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별거 아냐… 엄마들은 이미 모두 페미니스트”
“페미니즘 별거 아냐… 엄마들은 이미 모두 페미니스트”
  • 김재희 기자
  • 승인 2019.04.10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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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엄마 페미니스트 표방하는 독서모임 ‘부너미’

【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지난달 27일, 베이비뉴스는 부너미 구성원 네 사람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당인리 책발전소’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이예송, 이성경, 아이린, 은주 씨.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달 27일, 베이비뉴스는 부너미 구성원 네 사람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당인리 책발전소’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이예송, 이성경, 아이린, 은주 씨.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맹독을 가진 생선 복어. 독특한 풍미 때문에 사랑 받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숙취에 찌든 머리를 맑은 복지리 국물에 씻어내는 날이면, ‘어떤 용감한 사람이 이걸 처음 먹어볼 생각을 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저도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이 정도로 힘든 일인데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하는 배신감 때문에 집에서 애기 안고 부들부들 떨다가 나와서 글을 쓰게 됐어요.(이예송)”

지난 2월, 책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민들레)가 출간됐다. 엄마 페미니즘 탐구그룹 ‘부너미’의 글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은 한 편의 실험 보고서와 같다. 미식과 죽음 사이에 기꺼이 몸을 던지며 복어를 먹던 옛날 어떤 사람처럼, 이들은 실패할 것을 알면서 가부장제 안으로 균열을 내기 위해 거듭 뛰어든다.

“이 책을 읽고 ‘너는 메갈ⅩⅩ과 다른, 진정한 페미니스트구나’, ‘거친 말을 안 해서 좋다’라는 말을 칭찬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전혀 기분이 좋지 않죠. 우리가 진정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처럼 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전쟁터를 보면 망루에서 싸우는 사람, 잠복하는 사람, 게릴라전에 임하는 사람 등 전술도 싸우는 방식도 위치도 다르잖아요. 우리는 결혼해서 그 테두리 안에서 싸우는 방식을 얘기하려는 거죠. 우리처럼 싸우라는 얘기가 아니고요.(이성경)”

봄볕이 유난히 좋았던 지난달 27일, 베이비뉴스는 부너미 구성원 네 사람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당인리 책발전소’에서 만났다. 이들 중 대부분은 출산과 육아가 페미니스트로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첫째로 딸을, 둘째는 아들을 낳아 ‘200점짜리 엄마’라고 불린다는 이성경 씨와 9개월차 아이 엄마면서 복직을 앞두고 있다는 이예송 씨, 부너미를 만나고 자신이 가부장제에 젖어 있다는 걸 발견했다는 아이린 씨, 그리고 다섯 살 난 남자아이와 단역영화배우 남편과 살고 있는 프리랜서 문화기획자인 은주 씨가 자리했다.

이들에게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책에 나오지 않았던 한국 사회의 공고한 가부장제도 사이에서 우연히 눈 뜬 초보 페미니스트들의 도전기를 조금 더 청해봤다. “왜 안 돼요?”라는 되물음에서부터 시작한 인터뷰는 두 시간을 훌쩍 넘겼다.

아이에게 매년 한복을 지어입히고, 육아를 위해 빈곤을 선택했다는 은주 씨.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아이에게 매년 한복을 지어입히고, 육아를 위해 빈곤을 선택했다는 은주 씨.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Q. 책 제목이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입니다. ‘페미니스트’와 ‘결혼’은 그동안 낯선 조합처럼 느껴졌습니다. 결혼과 페미니즘을 이분법적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은주 “제목을 정할 때 논란이 많았어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 페미니스트가 된 사람도 많은데 이 제목이 맞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고요. 우스갯소리로 페미니스트가 결혼을 하는 이유를 ‘자신들은 다르게 살 줄 알고 한다’고 했는데, 저도 그렇게 살 줄 알고 결혼을 했어요. 좀 더 자유롭게 제 의사대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게 되는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어요.” 

이성경 “결이 다른 페미니즘도 있다는 걸 책에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결혼과 페미니즘이 이분법적인 게 아니에요.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라는 질문이, 이 두 단어 사이에 있는 적대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를 무마시켜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엄마들과 만나서 얘기해보면 가사불평등, 시가와의 문제 등에 페미니스트로서 시각을 가지고 있어요. 막상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나오면 아니라고 하면서 선을 긋죠.”

