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로로든 핑크퐁이든 나 좀 도와줘!
뽀로로든 핑크퐁이든 나 좀 도와줘!
  • 칼럼니스트 전아름
  • 승인 2019.05.20 13: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AD
[용산트윈스 육아일기] 어떤 날의 꿈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등원하지 않는 휴일은 즐겁지만 좀 고되다. 아이들 먹이는 일, 어른 밥을 챙겨 먹는 일, 집을 치우는 일이 끝없이 반복된다.

아이들과 종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싫단 얘기가 아니다. 별 것 아닌 엄마아빠의 개인기에 깔깔거리고 웃는 얼굴들을 보면 무한히 행복하고, 일주일 사이 부쩍 큰 모습을 확인하는 것도 기쁘다.

다만 조금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고' 쉬거나 남편과 단 둘이 조용히 집 앞 남산길을 걸으며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좋겠는데, 에너지 넘치는 두 아들과 함께 있다 보면 그럴 짬이 나질 않는다.

집이 고요한 시간은 아이들이 낮잠에 든 시간인데, 아이들 낮잠 재우며 남편은 같이 잠들어버리고, 나는 그 시간에 어질러진 집을 치우거나, 밥을 짓거나 하며 아이들이 깨어 있을 때 할 수 없는 일들을 후다닥 해놓기 바쁘다.

나는 그래서 ‘친정부모님께 아이 맡겨놓고 남편과 데이트 나왔다’는 사람들이 제일 부럽다. 우리 아빠와 동생들은 각자의 일 때문에 모두 따로 산다. 그래서 아이를 맡겨놓을 친정이 나에겐 없다.

남편과 주말에 시간을 보내려면 시어머니가 서울에 오시거나, 여동생이 일부러 하룻밤 우리집에서 자주거나, 그것도 안 된다면 민간 돌봄서비스를 ‘구매’해야 한다.

아기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종종 사람을 쓰고 둘이 나가 놀았다. 그런데 주말인데다 쌍둥이인지라 사람 쓰는 비용으로만 한 번에 적게는 10만 원에서 많게는 15만 원가량이 들었다. 잠시의 여유와 휴식을 위해 15만 원을 쓴다? 이제는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운 소비다. 

아이들을 아주 사랑하고, 그 마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우리는 솔직히 주말에 온전히 오롯이 쉴 수 있는 시간, 단 둘이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끔 내가 답답해하는 것을 보면 남편은 “나가서 혼자 차 한 잔 마시고 와”라고 하는데 내 성격이 이상해서인지 그것조차 쉽지 않다. “혼자 얘들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괜찮아.” 하고 만다. 남편은 혼자서도 곧잘 아이들을 잘 돌보는데도 나는 뭐가 그렇게 불안한 것인지 집에 남편과 아이들만 있는 것이 싫다. 

여동생이 얼마 전 내 생일을 맞아 생일선물 뭐 갖고 싶으냐고 물어왔다. 나는 동생에게 ‘시간’을 선물로 달라고 했다. 여동생은 언니가 무슨 말 하는 것인지 알겠다며 주말에 하루 자고 가겠다고 했다.

여동생이 오기로 한 날 나와 남편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보러 가기로 했다. 대망의 그날이 왔는데 하필 그날 내가 너무 아팠다. “영화 다음에 보자”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는데 나나 남편이 너무 기다린 날이라 차마 말이 나오질 않았다. 

남편이 오히려 "다음에 갈까?"라고 물어보기에 나는 "극장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선 무조건 간다"고 말하며 강력한 의지와 정신력으로 약을 털어 넣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영화의 결말은 집에 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들었다. 아아, 토니 스타크….

"이제 좀 가자~응? 이제 가자니까~!!!" ⓒ전아름
"이제 좀 가자~응? 이제 가자니까~!!!" ⓒ전아름

남편이랑 영화 한 편 보려고 해도 누가 와 줘야 보러 나갈 수 있고, 외식도 마음 편하게 할 수가 없고, 주말이면 애들이랑 씨름하느라 녹초가 되는, 이 반복되는 육아 일상이 유난히 고단하고 무력한 날이 있다.

