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엄마지만, 난민이라서 더 특별했던 출산 이야기
평범한 엄마지만, 난민이라서 더 특별했던 출산 이야기
  • 최대성 기자
  • 승인 2019.04.12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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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사진으로 보는 대한민국 난민 가족의 삶-④

【베이비뉴스 최대성 기자】

2019년 4월 5일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난민 아기 저스티스 지비캠.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2019년 4월 5일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난민 아기 저스티스 지비캠.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제주도에 561명의 예멘 난민이 입국한 지난해, 대한민국은 '혐오'로 들끓었습니다. 인도주의적 난민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정치권의 누군가는 어설픈 온정주의라며 의미를 깎아내렸고, 때맞춰 터진 제주 살인사건에 많은 누리꾼들은 난민을 범인으로 몰아갔습니다. 한 난민 활동가는 "대한민국의 민낯을 본 것 같다"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당시, 베이비뉴스는 난민 아동의 인권에 대해 기획 보도를 했습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는 '아동 또는 그의 부모의 신분과 관계없이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하지 않고 모든 아동의 권리를 보장할 것'이 명시돼 있지만, 국내 난민 아동들은 출생신고조차 하지 못할 만큼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었습니다.

이유 없는 난민 혐오와 보장받지 못한 난민 아동의 인권은 결국, 우리가 난민에 대해 잘 몰라서 벌어진 일입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 난민 가족의 삶을 사진으로 소개하려 합니다. 가감 없는 이들의 일상을 통해 난민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길 기대합니다.

분만을 앞둔 아내 살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남편 무나침소. 살람은 출산을 위해 전날 경기도 의료원 포천 병원에 입원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분만을 앞둔 아내 살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남편 무나침소. 살람은 출산을 위해 전날 경기도 의료원 포천 병원에 입원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오전 7시. 아직 고요한 304호 병실. 창가로 시선을 옮기니 커튼 사이로 다정한 말소리가 새어 나왔다.

"굿모닝, 미스터 최~!"

난민 부부 살람과 무나침소가 불쑥 얼굴을 들이민 기자에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어제보다 컨디션이 훨씬 좋아 보인다고 하니, 살람이 환하게 웃으며 "제왕절개 수술이 너무 무섭지만, 아기와 만날 생각에 기대가 커서 그래요"라고 말했다. 오늘은 지난 10달 동안 기다리고 기다렸던 셋째 출산 예정일. 대한민국 난민 가족의 네 번째 이야기는 바로 너무나 평범한 엄마지만 난민이라서 특별할 수밖에 없었던 살람의 출산기다.

쪽잠을 청하는 무나침소. 애처가 남편의 단잠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쪽잠을 청하는 무나침소. 애처가 남편의 단잠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기자가 살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아빠 무나침소가 건너편 빈 침상에서 쪽잠을 청한다. 아내와 아기 걱정에 밤새 한숨도 못 잔 탓이다. 그동안 살람은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첫째와 둘째가 걱정됐기 때문. 아이들은 어제부터 질부 에던이 돌봐주고 있다. 아이들과 떨어진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엄마는 한시도 걱정을 놓을 수 없다. 집을 나서며 본 아이들 얼굴이 눈앞에 계속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두 아이 모두 잘 지내고 있데요." 아이들의 소식을 전해 들은 뒤에야 살람이 마음을 놓는다.

아내의 성공적인 출산을 위해 기도하는 무나침소.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아내의 성공적인 출산을 위해 기도하는 무나침소.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예정된 분만 시간이 10분 앞으로 다가왔다. "남편 좀 불러주세요." 마음이 초초했던지 살람이 무나침소를 찾았다. 힘들게 몸을 일으킨 무나침소가 아내의 침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다. 하느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는 노랫말에 신실함이 묻어났다.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무나침소.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무나침소.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정성을 다해 노래를 마친 그가 이번엔 아내의 손을 잡은 채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자 초조했던 살람의 얼굴에 평안함이 깃들었다.

"하나님께 아내의 출산을 도와달라고 기도했어요. 모든 일이 잘 될 거예요. 이제 걱정하지 않아요."

분만 전 산모의 상태를 살피는 고영채 경기도 의료원 포천병원 산부인과장.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분만 전 산모의 상태를 살피는 고영채 경기도 의료원 포천병원 산부인과장.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분만 예정 시간이 임박하자 담당의가 찾아왔다. 밝은 미소로 인사를 하는 고영채 산부인과장. 분만전 산모의 몸 상태를 체크하던 그가 사람 좋은 미소로 살람을 안심시켰다. 곧이어 간이침대로 옮겨진 살람이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분만실로 이동했다.

무나침소(왼쪽)가 분만실로 이동하는 아내 살람을 바라보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무나침소(왼쪽)가 분만실로 이동하는 아내 살람을 바라보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무나침소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말없이 뒤따랐다. 살람도 분만실로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무나침소를 바라봤다.

"오른쪽이요? 왼쪽이요?"

마취를 위해 옆으로 돌아 누은 살람. 그가 제왕절개 과정 중 가장 두렵다고 말했던 순간이다. 첫째와 둘째 모두 제왕절개로 낳은 살람이지만 분만을 할 때마다 두려움이 커졌다. 겁에 질린 살람이 다리의 감각을 확인하는 의사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한다. 급기야 입술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하는 살람.

마취중인 살람이 의사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제왕절개 수술 과정에서 마취를 가장 무서워하는 살람.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마취중인 살람이 의사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제왕절개 수술 과정에서 마취를 가장 무서워하는 살람.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그 순간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그가 의사의 손을 덥석 잡았다. 맞잡은 의사의 손 때문인지 하반신 마취가 단번에 성공했다. 한층 안정돼 보이는 살람. 의사가 산모의 상태를 살핀 후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됐다.

