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이 된 연이, 널 불안해하지 않을게
'초딩'이 된 연이, 널 불안해하지 않을게
  • 칼럼니스트 신은률
  • 승인 2019.03.2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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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육아감옥] 아이를 믿는다는 것은, 엄마로서 나를 믿는다는 것

연이가 초등학생이 되었다. 오후 1시 10분, 새내기들이 급식을 먹고 교실을 나올 시각이다. 어른 배꼽 높이의 아이들이 줄줄이 서서 같은 그릇에 같은 반찬을 담는다. 웃음소리를 고명으로 얹고서는 오물조물 앙증맞게도 먹는다. 숟가락이 오르내릴 때마다 남몰래 아이들은 키가 자라고 생각이 굵어질 것이다. 그러면서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양식에 천천히 길들어 간다.

어린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의 마음으로 나는 12시부터 초조해진다. 방을 정리하면서, 그릇을 부시면서, 옷을 개키면서 시계를 재차 확인한다. 부엌에서 서성이다 보면 시간이 내리막에 놓인 공처럼 후루룩 굴러간다. 30분이나 일찍 맞춰놓은 알람은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훈계처럼 들린다. 알람이 울리고서는 마음이 더 바쁘다. 엄마가 되고서 자주 깜박깜박하게 되니 연이를 데리러 갈 시간을 잊을까 봐 신경이 곤두선다.

입학식이 있던 첫 주는 시계 보느라 오전이 다 지나갔다. 보내고 돌아서면 아이가 온다는 말을 실감했다. 돌아서면 연이가 오고 돌아서면 하루가 갔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한날은 밥을 먹으려고 국을 데우다가 무심코 시계를 보았다. 짧은 바늘이 12, 긴 바늘이 2를 지나가고 있었다. 연이가 마치기 직전이다. 5일 중 하루, 수요일은 일과가 12시 20분쯤 끝나기 때문이다.

너무 놀라서 순간 몸이 굳었다.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거지?’ 무거운 징처럼 머리가 '데엥' 울렸다. 겉옷을 들고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뛰어가는 길에 가스레인지를 제대로 껐는지 머릿속 테이프를 빠르게 감아보았다.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었다. 연이가 교문 앞에서 어리둥절할까 봐, 지금의 연이라면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 옷깃을 여미며 두 발을 재촉했다.

급하게 나와 보니 어쩐지 분위기가 싸했다. 미세먼지 때문에 세상이 회색빛이라 그런가, 학교 앞 횡단보도에 서서 초조하게 신호를 기다리며 눈을 몇 번 껌벅거렸다. 교문은 저만치 있는데 교문 앞에서 삼삼오오 아이들을 기다리는 엄마들은 보이지 않았다. 불현듯 일찍 마치는 수요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아, 오늘 화요일이구나’ 초록 불 신호가 카운트에 들어가자 허무한 반전영화를 본 것처럼 헛웃음이 나왔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면서 ‘사서 일을 만든다’고 나를 놀리던 남편 얼굴이 떠올랐다. 다행히 가스레인지는 꺼져 있었다. 데워지다만 국을 다시 끓여 식탁에 앉았다. 밥을 먹고 나면 진짜 연이 하교 시각이 될 터였다. 그러고 보니 연이를 보낼 때만 해도 분명 화요일인 걸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왜 허둥댄 걸까. 들이마신 미세먼지에 머리까지 뿌예진 기분이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몸도 여기저기 쑤시고 아팠다.

 '쿨' 하지 못해 미안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란 건 오랜만이었다. 어린이집, 유치원을 통틀어 지금이 연이가 제일 일찍 오는 때인데도 나는 돌아서면 오는 연이를 애를 태우며 기다렸다. 그건 아마도 새로운 환경에서 연이가 어떤 모습일지 내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연이가 처음 맞닥뜨리는 크고 단단한 세상. 한 반 친구들이랑 지내던 유치원과 10반 친구들과 뒤섞일 학교가 연이에게는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다.

선생님 말씀은 잘 듣는지, 책상엔 잘 앉아 있는지, 짝꿍과는 무슨 얘기를 하는지. 어서 연이 얼굴을 마주 보고, 학교 소식을 듣고 싶다. 부모가 쉬이 들여다볼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건물 안은 사실 좋은 상상으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변명보다는 성실이 요구되는 곳에서 눈치를 먼저 배우지 않기를. ‘차가운 절차’로 갈등을 해결하는 안타까운 일은 부디 일어나지 않기를. 연이가 학교에 간 오전은 괜한 걱정을 소망으로 덮는 데 쓰였다.

