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했으면 집에나 있지"라는 말, 브라질엔 없다
"임신했으면 집에나 있지"라는 말, 브라질엔 없다
  • 칼럼니스트 황혜리
  • 승인 2019.04.0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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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 브라질 육아] 브라질의 임산부·아기배려줄

브라질. 이 나라의 이름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한국보다 못 사는 나라? 치안이 안 좋은 나라? 아마존? 축구선수 호나우두? 쌈바축제? 무엇이 되었든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브라질을 썩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더욱이 임신과 출산, 육아 등에 있어서도 브라질이 한국보다 안 좋은 나라라는 생각도 할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브라질에 와서 임신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점점 브라질은 한국보다 아이 키우기에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한국도 브라질보다 좋은 점이 있긴 하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브라질과 한국의 임신, 출산, 육아 환경 등을 비교하며 글을 써볼 생각이다. 첫 주제는 ‘임산부, 노약자, 장애인, 어린아기 배려줄(임의로 명명했다. 이하 ‘배려줄’)’이 되겠다.

어느 브라질 마트의 노약자, 임산부, 장애인, 그리고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계산 창구 ⓒ황혜리
어느 브라질 마트의 노약자, 임산부, 장애인, 그리고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계산 창구 ⓒ황혜리

처음 브라질에 와서 가장 먼저 문화 충격을 받았던 것이 바로 ‘배려줄’의 존재였다. 나는 브라질에서 임신한 뒤 공공기관, 레스토랑, 마켓, 병원 등을 이용할 때 오래 기다려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장소에는 임산부를 포함해, 아기를 데리고 온 사람, 노약자, 장애인 등만 이용할 수 있는 전용 줄이 있기 때문이다.

앞에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도 임산부라면 먼저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나보다 먼저 온 임산부나 노약자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 다음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먼저 들어간다고 하여 나보다 먼저 기다리던 다른 일반 사람들이 절대로 눈치를 주는 일은 없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당연한 문화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그 권리를 아기와 함께 누리고 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레스토랑인 '아○백'을 갈 때 많이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 정말 좋다.

하지만 한국은? 레스토랑에서 임산부라고, 아이가 있다고, 노약자, 장애인이라고 먼저 들여보내 주는가? 마트 등에서 이들만의 전용 줄이 있는가? 은행 같은 기관에서 이들만의 전용 번호표가 있는가?

나는 이 배려줄을 인천 공항에서 본 적이 있다. 브라질에서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기 전에 가족들과 친구들이 보고 싶어 한국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다. 입국 심사대에서 임산부, 노약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줄이 보이길래 안내해주는 공항 직원에께 "지금 임신 중이니 이 줄에 서도 되냐"고 물어봤다.

임신 초기를 막 지난 상태라 배가 그리 많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임산부가 아니라고 생각할까봐 물어본 것이었다. 하지만 그 직원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사람도 많이 없는데 그냥 일반 줄 서세요."

일반줄에도 사람이 한두 명밖에 없긴 했다. 하지만 배려줄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왜 꼭 굳이 그렇게 말해야 했을까? 물론 그 직원이 유난히 퉁명스러웠던 것일 수도 있지만 한국의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브라질과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브라질은 한국처럼 인프라나 치안이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임산부, 아이 있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한국보다 훨씬 선진화되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한국에도 이러한 배려문화가 들어온다면 우리는 어떤 의미로 진정한 선진국이 되어 갈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의 어떤 이들은 이러한 배려를 임산부들, 아기를 가진 이들이 유세 떤다고도 말한다. 글쎄? 노약자, 장애인만 약자고 임산부는 약자가 아닌가? 오히려 건강한 어르신보다도 자칫 잘못하면 위험할 수도 있는 게 임산부다.

그렇다면 아이를 가진 사람들은? 예를 들어 무언가를 기다릴 때 어떤 이들은 적당히 무게감이 있으면서 움직이지 않는 가방을 메고, 스마트폰을 하거나 책을 보며 기다린다. 그러나 아이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은 최소 3~5kg 이상의, 끊임없이 울고불며 움직이려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면 아이를 데리고 나오지 말라고? 아이를 맡길 사람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없다면?

한국에서는 심심치 않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 "임신했으면 집에나 있을 것이지", "아기 낳았으면 집에나 있을 것이지" 그러면서도 저출산 문제가 심심찮게 대두된다. 저출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저렇게 임산부나 아기 있는 사람들은 배려하지 않는 환경도 저출산 문제의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어떤 여자가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앞서 본 브라질의 배려문화가 한국에도 들어온다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황혜리는 한국외대 포르투갈(브라질)어과를 졸업하고 현재 브라질에서 1년 4개월 된 아들을 기르고 있는 엄마입니다. 브라질에서 임신, 출산, 육아를 경험하며 이 문화들을 한국과 비교하고 소개하고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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