여자는 육아와 살림이라는 구시대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우리 아이들 세대에서는 완전히 사라지겠지?
우리 세대는 단지 그 과도기에 있기에 사회적 갈등도 심하고 낯설다.
부디 우리 아이들의 시대에는 부부가 함께 일 하고 함께 아이도 키우는 모습이 당연해지기를 희망한다.
*칼럼니스트 노승후는 서강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STX조선, 셀트리온 등에서 주식, 외환 등을 담당했으며 지금은 일하는 아내를 대신해 5년째 두 딸을 키우며 전업 주부로 살고 있습니다. 일과 가정 모두를 경험해 본 아빠로서 강연, 방송, 칼럼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아빠, 퇴사하고 육아해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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