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때문에 안 돼, 오늘도 집에 있자
미세먼지 때문에 안 돼, 오늘도 집에 있자
  • 칼럼니스트 김경옥
  • 승인 2019.03.05 10: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마의 말] 공포의 미세먼지

몇 년 전 뉴스에서 중국 미세먼지에 대한 보도를 봤다. 온통 뿌연 시야. 그걸 뚫고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코와 입을 무시무시하게 생긴 마스크로 막고 인상을 찌푸린 채 거리를 걷고 있었다. 아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러고 어떻게 살지? 저기서 숨 쉬며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몇 년 뒤 나는 그런 대기 속을 거닐며 '그런 공기라도, 그래도 숨은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안으로 내가 들어온 것이다. 우리가. 원하지 않았지만.

지난주 금요일부터 시작된 미세먼지의 공격이 약해지지 않는다. 일주일이 지났다. 예보를 보니 또 일주일은 더 지나야 할 것 같다. 어쩜 이렇게 단 하루도 우리에게 신선한 공기를 주지 않는지. 야속하다 급기야 화가 난다. 겨울이 지나고 있어 해가 반짝이고 날은 점점 따뜻해지고 있다. 하지만 봄은 미세먼지의 계절이기도 하다.

"띵동!"

아이 아빠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미루고 미루다 작년 말쯤 구입한 공기청정기가 몸살을 앓는다. 초록빛이던 알림 등은 순식간에 빨간빛을 띄며 한 자릿수였던 수치가 100 이상으로 뛴다. 그제야 확실히 깨닫는다. 우리가 오늘 어떤 공기를 마시며 나다녔는지 말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던가. 빼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숫자로 정확히 미세먼지 수치를 알려주니 밖을 나가는 것도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것도 몹시 조심스러워졌다.

살기가 어려워지면 늘 아이가 걱정된다.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래 이런 공기를 마셔야 할까. 아이의 폐는 괜찮을까. 꼬리가 있었던 종족에게 그것의 필요성이 낮아지면서 '꼬리가 있었다'는 흔적만 남아있는 것처럼 우리의 몸은 필요에 따라 진화하기도 하고 퇴화되기도 하지 않던가. 아이들의 폐가 더 단단해지고 정화 능력이 출중해지는 것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고등학교 때였던가. '사먹는 물'이 처음 등장했다. (어느 잘사는 동네에는 그 전부터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런 것이 팔리고 있다는 것을 처음 인지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그 즈음 우리는 당연스럽게 수돗물을 받아 끓여마셨다. 몇몇 사람들은 물을 사서 마시기 시작했다.

하굣길에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가지고 나오는 누군가를 발견하면 친구들과 눈이 휘둥그레져 '어떻게 물이라는 걸 사서 마실 수 있는지' 의아해하곤 했었다. 그 흔한 물을 굳이 사서 마신다니. 돈이 아주 남아도는구나, 생각하며 우스갯소리로 친구에게 말했다.

"야, 이러다 공기도 사서 마시겠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소 스프레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호흡기에 대고 분사하면 산소가 나와 보다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공기만큼 어이없었을까.

몇 달 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다 잠시 주춤했던 어느 날, 선배를 만났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육아와 미세먼지였다. 선배는 말했다. 앞으로 아이가 이 공기를 마시며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답답하다고, 어디 이민이라고 가고 싶다고 말이다.

우리가 미세먼지 때문에 곤욕을 치를 때 유럽의 어느 나라는 미세먼지 수치가 1이었단다. 미세먼지 수치 1이란 걸 구경한 적도 없는 나는 그 나라로의 이민은 아니어도 몇 분이라도 거기서 숨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기라는 것, 숨을 쉰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시간을 두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고민해야 하는 것이 돼버렸다. 다른 문제도 아닌 공기의 질 때문에 아이와 함께 집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집 주변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없다. 지금쯤 따뜻해져 가는 봄기운을 만끽하러 삼삼오오 모여 있을 법도 한데, 아이들의 무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가끔 눈에 띄는 아이들도 즐겁게 뛰어노는 것이 아닌 차분히 그네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릴 뿐이다. 마스크를 하고,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밖에 나가서 뛰어노는 것이 당최 뭐라고......
밖에 나가서 뛰어노는 것이 당최 뭐라고… ⓒ김경옥

삼한사온이라 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겨울은 삼 일 추우면 사 일은 따뜻하다고 배웠다. 하지만 이제는 '삼한사미'란다. 삼 일 추우면 사 일은 미세먼지라니…. 우스갯소리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웃픈 현실이 아닌가.

*칼럼니스트 김경옥은 아나운서로, ‘육아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일하는 엄마, 육아하는 방송인’이다. 현재는 경인방송에서 ‘뮤직 인사이드 김경옥입니다’를 제작·진행하고 있다. 또한 ‘북라이크 홍보대사’로서 아이들의 말하기와 책읽기를 지도하는 일에 빠져 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베사모의 회원이 되어주세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실시간 댓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78 경찰공제회 자람빌딩 B1
  • 대표전화 : 02-3443-3346
  • 팩스 : 02-3443-3347
  • 맘스클래스문의 : 1599-0535
  • 이메일 : pr@ibabynews.com
  • 법인명: 베이컨(주)
  • 사업자등록번호 : ​211-88-48112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 01331
  • 등록(발행)일 : 2010-08-20
  • 발행·편집인 : 소장섭
  • 저작권자 ©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가입(10억원보상한도, 소프트웨어공제조합)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유미 실장
  • Copyright © 2024 베이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ibaby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