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가 끝나는 금요일의 하원 시간은 유난히 북적거린다. 일주일 동안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썼던 비품들, 활동했던 교구들이며 생활안내, 식단표 등 유인물도 가득 받아 오기 때문이다. 이번 주 정리와 다음 주 준비만으로도 정신이 없어 유인물은 폭풍 같은 정리 시간이 지나간 후에야 비로소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이어서 바로 찾아오는 주말도 엄마에게는 쉬는 날이 아니니까.
아이가 이번에 받아온 유인물에는 찬·반 여부를 묻는 듯한 학부모 운영위원회 동의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에 받은 적 없던 낯선 유인물은 괜히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3월이 시작되고도 몇 주는 지난 후에 받은 터라 갑자기 무슨 사건이라도 생겼나 걱정부터 앞섰다.
학부모회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보통 초등학교 때나 되어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나에게 학부모 운영위원회라는 것에 대한 인식은 어쩐지 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해결을 위해 앞장서는 역할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탓이기도 했다.
그런데 주위에 물어보니 이미 대부분의 어린이집에는 학부모 운영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분기마다 일정한 회의를 진행하고, 상호 협의 하에 바람직한 운영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기본이며 어린이집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해당 사항에 대해 먼저 원과 소통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했다.
또 배식, 현장학습 등 일부 수업이나 일상에 봉사활동을 겸해 참여 하거나 긴급 휴원(재난, 전염병 등)과 같은 사항도 함께 의논해 진행한단다. 심지어 소통이 더욱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어린이집에서는 특별활동으로 진행되는 과목 여부나 업체 선정, 아이들 원복에 대한 디자인까지 세심하게 상의해 결정한다고! 이쯤 되니 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는 왜 그동안 학부모 운영위원회가 없었던 것인지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더 많이, 자세히 알아볼수록 학부모 운영위원회는 일방적으로 학부모가 원에 개입이나 간섭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잦은 소통을 통해 서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원을 이끌어 가려는 노력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왠지 내가 학부모 운영위원회에 적극 찬성한다고 나서거나 직접 참여해 돕겠다고 하면 괜히 아이 일에 나서는 극성 엄마처럼 보일까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유로운 나라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아내, 혹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무언가 앞장서서 활동하는 것에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은 현실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라도 바로잡아 절차에 맞게 학부모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동안 학부모 운영위원회가 없었던 지난 한 해는 학부모와 우리 아이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외면당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학부모 운영위원회가 구성돼 있지 않다면 오히려 엄마들이 나서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겪어 보니 원에 불편 사항이 있거나 개선했으면 하는 일들, 혹은 궁금한 것이 있을 때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다 보면 감정이 상할 수도 있고, 어디까지가 개입이고 간섭인지 헷갈릴 때도 너무나 많았다. 어디까지가 적법한 절차인지까지 따지고 들어가면 말할 수 없이 난감하다. 그렇기 때문에 학부모 운영위원회는 원을 바람직하게 운영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개인의 유난스러운 자식 사랑, 혹은 엄마들의 불필요한 집단행동이라고 몰아가는 부정적인 시선이 있다면 반드시 위원회의 일원으로 꼭 참여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당연한 권리를 누릴 수 있을 때 찾아오는 만족도는 이전과 질적으로 다른,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또 그 어떤 이유를 제쳐두고라도 내 아이가 생활하는 곳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조금 더 확실하고 투명하게 부모들도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권리를 남용하는 것은 문제이지만 정당한 권리를 누리는 것은 떳떳하고 당당한 일이다. ‘학부모 운영위원회’. 우리 아이가 올바른 환경에서 성장하도록 돕는 일이라면 더 이상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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