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김재호 기자】
'워킹맘'이란 육아와 직장 생활을 동시에 해 나가는 여성을 일컫는 말입니다. 요즘은 남성들도 육아휴직 후 아이를 돌보는 경우도 속속 생겨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많은 가정에서 부부가 함께 일하더라도 아이를 돌보고, 가정을 챙기는 것은 엄마의 몫이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워킹맘 라이프'는 '엄마'와 '직장인'의 몫을 해나가는 사회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워킹맘들의 삶을 보여주며 일과 육아의 양성평등 성립을 위해 실제로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고 공감해보는 사진 기사입니다. -기자 말-
취재를 위해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 강미정 활동가의 집을 찾아가는 도중 전화가 걸려왔다.
"기자님 혹시 지금 오고 계시는 중인가요? 언제쯤 오세요?" 전화기 너머로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지옥철로 유명한 9호선 출근길 인파들을 뚫고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에 걸려온 강미정 씨의 다급함이 느껴지는 전화였다.
집에 도착해 들어가자 11시에 예정돼있는 기자회견을 몇 시간 앞두고 바쁘게 준비를 하고 있는 강미정 활동가와 만날 수 있었다.
올해 7살인 첫째 태연이와 3살인 둘째 나영이는 낯선 아저씨를 보고도 전혀 낯설어하지 않았다.
현재 시간 오전 8시 55분 기자회견을 2시간 정도 남기고 엄마 옆으로 막내 나영이가 다가와 노트북을 괜히 한번 만져본다. 아침부터 출근 준비하랴 밥 먹이랴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모습이 우리 집과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집에 오면 아이들이 좀 조용히 있을까 싶어서 전화드린 거였어요" 강미정 활동가의 말처럼 어느샌가 엄마를 찾던 아이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평화로운 자매의 모습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했던 강미정 씨는 기자회견이 열리는 날이면 종종 이렇게 현수막 작업과 준비로 아침부터 바쁘다고 한다. 작업을 마무리 짓고 나서야 두 아이와 함께 드디어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출근 전의 또 다른 미션이 펼쳐졌다. 아이들의 안전하고 신속한 등원 길을 위해 1층에는 두 명의 아이들을 태울 수 있는 유아웨건이 준비돼 있었다.
혼자 걸어가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일 수 있지만 두 아이를 태운 웨건을 끌고 가야만 하는 어린이집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태연이는 항상 그래요 엄마 빨리 와 늦지 말고 5시까지 꼭 와야 돼 알았지?" 아이들은 항상 부모님을 기다리고 보고싶어 하는구나... 당연한 말이지만 왠지 짠한 느낌이 들었다.
출근 전부터 육아와 일을 하느라 바빴던 엄마의 더 바쁜 본격적인 활동가 생활이 시작됐다. 기자회견장에서 사용할 스피커를 챙기고 아직 처리하지 못한 업무를 보기위해 사무실에 들아오자 동료 활동가인 장하나 씨가 김밥을 건넸다.
정치하는엄마들에는 장하나 활동가와 강미정 활동가 이렇게 2명이 상근 활동가로 사무실에 출근해서 업무를 보고 있다. 그 외에 정치하는엄마들의 많은 회원들은 시간이 가능할 때 특별히 구애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같이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양육자의 현실적인 상황을 잘 아는 양육 당사자들의 조직이다 보니 아이가 아플 때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고 장점이 많아요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힘든 부분이죠... 저희는 아이들을 양육하기엔 상황이 그래도 좋은 편이에요"
미쳐 김밥 한 줄도 다 먹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스피커를 챙기고 기자회견장을 향해 출발했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바쁘게 바쁘게 여기저기로 움직였던 모습만 기억난다.
