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 엄마의 수면교육 '포기' 선언
아이 둘 엄마의 수면교육 '포기' 선언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19.05.27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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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함께 꿈 꿀 시간은 정해져 있으므로

미국의 영유아 수면 교육은 철저한 편이다. 아이들의 잠자리는 신생아 때부터 이미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 방에 오디오 장치나 스크린 장치를 연결해놓고 정해진 취침시간이 되면 아이를 다독여 침대에 눕히고는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아이가 아무리 울더라도 스스로 잠들게 유도한다.

아이들이 좀 더 큰 뒤에도 보통은 베드타임 스토리를 읽어주거나 자장가를 불러주고는 아이 혼자 자신의 방에서 잠들 수 있도록 하고 부모는 부모들만의 공간에서 따로 잠든다.

보통 미국의 소아과에서도 영유아 때는 신생아 돌연사 방지와 수면습관 들이기에 좋은 방법이라고 해서 이를 권장하는 편이며, 대부분의 미국 가정에서는 이와 같은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 미국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대부분의 미취학, 저학년 아이들은 저녁 7시 반이나 늦어도 8시면 잠이 든다고 한다.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운 나는 어땠을까? 나는 솔직히 아이들과 따로 떨어져 자는 일을 할 수 없었다. 특히 신생아 때는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불안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교과서적으로 큰아이만 따로 재워보려고 노력해봤다.

하지만 낮잠 용으로 준비해 놓은 Sleeper(슬리퍼, 신생아가 다치치 않도록 요람처럼 양옆과 머리 윗쪽에 칸막이가 세워진 형태의 이동식 매트)를 우리 부부의 침대에 올려놓고 아이와 잠들었다가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옆에서 자면 아이의 숨소리가 훨씬 더 고르고 깊은 잠을 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기의 기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파악한 우리 큰아이는 순하지만 섬세하고 예민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엄마와 함께 있으면 더 깊고 오래 자는 것 같았다. 그 사실을 발견한 뒤 나는 곧바로 따로 재우기 수면 교육을 포기했다.

물론 일찍 자는 것이 중요하므로 아이를 달래며 불을 일찍 끈 뒤 재우려고 노력했고, 슬리퍼를 이용해서 안전은 챙기되 아이를 따로 재우거나 계속 울게 눕혀놓는 일은 하지 않았다. 순전히 개인의 선택 문제지만 나는 차라리 아이를 안아주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좋다고 느꼈기에 그렇게 했다.

'이것도 다 때가 있는 거겠지, 설마 네 살, 다섯 살 돼도 안아달라고 하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나의 생각이 맞았다.

잠자기 전에 뒹굴뒹굴 책 읽기를 좋아하는 큰아이. 낮에는 책에 별 관심이 없다가 밤에만 책을 읽으려고 하는 걸 보니 잠자기 싫어서 읽는 것 같기도 하다. ⓒ이은
잠자기 전에 뒹굴뒹굴 책 읽기를 좋아하는 큰아이. 낮에는 책에 별 관심이 없다가 밤에만 책을 읽으려고 하는 걸 보니 잠자기 싫어서 읽는 것 같기도 하다. ⓒ이은

둘째도 오빠를 닮아서인지 밤에 잠 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낮엔 짜증 한번 안 내는 순둥이가 밤에 잠이 와도 눈을 비비며 잠투정만 부렸다. 둘째가 그럴 때면 나는 수유의자에 앉아서 아이를 안고는 “후~우” 하며 입으로 바람소리를 내거나 남편에게 비닐봉투 만지는 소리를 내달라고 했다.

입 바람 소리나 비닐봉투 만지는 소리가 엄마의 자궁 속에서 아이가 듣던 소리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였는데, 의외로 효과가 있는 편이었다. 둘째는 귀 기울여 이 소리를 듣다가 짧고 강한 잠투정을 마치곤 잠에 들었다.

하지만 돌이 지나자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개월 수가 올라가며 혼자 거실을 활보하는 재미, 서랍에 있는 모든 물건을 꺼내보는 재미에 빠진 '그녀', 우리의 둘째는 요즘 좀처럼 쉽게 자려고 하지 않는다.

결국 둘째의 수면 교육도 포기 상태다. 우리 집에서 제일 잠이 많은 나는 졸려서 눈이 가물거리는데, 아이 둘은 자기 싫은 표정으로 억지로 침대에 눕는다. 나름의 사회생활과 공적 활동이 있는 큰아이는 억지로라도 누워 잠을 청해보려 하는데, 아직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작은아이는 집 안을 누비며 신나는 탐구생활 중이다.

게다가 둘째는 겁도 없어서 내가 거실 불을 다 꺼버려도 아무렇지 않게 암흑 속에서 엄마의 가방을 들고 엄마의 신발을 신고 외출하려는 듯 현관문 앞에 서기도 한다. 둘째를 겨우 달래서 장난치듯 이불에 눕히고는 배에 푸-우 입방귀도 불어주고 팔다리도 쭉쭉쭉 마사지를 해준다. '까르륵 까르륵' 아가는 겨우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다음 단계는 불을 좀 더 어둡게 하고 등을 토닥토닥거리며 점점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특별한 스토리는 없다. '멍멍이는 멍멍, 야옹이는 야옹' 같은 의성어를 반복해준다. 그러면 꼭 주문처럼 아이의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서서히 감긴다. 오빠랑 같이 있으면 아이는 더 잘 누워 있는다.

우리 가족이 자는 방 가운데에 엄마와 아빠가 쓰는 침대가 있고 그 침대를 중심으로 오빠와 동생의 침대가 나란히 붙어 있다. 우리는 모두 붙어서 잔다. 온 가족이 한 방에서 자는데 왜 다른 방이 필요한가 싶을 때도 있다. 시간은 벌써 9시 반을 넘은지 오래고 아이들은 여전히 양 옆에서 꾸물꾸물거린다. 나는 아이들이 숙면을 취할 수 있게 암막커튼을 닫고 가습기를 켠다.

모범적인 수면 교육 같은 것은 이미 포기해버렸지만 그래도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다 한때일 오늘의 이 밤을 아이들이 따뜻한 추억으로 기억해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아빠, 엄마, 오빠, 동생이 서로 냄새 맡으면서 뒹굴뒹굴. 가까이에서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일이 포근하고 즐거웠다는 기억. 그거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춘기가 되면 아마 지금처럼 한 방에서 같이 자자고 해도 도망가겠지. 아이들은 커가고 함께하고 함께 꿈꿀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나는 불량엄마일지라도 아이들과 함께 더 많이 있고 싶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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