며칠 동안 연이의 하교를 기다리는 내 모습은, 표정만 덜 심각했지, 고3 수험생 엄마가 교문에 매달려 읊조리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교문 앞에 서면 나는 매번 가슴을 쓸어내릴 준비를 했다. 학교를 나서는 연이의 표정이 밝기를 바랐다. 들숨 후에 날숨을 쉬는 것처럼 나는 두 가지를 쉼 없이 반복했다. 다행히 매번 연이는 웃는 얼굴로 뛰어나왔다. 학교가 재미있어서 또 가고 싶다고 했다. 처음을 받아들이는 마음결이 엄마보다 고왔다.

학교 마치고 운동장에서, 즐거운 '초딩' 연이. ⓒ신은률
학교 마치고 운동장에서, 즐거운 '초딩' 연이. ⓒ신은률

수요일로 착각한 화요일 오후, 제 시각에 맞춰 교문 앞에 다시 섰다. 이번에는 멀찌감치 섰다. 한 시간 전의 뜀박질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연이는 세상의 모든 처음을 함께 할 기회를 나에게 주는 대신, 때마다 잊지 않고 질문을 던진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그건 계속 불안해 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믿어줄 것인지에 대한 확인이다. 그럴 때마다 연이를 키우는 일은 미로에서 길을 찾는 것처럼 느껴진다. 헤매는 건 당연지사. 나가는 길은 언제나 하나뿐인 미로.

교문 앞에 서서 나는 연이에게서 또 한 발 물러설 때임을 조용히 깨달았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처럼, 긴장한 팔과 다리의 어설픈 움직임을 보며 기꺼이 행복해 했던 것처럼, 연이의 질문 앞에서는 어떤 시행착오에도 대견해 하는 일만이 내 몫으로 남는다. 내가 해야 하는 건, 몸과 마음 모두 엄마 눈높이를 훌쩍 넘긴 연이를 상상하는 것이다. 연이가 속하게 된 크고 단단한 세상은, 그만큼 연이를 크고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애초에 나와 한 몸이었던 아이에게서 물러서는 일은, 때로는 중력을 거스르는 것처럼 힘겹다. 어떻게 인생의 한때, 한쪽은 무한한 사랑과 관심으로 채워지고, 다른 한쪽은 그 관심을 밀어내고 자립하는 게 목표가 되는 걸까. 탯줄이 잘라지는 순간, 아이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는 것처럼 자지러진다. '가장 가까운 타인'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그러나 아이를 품었던 기억은 출산의 고통을 지워버릴 만큼 강렬해서, '부모 마음'이라는 말로 에두르며 엄마는 아이를 내 것으로 두고 만다.

육아는 결국 엄마의 홀로서기가 아닐까

잠시 후 연이가 교문을 콩콩 넘어 나왔다. 목을 빼고 나를 찾았다. 저쪽 한 번, 이쪽 한 번. 엄마를 찾는 연이의 고갯짓이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공식적으로 아이들만 넘나들 수 있는 차가운 쇳덩이는 더 이상 아이와 부모를 가르는 경계로 보이지 않았다. '가르치고 배우는 곳'을 감싸고 있는 교문은 묵직하게 말하고 있었다. 엄마의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모든 건 아이에게 맡겨두라고. 엄마의 불안이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이 자란다고.

연이를 키우며 재미있게 느껴지는 지점은, 아이를 믿는 일은 나를 믿는 일과 같다는 점이다. 내가 흔들리면 아이의 모든 게 불안하게 보인다. 반면에 내가 중심을 잡고 있으면 아이가 흔들려도 있는 그대로 보듬어줄 수 있다. 그러니 연이를 믿고 물러선다는 것의 의미는 엄마로서 나를 믿는다는 말과 통한다. 그 믿음에는 내가 언제고 헤맬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도 포함돼 있다. 제 본분을 다해 부모에게서 멀어지는 아이를 염려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 그게 부모의 성장일 것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철들게 한다”라고 작가 은유는 말했다. 알고 있지만 잘 되지 않는 일은 스스로를 곱씹어 보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를 낳아야 철이 든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연이는 여물어가고 나는 철이 들며 미로 같은 육아의 시간을 빠져나오게 될 것이다. 초등학생이 된 연이와 손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며칠 사이 더 의젓해진 연이를 보며 육아는 ‘엄마의 홀로서기’임을 다시 깨닫는다.

*칼럼니스트 신은률은 글을 쓰며 '가정의 주인(主婦)'으로 살고 있다. 여덟 살 연이, 여섯 살 윤이를 키운다. 일 년의 절반은 육아를 전적으로 담당하고, 나머지 절반은 남편에게 육아를 가르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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