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엄마 좀 행복해도 될까?”
“얘들아, 엄마 좀 행복해도 될까?”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9.03.15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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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베트남 카페 투어

호찌민은 오기 전에 생각한 것과 달리 할 게 별로 없었다. 애들과 다니는 ‘엄마 투어’도 몇 번이면 다 끝날 것 같았다. 그리고 솔직히 ‘엄마 투어’만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애 둘과 온 한 달 살기지만 나 좋은 것도 좀 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카페 투어였다. 분위기 괜찮은 곳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쓸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애들은 어쩌냐고? 저들 하고 싶은 자유시간을 주면 오히려 집에 있는 것보다 좋아하지 않을까? 내 예상은 적중했다.

여행을 오기 전부터 찜해둔 곳인데, 정말 우연히 들르게 된 워크숍 커피. 카페는 입구부터 심상치 않았다. 몇십 년도 더 된 건물의 계단을 오르며 나는 혹시 바퀴벌레가 나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반면 아이들은 영화 ‘해리포터’ 배경인 마법학교 호그 와트에 있는 계단 같다며 좋아했다. 오호라 정말 그렇네. 아이처럼 바퀴벌레 걱정 따윈 금세 잊었다.

초콜릿 카페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 ⓒ최은경
초콜릿 카페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 ⓒ최은경
해리포터에 나오는 계단 같다고 좋아하던 아이들. ⓒ최은경
해리포터에 나오는 계단 같다고 좋아하던 아이들. ⓒ최은경

카페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을 때, 나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내 '취향 저격'이었다. 마침 창가 자리도 있었다. 누가 먼저 앉을 사람도 없는데 냉큼 자리를 잡았다. 앉고 보니 아이들과 함께 있기는 의자가 높아 다소 불편해 보였다. 옆 큰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혼자 왔으면 이 분위기를 더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툴툴대지 않고 여기까지 함께 와준 것만도 감사했다.

평소 즐겨먹는 카페 라테와 아이들이 먹을 간식을 시켰다. 원고 10개도 거뜬히 쓸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와 컨디션이었다.

그리고 주문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셨을 때, ‘그래 이 맛이지!’ 진심으로 행복했다. 아이들 앞이지만 애처럼 흥분된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때였다.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온 것은.

“얘들아, 엄마 좀 행복해도 될까?”

큰아이가 말했다.

“그럼! 엄마 이 행복을 누려. 그런데 그 커피가 그렇게 맛있어? 정말로?”

그랬다. 다시 못 먹어볼 맛이었다. 그 날, 그 시간, 그곳에서의 행복감으로 커피 맛이 더 좋았던 것이리라. 오래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한 달 살기를 끝내고 온 지금도 베트남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을 꼽는다면 단연, 그 카페에서의 시간이다.

이런 분위기와 컨디션이라면 원고 10개는 거뜬하게 쓰겠다. ⓒ최은경
이런 분위기와 컨디션이라면 원고 10개는 거뜬하게 쓰겠다. ⓒ최은경
실제 이곳은 카페 이름답게 일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 틈에 있는 내가 마치 디지털 노마드족이라도 된 것 같았다. ⓒ최은경
실제 이곳은 카페 이름답게 일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 틈에 있는 내가 마치 디지털 노마드족이라도 된 것 같았다. ⓒ최은경

카페에서 내 일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뭘 했을까? 마침 한 번도 묻지 않았던 말을 꺼내는 큰아이. “엄마, 게임하면 안 돼요?” 나에게 행복을 마음껏 누리라는 아이들에게 뭘 못하게 할까. 나는 무장해제 되었다. 게임을 하라고 했다. 남편은 종종 하게 해 주는 데 반해 나는 한 번도 허락해준 적 없는 핸드폰 게임이었다.

대신 ‘둘이 같이할 수 있는 게임’이라는 제한을 뒀다. 이유가 있었다. 핸드폰은 한 개인데, 따로 하면 누군가는 기다려야 할 테고 기다리는 동안 짜증을 부릴 테니까. 같이 하는 게임은 보기 좋았다. 큰아이가 동생에게 게임 룰을 알려주는 모습, 게임을 하면서 서로 많이 웃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그 이후로 자주 카페에 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자주 행복했다. 누가 그랬다. ‘행복감이란 얼마나 크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자주 느끼냐의 문제’라고(도시건축가 김진애씨의 말이다).

워크숍커피를 나오면서 큰아이가 말했다. 마치 미국 영화 속 한 장면 같다고.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무언가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특히 헤드셋을 끼고 노트북을 보며 일하는 털 많은 아저씨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게임하느라 주변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 같아 살짝 아쉬웠는데 기우였다. 아이들도 저들의 눈높이로 다 보고 느끼고 있었다.

작게 보이는 워크숍커피. ⓒ최은경
작게 보이는 워크숍커피. ⓒ최은경

두 딸들이 자라 어느덧 엄마와 한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니… 그 모습이 낯설면서도 감동적이었다. 어느새 이렇게 컸나 싶어 뭉클한 마음도 들었다. 오전에 운동과 수영을 마치고 오후에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카페로 향했다. 각자의 자유시간을 위하여. 딸은 1일 1기록에 이렇게 썼다.

1월 31일
오늘은 초콜릿 카페에 갔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 정반대였다. 초콜릿 만드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림을 그렸고, 꽤 만족스러웠다. 다음에도 카페에서 노래를 들으며 그림 그리면 좋겠다.

2월 3일
위미 카페에 가서 그림을 그렸다. 역시 카페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뭔가 좋음. 엄마는 여기 커피가 ‘지이인짜아아’ 맛있다고 한다. 과연 그 커피는 진짜 맛이 있을까? ㅡㅡ;

다다야, 그 카페 커피는 '지이인짜아아' 맛있었지만 커피보다 너희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을 엄마는 절대 잊지 못할 거야.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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