마음이 유난히 침잠하는데 아이들 앞에서 억지로 목소리를 높여 끊임없이 말을 걸고, 리액션 하고, 몸을 써가며 놀아줘야 할 땐 정말이지 "뽀로로든 핑크퐁이든 누구든 좋으니까 나 좀 도와줘!"란 소리가 절로 나온다.

TV로 뽀로로나 핑크퐁을 틀어주면 애들이 거기에 집중하니 몸은 편한데 아이들을 방치하는 기분이라 스스로 찝찝해 정말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주방에서 밥을 짓는다든지, 내가 화장실을 가야 한다든지) 잘 틀지 않는다.

그럴때면, 한 달에 두 번 정도 아이들을 기꺼이 돌봐줄 살가운 친정엄마가 내게 있다면 우리 삶이 좀 더 편안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남편은 뭐 그런 것을 신경쓰느냐고 하지만 당사자인 내 입장에선 또 그렇지가 않다. “친정이 없어서 미안해”라는 말을 매번 하고 싶다가도 그 말을 뱉는 일 자체가 좀 슬퍼지는 일이라 ‘에이, 말 하지 말자’ 하고 마는 것이다. 말 한다고 또 뭐가 달라지나. 

얼마 전에 꿈을 하나 꿨다. 꿈속에서 나는 나이가 오십이 넘은 중년이었고, 남의 집 아기를 돌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내 앞엔 어떤 아기 엄마가 앉아 있었는데 그는 울듯이 웃었고, 웃으며 우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등 뒤에서 아기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엔 태어난 지 6개월 무렵의 경빈이 경진이가 앉아 놀고 있었다. 꿈에서 오십이 넘은 나는, 어쩌다 쌍둥이 엄마가 되어 자주 울다 웃었던 서른두 살의 나와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꿈속에서 오십이 넘은 나는 엉엉 울었고, 덩달아 잠들었던 현실의 나도 함께 따라 울다 잠이 깼다.

나는 지금도 아이를 낳고 내가 겪었던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아이들이 정말로 아기였을 때 최선을 다해 예뻐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크다. 그 죄스런 마음이 별안간에 꿈으로 나타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깨고 나서도 마음이 추슬러지질 않았다. 

시간이 또 지나 아이들이 좀 크고 나면, 손이 지금보다 덜 가게 되면 아이들과 하루 종일 살 부비는 휴일이 힘들다는 이 생각을 했다는 것조차 후회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아이들과 눈만 마주치면 뽀뽀하고 살 부비며 놀면서도 ‘아 힘들다, 아 혼자 30분만 멍 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날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 그러므로 아이들이 ‘아이’로 머무는 이 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것, 후회 없이 충분히 사랑해줘야 한다는 것을 꿈에서 깨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이들이 커버리면 분명히 내가 나의 부모에게 그랬던 것처럼 온전히 순수하다고 믿었던 사랑에도 오해가 생기고 상처를 주며 컸다는 이유로, 독립을 명분으로 자연스럽게 멀어질 것이므로. 

내가 비빌 친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을 괜히 미안해하는 사이 남편은 “나는 내가 100점 만점에 80점짜리 아빠이자 남편이라고 생각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이렇게 온전히 우리 힘으로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고 생각하거든!”이라며, 세상에 자기같이 집안일 잘하고 애들 잘 보는 남자가 어디에 있냐며 적어도 자기 주변엔 자기 같은 남자가 없다며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다.

평소라면 약간 아니꼬웠을 그 잘난 척도 그날 만큼은 얼마나 고맙던지.

“아름아, 우리는 정말 잘하고 있는거야. 난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 그러니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마~힘들면 뽀로로 틀어주고 잠깐 쉬어도 되잖아~.”

어째서 '기-승-전-뽀로로'가 됐는지 알 수 없지만 그날 만큼은 그 말이 내게 큰 위로가 됐다. 

*칼럼니스트 전아름은 어쩌다 쌍둥이 엄마가 된, 서울 용산에 사는 30대 여성이다. 얼떨결에 유부녀가 됐지만 아이를 낳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결혼 전엔 이런저런 글을 쓰고, 이런저런 잡지를 만들며 일했다. 애로 시작해 애로 끝나는 하루, 밥으로 시작해 밥으로 끝나는 하루를 살고 있지만 나쁘지 않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실시간 댓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