이예송 “책을 읽은 분들이 ‘페미니스트 별 거 아니네’하는 반응을 보내왔어요. 저는 결혼을 하고 남편과 가사 분담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출산을 하면서 이 생각에 균열이 생겼어요. 아이 젖은 제가 줘야 하니까요. 제가 바라는 건 별 게 아니에요. 육아를 분담했으면 좋겠다거나, 사회가 엄마에게 지우는 무게가 과하다거나, 아이 양육에 있어 성역할이 깨져야 한다거나 하는 얘기를 해요. 그럼 ‘아, 이게 페미니스트야?’라고 물으시더라고요.”

은주 “0과 1사이에는 무수하게 많은 수가 있잖아요. 페미니즘도 마찬가지에요. 넓은 스펙트럼 안에서 기혼이나 비혼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생활과 연결돼 있는 문제예요. 무수한 가능성을 포함하는 게 페미니즘이라고 봐요. 탈코르셋 문제도 그래요. 화장·결혼·모유수유 여부 같은 것들로 페미니스트를 가르면 순수하게 ‘페미니스트’라고 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 싶어요.”

아이린 씨는 일이 좋아 창업을 선택하고, 기업에서 일생활 균형을 위해 시도들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아이린 씨는 일이 좋아 창업을 선택하고, 기업에서 일생활 균형을 위해 시도들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Q. 한국 사회에서 기혼 여성이자 페미니스트로 살고자 한다면,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걱정했던 것보다 쉽게 해결됐던 사건이 있었나요?

은주 “쉬운 게 어디 있어요. 쉬운 건 없었어요.(일동 웃음)”

이예송 “지인에게 저희 책 제목이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라고 했더니 ‘실망했다’고 반응하는 거예요. 그 사람에게 ‘페미니즘의 근원에 우리가 곁을 조금씩 바꿔 나가면서 서로가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다’라고 설명하니까 이해하더라고요. 엄마한테도 ‘엄마만 밥 차리지 말라는 얘기야’라고 하면 ‘어머, 그거 좋은 얘기다!’라고 반응하세요. 일상에 있는 일부터 설명을 하면 그 벽이 쉽게 허물어지는 거 같아요.”

아이린 “제 성격에 제일 쉬웠던 게 한 가지 있었어요. ‘할 말은 하는 것’이요. 부드럽게든 친절하게든 요구사항을 전달했을 때 상대가 나를 계속 괴롭히지는 않았어요. 남편이 제게 아침을 얻어먹고 싶은 걸 요구를 하잖아요. 저는 ‘당신이 그 말을 하는 거 자체가 스트레스이니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요. 남편이 더 요구할 수 없게 되잖아요. 그래서 편안해지는 거죠.”

이성경 “실제 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악마가 아니에요. 남편이나 시가 식구들, 친구들도 대화를 해보면 여지가 있어요. 저는 시가에서 오는 전화를 안 받아요. 안 받기 시작하고 몇 번 지나면 어느 순간 안 하세요. 시어머니께도 ‘전화는 내가 할 일이 아니라 남편이 할 일’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우려했던 것보다 쉽게 받아들이셨어요.”

아이린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말을 했다는 사실이에요. '우리가 스스로 요구하고 거부하고 요청했는지'인 거죠.”

이성경 “‘한국 남자 다 똑같아’라는 말을 안 좋아해요. 1년이 걸리냐 10년이 걸리냐 차이지만 변하긴 변해요. 이 사람도 내가 좋아서 결혼했기 때문에 내가 불행한 걸 원하지 않아요. 잘못 교육받아서 모르는 거지. 바꿔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싸우는 게 겁나죠. 그동안 여성들에게 언어가 없었잖아요. 남성 중심의 문화가 불합리하다고 느껴도,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참는 여성들이 많아요. 아내라면, 엄마라면 참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요. 그들에게 ‘말해도 돼’, ‘이상한 건 이상한 게 맞아’라고 해주고 싶어요.”

