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오는데 엄마는 곤충이 무서워!
봄은 오는데 엄마는 곤충이 무서워!
  • 칼럼니스트 한희숙
  • 승인 2019.04.1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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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 육아일기 한 줄] 내 안의 낯섦을 끌어내는 아이

아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시작이었다. 엄마가 된 이상,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겨났다. 시간이든 돈이든 감정이든 그 무엇이든 아이 위주로 쓰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하루 일과가 철저히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던 아이 어릴 때는 먹고 자고 용변을 보는 기본 욕구도 뒤로 미뤄야 했다. 때문에 육아 스트레스는 극심했지만 하루하루가 쌓여 그 시절은 지나갔고 아이는 훌쩍 자랐다. 이제는 일곱 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보니 사람다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지도 꽤 오래다. 

일곱 살 아이와 할 수 있는 것들도 셀 수 없이 많아졌다. 아이를 위해 계획하고 준비한 활동인데 함께 하다 보면 내가 즐거워 몰입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아이와 먼 곳으로의 여행도 이제는 배낭 하나 메고 훌쩍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여행지나 나가서 사 먹는 음식 때문에 걱정이던 날들도 지나갔다. 아이가 할 수 있는 체험의 폭도 넓어지니 어른에게도 유익하다 느껴지는 프로그램도 많다. 아이 위주로 여행 일정을 계획하는 데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그래도 아이가 웃고 즐거워하는 순간과 마주하면 엄마의 만족도는 자연스레 올라간다. 또한 내가 떠나고 싶을 때 아이가 좋은 친구가 되어 주니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내게는 차고 넘치도록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초보 엄마 시절에 비해 아이 키우기가 ‘할 만한가?’ 착각에 빠질 때도 있다. 하지만 또다시 징글징글하게 말 안 듣는 일곱 살 남아와 실랑이를 벌이다 보면 속에서 천불이 난다. 아이를 재우고 ‘육퇴’하는 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걸 보면 부담감이 여전히 큰 것은 확실하다. 주위에 초등학생, 중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아이를 키우며 겪는 어려움과 고민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그저 문제 하나가 풀리면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시작될 뿐. 아이가 성인이 되어 완전히 독립할 때까지 지난한 고민이 버티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갈 길이 아직 멀었구나 싶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날로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즘 나는 새로운 문제 앞에 직면해 있다. 잠을 줄이거나 끼니를 거르는 것, 아이를 안고 용변을 보는 문제와는 또 다른 고민이다. 유치원 친구와의 갈등이나 아이의 성장 발달, 식습관 문제도 아니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영역이 있는데 엄마로서 충분히 응답해 주지 못하는 데서 오는 미안함, 답답함 같은 문제다. 최근 들어 아이는 곤충을 비롯해 살아 있는 여러 가지 것들에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한다. 질문도 쏟아진다. 그런데 나는 아는 바가 적어 할 말이 없다. 아이가 호기심을 보이는 게 있으면 나서서 책을 찾아보고 아이 앞에 펼치고 함께 읽는 게 내가 가장 잘하는 건데 그걸 못하고 있다. 이유는 내가 곤충이나 벌레 따위를 끔찍이 무서워한다는 데 있다. 나의 유난스러운 공포증은 어릴 때부터 이어져 온 거라 가족들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정도다. 하지만 아이가 이토록 관심을 보이는데 어린아이에게 가장 좋은 친구인 엄마가 함께하지 못하니 난감하다. 

엄마가 아이에게 열어 보여주는 세계에 따라 어린아이의 시야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적절한 자극을 주지 못해 아이의 관심이 사그라들면 어쩌나 걱정스럽다. 이 상황이 안타까운 나머지 오늘도 아이가 집어온 「자연사 박물관」을 용기 내 함께 봤지만 몇 번이나 기겁을 했다. 컬러풀한 사진도 그렇지만 자세히 보라고 확대해 놓은 게 너무 강렬하게 다가왔다. 어린아이에게 선입관을 심어주면 곤란한데 나는 시작부터 꼬였다. 어느 날인가 아이는 개구리가 종류별로 나온 책을 내게 집어왔다. 표지부터 징그러웠지만 글에 눈을 고정한 채 아이에게 읽어줬다. 그런데 눈치 빠른 아이가 알아차렸다. “엄마 무서워서 재미없게 읽어주는구나.” 아이의 시무룩한 목소리에 아니라며 명랑하게 답했지만 아이 마음을 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림책 「샐러드와 마법의 가게」 속 한 장면. ⓒ한림출판사
그림책 「샐러드와 마법의 가게」 속 한 장면. ⓒ한림출판사

그래서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아이 앞에 솔직해지기로 한 것이다. 사실 아이에게 동기부여를 하려고 겁 많은 엄마지만 수영을 배우고 있다. 십수 년 만에 영어책을 붙들고 하루하루를 채우는 중이기도 하다. 엄마도 겁나고 어렵고 힘들지만 너와 함께하려고 노력 중이라니까 아이 반응이 나쁘지 않다. 또 다행스러운 점은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표현한 자연관찰책도 많다는 것이다. 「곤충들의 축제」는 아이가 고른 책이다. 아이가 넓디넓은 도서관에서 스스로 골랐고 우리 둘 다 만족스럽게 본 책이니 보물이라 할 수 있다. 숨은그림찾기처럼 놀이적 요소도 있어 이야기 흐름에 따라 한 번 읽고 곤충 각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재차 읽어봐도 좋은 책이다. 이와 비슷한 책을 찾다가 이번에는 내가 「샐러드와 마법의 가게」를 발견했다. 은은한 색연필화 느낌도 좋고 자연스레 곤충들의 특성을 알게 되어 유익한 책이다. 무엇보다 읽어줬더니 재미있다는 말이 아이 입에서 절로 나왔다. 두 번째 책은 없냐며 작가의 다른 책을 궁금해 할뿐더러 또 읽어달라고 재촉한다. 아이가 웃기다면서 꽂힌 장면도 한 컷 있다. 오! 성공이다. 

그림책 「샐러드와 마법의 가게」는 애벌레 팔랑팔랑 씨가 나비에 이르는 과정을 메뚜기, 거미, 개미, 달팽이의 시선에서 보여준다. 샐러드를 팔던 애벌레가 잠시 고치로 지내다 나비로 탈바꿈하는 순간, 지켜보던 곤충들과 동물(거미는 동물이 아니라고 아이가 힘주어 몇 번씩 나에게 알려주었다)은 주저앉을 정도로 깜짝 놀란다. “앗, 당신이 정말 그 애벌레 팔랑팔랑 씨?” “햐-! 정말 대단한 마법인데!” 그 마법은 내게도 진행 중이다. 아이가 길에서 쭈그리고 앉아 콩벌레를 들여다보기에 옆에서 같이 쳐다보다 사진 한 장을 찍어 친언니에게 보냈다. 이내 답장이 왔다. “너 정말 달라졌구나.” 아이는 내게 마법을 일으키는 존재임이 확실하다. 엄마는 오늘도 아이 덕분에 이렇게 한 걸음 나아간다.

*칼럼니스트 한희숙은 좋은 그림책을 아이가 알아봐 주지 못할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엄마이다. 수년간 편집자로 남의 글만 만지다가 운 좋게 자기 글을 쓰게 된 아기엄마이기도 하다. 되짚어 육아일기 쓰기 딱 좋은 나이, 일곱 살 장난꾸러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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