제왕절개 수술중인 살람.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제왕절개 수술중인 살람.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산소마스크를 쓴 채 분만실 허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살람. 두려움과 기대감이 뒤섞여 있다. 이날 아침 그의 말처럼 엄마가 되는 일은 참 어려워 보인다. 머리맡에 선 간호사가 마음을 읽었던지 살람의 상태를 계속 살폈다.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기자가 엄지를 들어 보이자, 살람이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건강하게 태어난 아기. 성공적인 출산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건강하게 태어난 아기. 성공적인 출산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아기 나와요!"

분만실에 들어간 지 30여 분이 지났을 무렵, 의료진의 외침과 동시에 건강한 사내 아기가 첫울음을 토해냈다. 오전 8시 58분 3.29kg. 걱정과는 달리 아기가 많이 크지 않고 산모의 출혈도 적다. 매우 성공적인 출산이다. 경이로운 생명의 탄생에 모두가 기뻐했다.

이지현 분만실 간호사가 아기를 산모에게 보여주자 아기 얼굴에 입을 맞추는 엄마 살람.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이지현 분만실 간호사가 아기를 산모에게 보여주자 아기 얼굴에 입을 맞추는 엄마 살람.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분만실 간호사가 아기를 케어한 후 엄마에게 보여준다. 아기를 처음 마주한 살람이 작게 흐느꼈다. 가슴 벅찬 얼굴로 한참을 바라보던 엄마가 "아이 러브 유"라고 속삭이며 아기 얼굴에 입을 맞췄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맞이한 기쁨이다.

남편 무나침소(오른쪽)가 분만실을 나오는 아기를 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남편 무나침소(오른쪽)가 분만실을 나오는 아기를 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분만실 문이 열리자 오매불망 아기를 기다리던 아빠 무나침소의 입이 귀에 걸렸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낸 후 병원으로 달려온 에던도 마찬가지. 아빠와 처음 만난 아기도 우렁찬 울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신께 감사 기도를 올린 무나침소는 성공적인 출산을 축하하는 의사에게도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고영채 산부인과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무나침소.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고영채 산부인과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무나침소.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아이를 출산한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되는 평범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들의 출산기가 특별한 이유는 출산 이후에 있다. 대한민국 보통 엄마들의 필수 코스가 된 산후조리원은 생계가 막막한 이들에게 꿈같은 이야기다. 엄마 살람은 출산 후 병원에서 지내는 1주일이 산후조리의 전부다. 수술 자국이 채 아물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가 다시 육아를 시작해야 한다. 제대로 된 조리를 못 해 몸 이곳저곳이 아픈 건 당연한 일이 됐다. 난민 신청자 신분이라 산후도우미나 육아돌봄 서비스 등 국가에서 제공하는 지원도 받을 수 없다. 물론 난민신청자 신분이니 법적으로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시선을 아기에게 돌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첫째 제르마야, 둘째 제니퍼가 아빠와 함께 이틀 전 태어난 셋째 저스티스를 바라보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첫째 제르마야, 둘째 제니퍼가 아빠와 함께 이틀 전 태어난 셋째 저스티스를 바라보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이 세상 누구도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는다. 이날 태어난 저스티스 또한 마찬가지. 눈을 떠보니 부모는 난민 신청자. 그리고 태어난 곳이 한국이란 이유로 출생신고조차 할 수 없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에 따르면 '모든 아동은 이름과 국적을 가질 권리가 있으며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부모의 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태어나자마자 무국적자 아동이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은 지난 1991년 11월 20일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비준한 협약이행 당사국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국가의 비준을 받은 국제법이다. 협약에 따르면 아동은 크게 생존, 발달, 보호, 참여의 권리가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은 지난 1991년 11월 20일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비준한 협약이행 당사국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국가의 비준을 받은 국제법이다. 협약에 따르면 아동은 크게 생존, 발달, 보호, 참여의 권리가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세상에 존재한다는 공식적인 서류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정부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한다. 세이브더칠드런 등 일부 NGO 단체가 아이의 교육비, 의료비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난민'이란 이유로 난민의 자녀까지 차별받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출산 일주일 후, 셋째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무나침소 가족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출산 일주일 후, 셋째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무나침소 가족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한국에서 난민이 된 아빠 무나침소. 9년 동안 겪은 온갖 차별에도 한국 사람들이 좋다는 그가 오늘 태어난 셋째에게 첫 메시지를 남겼다. 그가 만나고 싶은 혹은 만들고 싶은 더 좋은 세상을 엿볼 수 있었다. 

"아가야 만나서 반가워" 아기 이름은 저스티스 지비캠(Justice Chukwubuikem). 두 달여 전 병원으로 가는 버스에서 농담처럼 지었던 태명이 진짜 이름이 됐다. 지비캠은 무나침소의 고향인 나이지리아어로 '하나님이 나를 강하게 하신다'란 뜻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아가야 만나서 반가워" 아기 이름은 저스티스 지비캠(Justice Chukwubuikem). 두 달여 전 병원으로 가는 버스에서 농담처럼 지었던 태명이 진짜 이름이 됐다. 지비캠은 무나침소의 고향인 나이지리아어로 '하나님이 나를 강하게 하신다'란 뜻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안녕? 저스티스 지비캠(Justice Chukwubuikem). 2019년 4월 5일, 네가 무사히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해. 엄마와 아빠는 너를 만나서 너무나 기쁨고 감사하단다. 네가 우리 가족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정의와 평등을 가져다주길 바라. 우리에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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