이예송 씨는 "우리 책이 고전처럼 ‘한국 사회가 진짜 이랬다고?’ 하며 회자될 수 있으면 재미있겠다"고 말했다. ⓒ베이비뉴스
이예송 씨는 "우리 책이 고전처럼 ‘한국 사회가 진짜 이랬다고?’ 하며 회자될 수 있으면 재미있겠다"고 말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Q.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여성들이 생활에서 느끼는 답답함이 해소될 수 있을까요?

이성경 “남편과 합의해서 결혼을 선택했고, 아이를 좋아해서 출산과 육아를 선택했지만, 선택 이후 삶이 너무 달라져요. 육아를 하면서 부부는 인간 한계에 부딪혀요. 합의를 해서 서로 반반씩 육아를 하려고 하면 가난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어마어마한 결단이 있어야 하죠. 모든 사람이 육아를 할 수 있게 노동환경이 개선돼야 남자도 함께 돌봄에 임할 수 있다고 봐요.”

아이린 “왜 여자에게 혜택을 만드는 방식으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려는지 모르겠어요. 여자에게 정책적인 혜택을 주면 여자는 사회에서 도태돼요. 혜택은 동등하게 주어져야 해요. 저는 자유롭게 시간을 쓰려고 창업을 선택했고, 그러면서 리모트 워킹으로 근무환경도 다 바꿨어요. 직원에게 자유를 줘도 회사가 돈을 못 벌지 않아요. 우리나라 조직문화는 노동력을 쪽쪽 빨아먹어야 돈을 벌 수 있다고 인식해요. 사회적 문화도 다 바뀌어서 당연히 남자도 육아휴직 쓰고, 근무시간도 더 줄여야 하고, 최저임금도 높여야 해요.”

이성경 “처음에 책 제목으로 ‘곁을 바꾸는 페미니즘’을 생각했어요. 사회가 바뀌기를 기다리면 내 삶에 영향이 오기까지 10년, 20년 걸릴 거 같은 거예요. 그 시간을 견딜 수 없었어요. 저는 오늘 하루를 살아야 하니까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싶어서 ‘곁’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죠.”

Q. ‘엄마’라는 단어는 희생, 눈물, 애틋함, 노고 등으로 정의합니다. ‘엄마’를 다시 정의한다면 어떻게 고치고 싶으세요? 

이예송 “‘엄마’라기보다 양육자가 가져야 하는 가치관을 생각하면 ‘이정표’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 자녀들이 ‘우리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방향으로 바꿔나고 있어요. 우리 책이 고전처럼 ‘한국 사회가 진짜 이랬다고?’ 하며 회자될 수 있으면 재미있겠다고 저희끼리 한 적이 있어요.”

아이린 “희생이란 단어와 연결 안 했으면 좋겠어요. 양육자가 희생한다는 건 기쁨이 없다는 거처럼 들리거든요. 우리는 이 아이가 주는 만큼 주는 거에요. 우리가 양육자로 온전히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거 같아요. 아이는 저를 온전히 사랑해줘요. 아이를 낳고 ‘나라는 사람을 존재만으로도 이렇게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점에 놀랐어요. 온전히 사랑해주는 양육자는 이 아이가 자립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해요. 우리는 같이 살고 있는 가족이니까요.”

Q. 현실에서 페미니즘을 실천하거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규정하기를 망설이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십니까? 

이성경 “‘페미니스트 엄마’라고 하면 모성이 없고 아이를 내동댕이치고 일만 아는 이미지가 있어요. 은주 선생님처럼 아이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기관에 안 보내고, 해마다 아이 한복을 만들어주는 엄마도 있어요.”

은주 “살림이나 가사를 열심히 하고 육아에서 큰 기쁨을 찾는 엄마들은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거처럼 느끼는 경우도 가끔 있어요. 페미니스트는 다 워킹맘이고 투쟁하는 사람일 거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 누구의 노동도 가치 있음을, 존중받아야 함을 얘기하고 싶어요.”

복직을 앞두고 있다는 이예송 씨와 부너미 모임과 책 발간을 기획한 이성경 씨.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복직을 앞두고 있다는 이예송 씨(왼쪽)와 부너미 모임과 책 발간을 기획한 이성경 씨.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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