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개월 쌍둥이 조기유학 보낼 생각한 까닭
20개월 쌍둥이 조기유학 보낼 생각한 까닭
  • 칼럼니스트 전아름
  • 승인 2019.04.1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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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트윈스 육아일기] 쓰고 보니 자식 자랑 

내가 어린 아이였을 때, 아주 야무지고 똘똘했단다. 말도 글도 일찍 트였고 숫자 세기에 심지어 알파벳까지 또래보다 빠르게 깨우쳤다고(장담하건대 198X년도에 태어난 아이들 중 내가 가장 먼저 알파벳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엄청나게’ 예뻤다고 한다(우리 집안 어르신들을 통해 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그래서 집안의 어른들은 내가 커서 큰 인물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당시 젊은 부모들은 아이가 똘똘하면 자연히 의사나 판사가 된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괜히 느낌적인 느낌으로 내가 의사가 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사업을 시작한 아빠는 회사 이름을 동네에서 제일 공부 잘한다는 아이들만 모인다는 사립 고등학교의 이름과 똑같이 지었다. 큰딸이 그 고등학교를 나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길 바랐던 염원을 담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도 못했고, 사실 알고 보니 헛똑똑이였으며 젖살 빠지고 진짜 살이 붙고 나니 예쁘지도 않았던데다 심지어 아빠의 사업은 망했다. 

아무튼, 집안의 어르신들은 나를 이따금씩 볼 때면 “우리 아름이가 애기 때 정말 예뻤는데”, “우리 아름이가 어릴 땐 미스코리아 같았는데”, “우리 아름이 어릴 때 진짜 똑똑했는데”라고 얘기한다. 내가 지금 30대 중반이 다 됐는데, 애가 둘인데! 아직도 영유아기 시절의 '아름이' 이야기만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지금은 안 예쁘고, 안 똑똑하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몹시 상할 때도 있다. 

그런데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이의 천재성에 대한 어른들의 호들갑이 굉장히 이해가 안됐는데 쌍둥이들을 보며 요즘 이제야 어른들의 그 호들갑이 이해가기 시작했다. 아니 나는 그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는다.

얼마 전 남편이 알앤비 소울로 동요 ‘곰 세 마리’를 불러보겠다며 공기 반 소리 반 창법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그 노래를 듣고 있던 경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수 십장의 그림 카드 중에서 곰 세 마리 동요 가사가 적힌 그림 카드를 들고 왔다. 나는 너무 놀라 경진이를 붙잡고 미친 듯이 감탄을 쏟아냈다.

“경진아, 이거 어떻게 가져왔어? 우리 경진이 글자 벌써 알아요? 아니면 그림 속의 곰이 세 마리인 걸 어떻게 알았어? 우리 경진이 벌써 숫자 셀 줄 알아요? 세상에, 경진아!” 

경진이뿐만이 아니다. 경빈이는 리모콘으로 TV를 틀어 좋아하는 TV 앱에 들어가, 자기가 보고자 하는 프로그램을 정확히 선택해 시청한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다. 경빈이는 TV와 셋톱박스를 켜고 TV 앱 탭으로 들어가 유튜브를 선택한 뒤 시청 목록 중 자신이 좋아하는(예를 들어 EBS 딩동댕유치원 '뚜앙체조' 같은) 영상 클립을 선택한다.

언젠가부터 티비만 보면 하도 '뚜앙 뚜앙'거려서 우리는 아예 EBS 월 정액을 구매해 정해진 시간(엄마가 밥 짓는 시간)에 틀어주고 있다. 처음엔 우연이었다가 그 우연이 익숙해지니 스스로도 조작이 가능해진 것일 텐데 나는 이 어린 것이 벌써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자신의 취향을 찾아 들어간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둘이 뽀뽀해"라고 하니 뽀뽀하는 쌍둥이들. 아아 뽀뽀를 알다니(감격). ⓒ전아름
"둘이 뽀뽀해"라고 하니 뽀뽀하는 쌍둥이들. 아아 뽀뽀를 알다니(감격). ⓒ전아름

아이들에게서 예상치 못한 ‘천재성(나는 감히 ’천재성‘이라 말하고 싶다)’을 발견했을 때, 의외의 능력을 봤을 때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릿속은 이미 조기유학, 영재학교 같은 키워드를 향해 가고 있다. 경진이가 돌잡이로 판결봉을 잡았는데 법관이 되려나, 경빈이는 돈을 잡았는데 재계를 주름잡는 금융전문가가 되려나 같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애들이 이제 좀 커서 어느 정도 알 만한 것들은 아는 나이가 됐기 때문에 아는 것인데 어른들이 오히려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애가 뭐만 하면 ‘우리 애 혹시 천재?’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착각도 나름 육아의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이다. 착각일지언정 ‘천재’ 같은 아이를 보며 내일을 기대하고, 이 아이가 살아갈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이 아이의 똑똑함을 지켜주기 위해 어른들이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쓸데없이 돈 쓰는 일을 더 줄이자’,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축을 늘려서 아이 앞으로 통장 하나 더 만들어주자’, ‘아이가 똑똑하니 어른 하는 말을 다 따라한다, 그러니 말 한마디라도 더 조심히 하자’, ‘아이들 같이 있을 때 운전하면서 욕 하지 말고 아이들과 같이 밥 먹을 때 젓가락질 잘하자’ 같은 긍정적인 실천계획을 세우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아이를 따라 어른이 또 큰다. 

*칼럼니스트 전아름은 어쩌다 쌍둥이 엄마가 된, 서울 용산에 사는 30대 여성이다. 얼떨결에 유부녀가 됐지만 아이를 낳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결혼 전엔 이런저런 글을 쓰고, 이런저런 잡지를 만들며 일했다. 애로 시작해 애로 끝나는 하루, 밥으로 시작해 밥으로 끝나는 하루를 살고 있지만 나쁘지 않다. 가장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god의 육아일기(MBC, 2000~2001). 요즘 육아일기를 다시 보며 육아를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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