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헌법재판소는 11일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내년 12월 31일까지 개선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 2021년부터 낙태죄 조항은 효력을 잃게 된다.
이번 판결로 낙태죄 처벌 조항의 폐지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낙태 유산 유도약에 대한 논의와 임신중단 선택 여성을 위한 실질적 지원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지난해 발표한 수시연구 ‘임신중단(낙태)에 관한 여성의 인식과 경험 조사’에서 지난해 1월 전국 만 16~44세 성관계 경험이 있는 여성 2006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보고서는 이 결과를 근거로 임신중단과 관련 정책 과제를 도출했다.
보고서는 “혼전 임신과 낙태에서 남성보다 여성을 비난하는 시선이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여성의 80% 이상은 혹시나 모를 혼전 임신이나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호소했으며, 88%는 우리사회의 혼전 임신과 낙태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시선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낙태죄 폐지 의견을 밝힌 사람은 77.3%에 달했다. 응답자들은 낙태죄가 자기결정권과 여성 건강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에 동의했다.
낙태죄가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 상황을 제시하고 동의 정도를 묻는 질문에 ‘여성이 불가피하게 해야 하는 낙태시술을 받기 어렵게 한다’(86.5%), ‘낙태죄는 여성의 낙태 선택을 어렵게 한다’(80.7%), ‘낙태죄는 낙태가 음성화되도록 하여 낙태 비용을 높인다’(71.0%) 순으로 ‘그렇다’고 답했다.
임신중단 경험자 중 낙태죄가 ‘안전하게 임신중단할 수 있는 의료기관을 찾는 데 제약이 되었다’는 문항에 응답자 46.0%가 긍정 응답을 선택했다. ‘임신중단 관련 전문상담기관을 찾는 데 제약이 되었다’와 ‘임신중단을 선택(고려)하는 데 제약이 되었다’는 데 대해서도 각각 38.2%, 32.9%가 긍정 응답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 “유산 유도약 안전성 검토하고 임신중단 선택자에 실질적 지원해야”
이같은 결과를 토대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낙태죄 폐지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 필요 ▲유산 유도약에 대한 안전성 검토 및 합법화 추진 필요 ▲사회경제적 사유로 낙태를 고민 혹은 선택한 이들에 대한 실질적 지원 방안 마련 등을 법제도적 과제로 꼽았다.
이 중에서도 유산 유도약을 둘러싼 논의는 앞으로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유산 유도약의 안전성과 효과성을 인정했다. 2017년 현재 67개국에서 판매승인된 상태이며 전문가들은 임신 9주까지는 안전성이 확립되었다고 보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이 약물을 2000년에 승인하고, 의료인에 의한 처방과 조제 복용의 의무화와 온라인 판매 금지를 통해 안전성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에서 유산 유도약을 보는 시선은 세계 추세와 거리가 멀다. 지난달 16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소위원회는 유산 유도약 미프진을 제공하는 사이트 ‘위민온웹’을 위법 소지가 크다고 판단하고, 인터넷접속 차단을 결정했다.
보고서는 “임신중단을 시도한 435명 중 6.7%(29명)가 유산 유도약을 낙태 방법으로 선택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약물의 안전성 및 부작용 관련 정보가 부족하고, 이에 관한 두려움 호소, 그럼에도 비용 부담이 낮고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이유로 유산 유도약을 복용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보고서는 여성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실질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전체 조사 참여자의 91.8%가 전문 상담 인프라 구축, 88.2%는 낙태 선택 혹은 비선택시의 다양한 정보제공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와 더불어, 보고서는 ▲낙태를 선택한 여성에 대한 비난과 남성의 책임 회피를 묵인하는 사회적 인식 개선 필요 ▲원치 않는 임신 및 낙태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피임 실천과 성인지적 성교육 강화 등을 임신중단을 둘러싼 사회적 과제로 지적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