예전에는 말을 잘 들어준다기보다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강미정 씨는 단체 초창기에 어느 여성 단체의 기자회견에 연대 발언을 할 기회가 생겨 비가 내리던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생전 처음 마이크를 잡았고 3분가량 발언을 했다고 한다. 그 순간 광화문 전체가 고요해지면서 세상이 잠시 정지한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나는 말하는 인간이었구나를 느꼈고 공공장소에서 국가와 사회에 책임을 묻다가는 잡혀가는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내 자신이 얼마나 많은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살아왔는지에 대해 각성하며 자연스럽게 활동가가 됐다고 한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서는 야근이 잦은 이전 디자인 회사 생활은 불가능했고 출산 후 시간 활용이 가능한 개인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아이가 어린이집 적응을 잘 못해서 결국에는 사업을 정리했어요... 왜 꼭 아이를 낳자마자 강박적으로 사업을 추진했을까 생각해보면 일을 잃게 된다는 두려움이 컸던 것 같아요 사회 구조적으로 육아와 일 중 하나만 선택하게 되는 상황이 엄마가 된 여성들을 힘들게 하는 부분이니깐요..."
시청역 인근 사무실로 들어가던 중 들린 커피숍에서도 강미정 활동가는 노트북을 켠 채 작업을 한창 진행했다. "오늘 기자회견 관련해서 보도자료도 여러 곳에 보내고 정치하는엄마들 회원들과 자료도 공유하고...아직 여러가지 일이 남아있어요."
커피숍에 들리기 전에는 광화문 광장 인근에서 오늘 만들었던 현수막을 펼치고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하고 들어온 상태라 지칠 만도 하지만 계속되는 업무에도 표정은 즐거움이 느껴졌다.
사무실에 도착해 오늘 사용한 현수막을 정리하고 나머지 잔업을 마무리하고나니 어느새 아이들 어린이집 하원 시간을 1시간 정도 남겨두고 있었다.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하지만 그녀에게는 내일 있을 토론회 준비와 아이들의 육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 ‘유튜브 키즈 콘텐츠, 이제 성평등 관점을 고민할 때’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강미정 활동가를 만날 수 있었다.
전 날 기자회견으로 인해 많이 준비하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퇴근 후 집에 가서도 육아와 함께 밤새 준비했을 토론문은 많은 참석자들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아이들의 어린이집 하원 시간, 토론회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향하다 잠시 편의점에서 아이들 간식을 구매했다.
"어린이집 앞에 놀이터가 있는데 거의 1시간씩은 꼭 놀다 집에 들어가서 간식거리를 준비해요."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활동적인 아이들과 놀아주는 과정이 현재 아이를 키우는 기자의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걸 알기에 새삼스레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오늘 처음으로 혼자의 힘으로 올라갔다고 엄마가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아이들과 있다 보면 이런 사소하다면 사소하지만 같이 있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모습에서 감동을 느끼고 일에 지쳐있던 몸이 순간 풀리는 걸 경험하게 된다.
"첫째가 열이 조금 있다고 선생님이 그러네요." 조금만 놀게 하고 바로 병원에 들려야겠다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을 열심히 노는 아이들이었다.
병원으로 향하다 첫째가 가방에서 무언가 주섬주섬 꺼내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거 오늘 그린 거예요"
길 한복판에서 느닷없이 미술전이 펼쳐졌지만 엄마는 익숙한 듯 멈춰서 그림을 보면서 아이와 얘기를 나눴다.
어린이집에서 나온 지 벌써 1시간이 훌쩍 넘어 어느새 시간은 6시를 넘었다. 아이들과 함께 먹을 저녁을위해 들린 정육점까지... 집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드디어 힘겹게 집에 도착했다. 아이들의 가방과 웨건에 펼쳐져 있는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선 강미정 활동가는 조금 지쳐 보였지만 아이들은 역시나 지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들의 체력은 부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활동가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이 엄마를 보며 말 잘 듣는 사람으로 자라기보다 자기감정을 지키고 하고 싶은 말은 당당히 내뱉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한 강미정 활동가는 오늘도 이렇게 퇴근이 아닌 또 다른 육아라는 직장으로 출근하며 웃음으로 인사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수많은 워킹맘들에게 혹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강미정 활동가는 답했다. "몸 축나지 않게 커피말고 몸에 좋은거 챙겨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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