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한 번 더 그러면 엄마 화날 것 같아"
"그만! 한 번 더 그러면 엄마 화날 것 같아"
  • 칼럼니스트 김경옥
  • 승인 2019.03.15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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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 '경고의 힘'은 생각보다 컸다

 "두 번째 경고야!"

나는 이 말을 몹시 두려워했다. 매번 나에게 경고장을 날리신 건 막내 외삼촌이었다. 어린 시절, 삼촌이 언제부터 우리 집에 살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기억 속 삼촌은 자그마한 삼촌 방에서 무언가를 끄적이거나 이선희 레코드판을 정성스레 닦다가 가늘고 기다란 막대기 같은 것을 살짝 들어 레코드판에 조심스레 올린 뒤 그녀의 목소리에 빠져들곤 했다.

삼촌은 가끔 작곡을 해보기도 했고, 그 곡을 기타로 연주하며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엔 주로 나를 혼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조금 자유분방했다. 그것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삼촌의 기준에서는 내가 제법 자주 허용범위를 넘나들곤 했나 보다.

호기심에 삼촌의 물건을 만지다 원상복구가 안 된 상태로 들통이 나거나, 밥을 먹다가 딴짓을 하거나, 방을 어지르거나, 집 전화를 너무 오래 쓰거나 등등 혼날 거리는 참 많았다. 남들 삼촌들은 그렇게도 자상하더구먼 내 삼촌은 왜 이리 무서운지 좀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무서운 호랑이 삼촌도 늘 지켰던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만회의 기회'였다. 

삼촌이 혼을 낼 땐 나름의 절차가 있었다. 혼이 날 일을 할 때마다 알려주는 것이다. '이것은 하면 안 되는 행동이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두 번까지는 봐준다. ⓒ김경옥
삼촌이 혼을 낼 땐 나름의 절차가 있었다. 혼이 날 일을 할 때마다 알려주는 것이다. '이것은 하면 안 되는 행동이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두 번까지는 봐준다. ⓒ김경옥

지금이야 '1인 1휴대전화' 시스템이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집에 전화가 딱 한 대 있었다. 내가 친구와 통화를 하는 것도, 엄마가 친척들과 통화를 하는 것도, 삼촌이 지인과 전화로 일을 보는 것도 모두 그 전화기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그래서 종종 누군가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친구와 한참 통화를 하다가 '그럼 못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는 말을 남기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니 이내 전화벨이 울린다. 삼촌이다. 계속 통화 중이어서 제때 용건을 전하지 못한 삼촌은 몹시 화가 나셨다.

하지만 불같이 화를 내는 대신 '첫 번째 경고'를 하셨다.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면 두 번째 경고장이 오고, 그게 세 번째까지 쌓이면 나는 삼촌 방으로 소환돼 면담을 하게 된다. 그 면담은 삼촌 입이 주도하기도 하고 30센티 자가 대신하기도 한다. 삼촌에게 혼나는 일은 매번 새로운 두려움을 주었다.

삼촌의 경고는 늘 새롭게 겁났다. 삼촌이 혼을 낼 땐 나름의 절차가 있었다. 혼이 날 일을 할 때마다 알려주는 것이다. '이것은 하면 안 되는 행동이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두 번까지는 봐준다.

◇ '경고'를 하면 아이는 스스로 멈춰야 할 때를 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늘 자상하고 이해심 많은 엄마이기는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상적인 엄마 노릇을 좀 하다가도 어느 순간 단전부터 치미는 화가 아주 빠르게, 제어할 틈도 없이 머리끝까지 수직 상승한다. 그때 필요한 것은 참는 것도 화를 내는 것도 아니다. 경고다.

5살이 된 아이는 짜증이 나지 않아도 될 타이밍에 짜증을 내기도 하고, 말로 해도 되는 일에도 말 대신 몸을 쓰기도 한다. 어느 날 아이는 자기가 물을 쏟아 놓고 나에게 짜증을 내더니 나를 툭툭 찼다. 아니, 내가 쏟지도 않은 물을 내가 미안해하면서 닦아야 한단 말인가? 처음에는 아이에게 "물은 쏟을 수도 있는 거고, 엄마도 가끔 그런 실수를 한단다. 쏟아진 물은 닦으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이미 무언가에 짜증이 난 아이는 엄마의 '나긋나긋'한 조언도 짜증스럽게 받아쳤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와서 나를 툭툭 찬다. 하지 말라고 말해도 행동을 그치지 않아 경고를 했다. "그만! 한번 더 하면 이번에는 엄마가 화가 날 것 같아" 내 말을 들은 아이는 잠시 생각했다. 그만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들면서도 그렇다고 엄마가 그런 말을 하자마자 그만두는 것은 또 자존심이 상했는지 '치는 시늉'을 하다가 엄마의 몸에 닿기 직전에 행동을 멈추었다.

경고의 힘은 생각보다 컸다. 그렇다고 그 이후 아이가 나를 전혀 치지 않고 모든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을 멈추어야 할 때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만두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게 되었다.

"이 문서 좀 정리해 줘"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일을 맡긴다. 상사는 자신이 일을 준 그 즉시 부하직원이 움직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부하직원은 지금 하고 있는 다른 업무가 있기에 그 일을 끝내 놓고 문서를 정리할 생각을 한다.

몇 시간이 지나고 상사는 묻는다. "문서 정리 다했으면 좀 가져와 보지" 부하직원은 당황한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이제 막 상사가 시킨 일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얘기만 있었을 뿐, 언제까지 해야 한다는 말은 없었기에 둘의 생각이 달랐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누군가는 답답해지고 누군가는 억울해진다. 아이와도 마찬가지다.

"또 한번 더 그러면 엄마가 화날 것 같아."

그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언제 멈춰야 하는지 서로 정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내가 답답해지지 않도록, 아이가 억울해지지 않도록 말이다.

*칼럼니스트 김경옥은 아나운서로, ‘육아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일하는 엄마, 육아하는 방송인’이다. 현재는 경인방송에서 ‘뮤직 인사이드 김경옥입니다’를 제작·진행하고 있다. 또한 ‘북라이크 홍보대사’로서 아이들의 말하기와 책읽기를 지도하는 일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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