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를 했다, 숨을 쉬었다, 눈물이 났다
요가를 했다, 숨을 쉬었다, 눈물이 났다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19.06.10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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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나에게 나의 위로 보내기

"2017년에 수강하시고,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랬다. 2년 만에, 그것도 아주 즉흥적으로 온 요가원이었다. 사실 그 전날 문자 한 통을 받긴 했다. ‘지금 등록하시면 선착순으로 요가 타월 증정’이란 내용이었다. 내가 ‘사은품의 노예’라서 요가원에 간 건 아니다. 지금 운동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4월만 해도 몸이 여기저기 아파서 지금은 운동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5월이 되니 지금 당장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 직감을 무시하면 안 된다. 머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당장 실행에 옮겨야 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리하여 서둘러 레깅스를 입고 요가원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그것도, 목요일 오후 9시 마지막 타임 10분 전에!

“블록 위에 엉덩이를 올려 앉으세요. 다리는 뒤로 보내 무릎 꿇는 자세를 합니다. 어깨는 편안히, 뜨지 않아요. 팔은 아래로 두고 엉덩이를 지그시 누른다는 느낌으로 가만히 호흡합니다.”

아,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강사는 천천히 숨만 쉬라고 했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그것도 줄줄줄. 한번 올라온 감정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았다. 둑이라도 터진 것처럼 눈물이 감은 눈 사이로 사정없이 흘러내렸다. 강사님 앞에서 제대로 좀 해보겠다고 맨 앞줄에 앉았는데 하필 왜 지금 이 타이밍에.

살짝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 자기 몸에,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을 누가 보기라도 했으면 어쩌지?' 생각한 건 괜한 걱정이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제야 지금의 내 마음을, 내 감정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려고 애써 봤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돌발상황이었다. "가만히 호흡합니다"라는 강사의 말이 끝나고 아주 잠깐 사이, 호흡과 호흡의 그 중간. 내가 나에게 말했다. ‘은경아, 여기까지 오느라고 애썼다. 힘든 시간 잘 견뎌줬고, 잘 해왔어. 그런데 몸이 이래서 어쩌니, 그게 좀 안쓰럽네’라고. 마침 그즈음이 입사한 지 16년 되는 쯤이라 그랬는지, 그런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누군가에게 하는 말은 언제든 쉽고 편하지만, 나에게 하는 말은 계기가 없다면 익숙하지 않다. 강사가 "가만히 호흡하라"고 한 말이 내게는 일종의 주문이었던 셈이다. 내 안으로 들어가는, 아무도 나에게 해주지 않았던 말. 스스로를 격려해 주려고 꺼낸 말이었는데 오히려 그래서 눈물이 터진 거다. 정말이지 생경한 일이었다.

「퇴근 후 심리 카페」(생각속의집, 2017)를 지은 채정호 교수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일에 치이고 사람에게 상처도 많이 받았을 겁니다. 그래도 당신은 최선을 다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까지 버티어온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잘 살아왔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긍정의 한 마디를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참 잘 견뎌왔구나, 잘 버텨왔구나’ 힘들었던 나를 위로하고,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해주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내 삶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요가가 끝나고 난 뒤. 텅빈 요가 수련장. ⓒ최은경
요가가 끝나고 난 뒤. 텅빈 요가 수련장. ⓒ최은경

'자기 격려의 힘'을 강조하는 채 교수는 '자기 자신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낼 수 있는 힘이 어려운 시간도 버텨낼 수 있게 한다'라고 말한다. 나 역시 과도한 인정 욕구에 스스로를 괴롭힌 적이 많았다. 더 많이 인정받고 싶고(인정 욕구는 스스로 멈추지 않으면 끝을 모른다), 기대했던 인정을 받지 못하면 나 스스로를 질책하고 자책했다.

그 수렁에서 벗어난 건 몇 해 되지 않는다. '나대로' 있어도 괜찮구나 싶은 순간이 내게도 온 거다. 나의 단점은 단점대로, 장점은 장점대로 내버려 두었다. 내게 없는 것보다 가진 것을 감사하며 여기게 됐다. 남들이 뭐라든 내 삶을 긍정하게 된 거다. 채 교수의 말대로 삶을 긍정하는 이러한 태도가 나의 많은 것을 돌아보고 변화하게 했음은 물론이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이제 호흡을 정리하세요”라고 강사가 말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테라피 요가. 요가 첫째 날은 멋모르고 필라테스를 따라 하느라 힘들었는데, 요가 테라피는 그보다 한결 편안했다. 문제는 호흡이었다. 동작은 어지간하면 따라는 할 수 있었는데 호흡이 제멋대로 였다. 그럴 때마다 죽비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흡하세요.”

척추를 곧게 세우고 한 팔을 뒤로 넘긴 상태에서 반대쪽으로 몸통을 비트는 동작을 할 때 옆구리 쪽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 이제 이런 동작을 하는 것도 힘들어졌구나.’

손목을 반대로 꺾어 엉덩이를 들어 올리는 동작은 시도도 못 했다. (아이 낳고 망가진) 왼쪽 손목은 여전히 거의 쓸 수 없는 상태구나. 24시간 함께 하는 내 몸인데, 요가의 동작을 통해 내 몸을 분절시키며 바라보는 내 몸은 또 다른 나였다.

배에 힘을 주고, 척추를 세우는 동작을 호흡과 함께 하는 것은 여전히 완성도가 떨어졌다. 한번 동작을 마칠 때마다 “아이고”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돌보지 않으니 몸이 이렇게 망가졌구나 하는 순간을 자주 마주했다. 2년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내 뜻대로 안 되는 몸뚱이를 붙잡고 버둥거리고 있을 때마다 강사가 소리 없이 다가왔다. 그는 내 호흡을 지켜보면서 내가 내쉬는 호흡에 맞춰 한 번씩 몸을 쭉쭉 눌러줬다. 다시 한번 내쉬는 호흡에 쭉쭉. 말려 들어 가는 척추를 지탱해주면서 내쉬는 호흡에 또 한 번 쭉쭉.

그 순간, ‘아 내가 내 돈 내고 이렇게 힘든 걸 왜 하지?’ 싶을 만큼 아프다가도 기분이 묘해진다. 몸이 풀리는 동시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다. 회복의 시간이었다. 내가 '무언가'로부터 회복되고 있구나 싶은 감정이 드는 거다. 다시 하길 잘했구나. 다시 잘 해봐야겠구나. 스스로 마음을 다잡게 되는 시간이었다.

요가를 마치고 나오는 길.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다. 이 맛에 요가 하나 보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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