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적으로 선생님과 아이를 믿으셔야 합니다
전적으로 선생님과 아이를 믿으셔야 합니다
  • 칼럼니스트 전아름
  • 승인 2019.03.1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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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트윈스 육아일기] 생후 6개월 아기, 어린이집 보내도 괜찮을까?

생후 19개월에 접어든 경빈이 경진이는 아침 9시면 무조건 집 옆 어린이집에 간다. 자기 가방을 찾아 메고, 자기 운동화를 신고, 엄마 손을 꼭 잡고 스스로 걸어간다. 어린이집에 도착해선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갖다 놓고 엄마와 인사한 뒤 교실로 들어간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경빈이 경진이가 생활 습관이 아주 잘 잡힌 아이들 같아요. 훈련이 잘 돼 있네요”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나는 할 말이 없다. 나는 딱히 아이들의 생활 습관을 바로잡거나 규칙과 행동을 훈련하는 데 기여한 부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경빈이 경진이는 태어난 지 200일 만에 어린이집에 갔다. 200일의 경빈이 경진이는 주로 엎드려 놀고, 아직 분유를 먹을 때였다. 앉혀 놓으면 조금 놀다가 옆으로 쿵 하고 엎어지던 시절이다. 어린이집에 보내기엔 너무 어렸다.

그렇지만 내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갑작스런 임신과 출산, 결혼으로 나는 별안간에 유부녀이자 경단녀가 됐다. 다시 사회로 나가려면 결혼 전보다 곱절로 더 노력해야 했다. 아이들을 보면서 취업을 준비하고,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족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기댈 곳은 ‘어린이집’뿐이었다. 

다행히 경빈이 경진이는 빠르게 어린이집에 적응했다. 어린이집에서 아기들은 혼자 앉는 법, 잡고 일어서는 법, 걷는 법, ‘빠빠’, ‘곤지곤지’, ‘죔죔’, 같은 것들을 배웠다. 하원할 때마다 당시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은 오늘 아기들이 밥을 얼마나 먹었는지, 걸음마 연습을 하며 몇 걸음을 떼었는지, 컨디션은 어땠는지, 블록을 몇 개 쌓고, 고리 끼우기는 몇 개를 성공했는지 같은 것들을 이야기해주었다.

어떤 날엔 선생님이 “어머니, 경빈이 경진이가 이제 옹알이가 아니라 제법 단어를 말해요. '엄마'나 '아빠' 같은 말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알고 계셨어요?”라고 물어보면 그때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몰랐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TV에서 '반짝반짝 작은별' 동요가 나오니 아기들이 갑자기 손을 들어올려 손을 반짝반짝 흔드는 유희를 하기 시작했다. ‘사과 같은 내 얼굴’이 나오면 두 손으로 얼굴에 꽃받침을 만들어 몸을 흔들거리고, ‘예쁘기도 하지요~’ 가사가 나오면 손가락으로 볼을 콕 찌르며 가사에 맞춰 율동을 한다.

‘아기상어’가 나오면 손바닥을 캐스터네츠처럼 모으고 아기상어 율동을 한다. 처음 그 모습을 봤을 때 “얘들 혹시 천재 아닐까?”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알았다. 이게 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알려주신 것들이구나. 

경빈이 경진이 밥투정이 너무 심하던 어떤 날, 알림장에 나는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듯 ‘선생님, 요즘 경빈이 경진이가 저녁밥을 너무 안 먹어요. 어린이집에서도 이렇게 심하게 밥투정을 할까봐 걱정입니다’라고 써서 보냈다.

그날 알림장 답장에는 "어머니, 경빈이에게 새끼손가락을 잡게 하고 ’꼭꼭 약속해‘ 노래를 불러줘 보세요"라는 나름의 팁이 쓰여 있었다. 선생님의 말대로 하니 경빈이는 나의 새끼손가락을 잡고 ‘꼭꼭 약속해’ 가사가 나올 때마다 즐겁게 입을 벌리며 밥을 잘 받아먹었다. 역시,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몰랐을 것이다. 

생후 6개월부터 1년 동안 다닌 N 어린이집 수료식 사진. 새로운 어린이집에 씩씩하게 잘 다니는 경빈이 경진이가 기특하다. ⓒ전아름
생후 6개월부터 1년 동안 다녔던 어린이집 수료식 사진. 새로운 어린이집에 씩씩하게 잘 다니는 경빈이 경진이가 기특하다. ⓒ전아름

쌍둥이 유모차를 끌고 다니면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눈에 받는다. 특히 중년 이상의 아주머니들의 관심과 사랑을 각별하게 받았다. 골목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이 “아가들아, 이 아침에 어디 가니~” 라고 물으면 나는 “어린이집 가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꼭 “이렇게 어린 애들이 벌써 어린이집을 가냐”고 한마디씩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부터 어린이집에 보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종일 갓난아기 둘을 돌보면서 아이들의 발달을 도모하는 놀이를 해주기란 어려운 일이다. 먹이고, 씻기고, 치우고, 울면 달래주고, 재우고, 뒤 돌아서면 쌓이는 집안일을 해치우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때 너무 벅찼다.

그때 어린이집을 보낸 덕에 경빈이 경진이는 월령에 맞는 놀이와 발달을 체험하고 배울 수 있었고, 나는 나대로 집에서 집안일을 마무리 해 놓고 재취업에 필요한 준비를 차분히 해나갈 수 있었다. 

물론 아기들은 그 즈음 감기를 자주 앓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괜히 어린이집에 일찍 보내서 애들을 아프게 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우연히 만난 동네 소아과 의사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얘들은 태어날 때부터 둘이 함께였기 때문에 어린이집에 가든 안 가든 집단생활 중이라고 보면 돼요. 어떻게 해야 감기에 안 걸리냐고, 뭘 먹여야 되냐고 묻는 엄마들이 많은데 저는 그럴 때마다 이렇게 말해요. 그냥, 애가 좀 크길 기다리라고. 크면 덜 아프고 더 튼튼해지니까 괜히 마음 아파하지 마요.”

약 1년 전, ‘6개월 아기, 어린이집 보내도 될까요’라는 나의 질문글에 어떤 아기 엄마가 ‘저는 산후휴가는 썼는데 육아휴직을 못 써서 이제 백일 지난 아기 어린이집에 보내요. 저도 마음이 너무 아픈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댓글을 달았다. 댓글을 단 것인지 푸념을 한 것인지 모를 그 글에 지금의 나라면 이렇게 대댓글을 달아주고 싶다.

“아기가 너무 어릴 때 어린이집에 가서 마음 아프죠.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잖아요. 대신 아기들을 맡긴 시간만큼은 엄마가 일에 집중하고 집에 돌아와 최선을 다해 사랑을 주세요. 아기들은 어린이집에서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배워와요. 전적으로 어린이집 선생님과 아이들을 믿으세요. 나중에 돌아보면 그때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칼럼니스트 전아름은 어쩌다 쌍둥이 엄마가 된, 서울 용산에 사는 30대 여성이다. 얼떨결에 유부녀가 됐지만 아이를 낳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결혼 전엔 이런저런 글을 쓰고, 이런저런 잡지를 만들며 일했다. 애로 시작해 애로 끝나는 하루, 밥으로 시작해 밥으로 끝나는 하루를 살고 있지만 나쁘지 않다. 가장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god의 육아일기(MBC, 2000~2001). 요즘 육아일기를 다시 보며 육아를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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