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아이가 어리다고 여행 갈 때 두고 가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어차피 기억도 못 할 텐데 힘들게 데려가 봤자 아이도 고생, 부모도 고생이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솔직히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 손이 필요한 5세 미만의 아이와 여행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좋다고 표현하지 못할 뿐, 아이는 누구보다 온몸으로 여행을 추억할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 아이가 첫돌이 지나고 조금씩 해오던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아이에게 분리불안이 찾아왔습니다. 엄마 없이 보낸 긴 하루 뒤엔 어김없이 껌딱지처럼 제게 붙어 투정을 부렸지요. 왜 이렇게 날 힘들게 하나 싶었는데, 아이도 그만큼 힘들었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집중해 놀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영혼 없이 놀아줄 땐 꽁무니에 딱 붙어 다니다가도, 흠뻑 놀아주고 나면 한동안 엄마 없이 잘 있어 주었거든요.
하지만 아이가 주도하는 대로 칼싸움을 하고 괴물놀이를 하는 것은 지루하고 졸음이 쏟아지는 일이었습니다. 저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했어요.
결국, 우리 가족은 과감하게 서울을 떠나 경기도로 이사를 했습니다. 따로 운동할 시간이 없으니 아이와 한적한 곳에서 산책하고 움직이면서 살도 빼자는 생각이었죠. 마침 아이는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며 나가는 것을 좋아했고, 다행히 이사한 곳은 산자락에 있어 아이에게 기저귀만 채우고도 산 한 바퀴를 휘 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자연은 정말 무궁무진한 놀이터였습니다. 봄에는 쑥을 캐고, 여름에는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고, 가을에는 도토리와 밤을 줍고, 겨울에는 산기슭에서 눈썰매를 탔습니다. 그리고 산에 가지 않을 때는 공원과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어요. 그럴 때는 비싼 교구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빈 생수통이나 병뚜껑만 있어도 아이는 온종일 시간 가는 줄 몰랐으니까요.
밤에는 손전등 하나 들고, 어두워야 보이는 모든 것을 찾아다니고, 비가 오면 우산 하나 쓰고 세상의 모든 물줄기를 찾아다녔습니다. 어른들에게 시시한 곳도 세상을 처음 경험하는 아이에게는 짜릿한 여행지가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 후, 우리는 점차 반경을 넓혀 다른 지역도 가보고 해외여행도 무리 없이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아이는 봄 쑥이 한창 올라오는 벚꽃이 흩날릴 때면 어김없이 쑥을 캐러 가자고 졸랐습니다. 밤을 깔 때는 양쪽 발을 능숙하게 사용할 줄도 알고 그렇게 수확한 밤은 청솔모에게 돌려줄 줄도 알았습니다. 밤바다를 본 후 아이는 푸른 바다와 함께 검은 바다를 그리기 시작했고, 해외 휴양지를 다녀온 후엔 야자수와 열대과일을 클레이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행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것을 학습하는 아이를 보았습니다. 아이에게 놀이 학습이 필요한 이유를, 호기심이 왕성한 시기에 많은 경험과 자극이 중요함을 몸소 깨닫게 된 것이지요.
언젠가 아이에게 여행이 좋은 이유를 물은 적이 있습니다. 아이는 "엄마 아빠와 함께 있을 수 있어서"라고 대답하더군요.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어디에 갔느냐’보다 ‘엄마 아빠와 무엇을 했느냐’였습니다. 회사와 집안일에 빼앗겼던 엄마 아빠를 여행에서는 온전히 독차지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저 역시 일과 가사노동에서 해방되니 더 자상한 엄마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아이를 두고 여행을 떠나는 부모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볼 때면 벌써 서운한 생각이 들거든요. 이제 곧 아이는 엄마 아빠보다 친구와의 여행을 더 좋아하게 되겠지요.
복잡한 곳보다 한적한 곳, 도심보다 자연, 바쁜 일정보다 여유 있는 일정을 선택하면,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도 크게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도전해 보세요. 아이와 함께한 행복한 여행의 추억은 엄마 아빠 가슴속에도 오래도록 기억될 테니까요.
*칼럼니스트 송이진은 공중파 방송을 비롯한 다양한 채널에서 활동하는 19년차 방송인. 50여 편의 광고를 찍은 주부모델이기도 합니다. 저서로는 「아이와 해외여행 백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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