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집안일 '시켜먹는' 아내가 어때서요?
남편에게 집안일 '시켜먹는' 아내가 어때서요?
  • 칼럼니스트 김경옥
  • 승인 2019.04.15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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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 집안일과 육아, 부부가 같이 해요

"나는 우리나라 결혼제도와 맞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심각한 얼굴로 친구가 말했다.

"어? 그게 무슨 소리야?"

사랑해서 결혼을 했지만 친구는 지금 너무 힘들다고 했다. '남편이랑 뭐가 많이 안 맞나?' 나는 친구가 남편과의 불화 때문에 힘든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친구는 육체적으로 힘들다고 했다. 결혼 후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졌고, 신경 써야 할 일도 많아졌다고 한다.

친구는 매 끼니 집 밥을 챙겨 먹어야 하는 남편에게 서툰 솜씨로 밥을 해준다. 주말에는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한다. 그동안 자취를 해왔던 터라 식사 준비와 청소, 빨래가 낯선 것은 아니겠으나 그 일감이 딱 두 배씩 늘었다. 거기에 시댁 식구 대소사까지 모두 친구의 일이 돼 버렸다(게다가 친구는 일도 한다).

어느 날 친구가 남편에게 말했다.

"이런 일들 우리 같이 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때 친구 남편의 대답은 이러했다.

"나, 이런 거 알고 결혼한 거잖아."

친구의 얘기를 듣다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 말은 '나는 원래 그런 거 잘 안 하는 사람이고, 그렇다는 걸 알고 결혼한 거 아니냐'는 것인데, '그런 일'은 그럼 누가 해야 하는 거지? '그런 일'을 원래 하던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그런 일'을 하라고 태어난 사람이 있을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와 한 명은 소파로, 한 명은 주방으로 향하는 것이 약간이라도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을까.

나 역시 신혼 때 남편과 이런 문제로 싸운 적이 있었다. 신혼집이 어떻게 꾸며지든 크게 상관하지 않던 남편은 신혼집 인테리어가 거의 마무리되어 갈 때까지 정말이지 너무나도 무신경했다.

퇴근길에 집에 필요한 생필품을 사고, '오늘 저녁은 뭘 해 먹나' 고민하는 일은 모두 나의 몫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러던 어느 날 책상 위에 쌓여있는 고지서를 보면서 '저것을 모두 자동이체로 돌려야겠다' 생각했을 때였다. 그래, 딱 그 순간이었다.

'남편은 지금 우리 집에 저렇게 고지서가 쌓여있다는 걸 알까. 우리도 매달 관리비를 내야하고 전기 요금을 내야 한다는 걸 알기나 할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둘이 타고 있는 배 위에서 바삐 노를 젓는 건 오직 나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같이 오른 배 위에서 내쪽은 보지도 않고 뒤돌아 앉아 멀어져 가는 풍경에 시선을 두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방향을 잡고, 속도를 정하고 노를 젓는 일은 함께 해야 한다. ⓒ김경옥
방향을 잡고, 속도를 정하고 노를 젓는 일은 함께 해야 한다. ⓒ김경옥

들고 있던 노를 내려놓고 조용히 신랑을 불렀다. 나는 남편에게 "당신은 결혼 후에 달라진 것이 있냐"고 물었다. 남편은 '지금 이건 무슨 분위기인지' 질문자의 의도를 파악하는라 이것저것 더듬어 보는 듯했다. 

"당신이 하는 일 중에 결혼을 하니 더 해야 한다거나 더 신경을 써야 한다거나 하는 일이 생겼냐고”

남편은 어리둥절해 하며 그런 건 없다고 했다.

"그래? 그런데 나는 굉장히 많아졌다? 당신, 결혼 전에 집 전기요금 같은 거 내 본 적 있어? 없지. 부모님이 그런 건 다 알아서 하셨지? 나도 그래. 그래서 그거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었어. 근데 결혼하니까 그게 아니더라.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 손으로 다 해야 하더라. 우리 집에 무엇이 필요한지, 오늘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할지, 이번 달에 양쪽 집 대소사는 없는지. 그동안 우리가 해오던 것뿐만 아니라 부모님이 해주시던 것들도 모두 우리 둘이 해야 해. 근데 왜 당신은 하는 일이 결혼 전과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는 너무 많이 달라져 정신이 없는데…."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깨달은 듯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고지서 챙기는 일을 맡았다. 자동이체를 신청하거나, 그렇지 않은 건 제때 요금을 납부하는 일인데, 가끔 미납요금 고지서가 날아오기도 한다.

언젠가 엄마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너 은주 알지? 걔는 애 기저귀 갈 때 신랑 아주 잘 시켜먹더라~."

시켜먹는다?

'시켜먹는다'는 건 (그것이 짜장면이 아닌 이상) 마땅히 그 일을 해야 하는 누군가가 그렇지 않은 누군가에게 일을 떠넘기며 부려먹는 것을 말한다. 아이 기저귀 갈 때 남편을 참 많이도 '시켜먹었던' 나는 고용인을 무지막지하게 부려먹은 악덕업체 사장이 된 기분이었다.

아빠가 아이를 잘 돌보면 '남자인데도 아이도 잘 보는' 자상하고 살가운 아빠가 된다. 엄마가 아이를 잘 돌보면? 그건 당연한 것이 된다.

내가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을 챙기지 못할만큼 바빠 남편이 대신 챙기던 어느 날, 이이는 하나부터 열까지 나에게 전화로 물어왔다.

"옷은 뭘 입혀? 가방에는 뭘 넣어줘야 해? 그리고 또? 양말은 어딨어?"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걸 챙겨가야 하는 건지 남편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심지어 매일 입히는 아이 속옷이 어디에 있는지도. 이유는 하나다.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서 날아오는 몇 장의 사진을 감상하며 흐뭇하게 웃어 보이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날 이후 아이 아빠에게 어린이집 가방을 하사했다. 이걸 받으시게. 자네의 몫이네.

지금은 아이 유치원 가방을 아이 아빠가 챙긴다. 그래서 내게는 가끔 고개를 조아리며 "어머, 선생님, 죄송해요. 그거 챙기는 걸 깜빡했네요"라고 말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확실히 남편은 늘었다! 섬세해졌다!! 아이 물건을 챙기는 손길이 제법 믿음직해졌다.

아빠들이여, 그대도 할 수 있다. 원래 못하는 것이 아니다. 안 하기 때문에 못하게 된 것일 뿐이다. 나는 그대의 가능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같이 하자. 그대는 할 수 있다.

*칼럼니스트 김경옥은 아나운서로, ‘육아는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는 ‘일하는 엄마, 육아하는 방송인’이다. 현재는 경인방송에서 ‘뮤직 인사이드 김경옥입니다’를 제작·진행하고 있다. 또한 ‘북라이크 홍보대사’로서 아이들의 말하기와 책읽기를 지도하는 일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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