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광장에 있으면서 경찰서에 두 번이나 갔어요. 생전 처음 진술서라는 걸 쓰고 왔어요. 광장에 있으면서 숱하게 폭행을 당하고,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때로는 참고, 때로는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벅차서 폭행진단서라는 것을 끊어 놓고도 고소라는 것을 하지 못했어요…(중략).
더 이상은 못 참겠어요. 경찰들도, 애국당 무리들도! 계속해서 시비를 걸면 계속해서 고소를 할 것이고, 계속해서 (경찰이) 직무유기를 하고 우리한테만 참으라고 하면 계속해서 '개진상'을 떨 거예요.”
위의 글은 광화문 광장 '세월호지킴이' 김연지 씨의 SNS에서 가져온 글이다. 연지 씨는 2014년 '그 날' 이후 지금까지 광장에서 피켓을 든다. 초등학생인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일산에서 광화문까지 버스를 타고 와 피켓을 들고 있다가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춰 귀가하는 생활을 이어온 지 벌써 5년이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 하교 시간을 잘 못 맞춘다. 매일 '시비'를 걸어오는 '태극기부대' 때문이다.
아직 광화문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싸우는 이들이 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정권이 바뀌든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진실만을 요구해온 이들이다. 그런데 요즘 이들은 지옥 같은 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광화문 광장에 설치돼 있던 '기억 및 안전 전시공간'이 지난 4월 12일 광화문 남측광장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문을 열었다. 그런데 대한애국당 당원들이 광화문 광장에 불법 천막을 설치했고 그 후로 크고 작은 충돌을 석 달째 이어오고 있다.
서울시는 대한애국당 측에 자진 철거를 명령했지만, 대한애국당은 광화문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라고 피켓을 든, 그러니까 연지 씨 같은 시민과 유가족에게 조롱과 막말을 일삼으며 대못을 박고 있단다.
연지 씨는 그래서 최근에 사비로 바디캠을 구입했다. 연지 씨 사정을 아는 '언니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주기도 했다. 연지 씨는 요즘 혹시라도 감정적으로 대응할까봐 광화문에 나서기 전 공원에서 산책하며 멘털을 관리하고, 허투루 보일까 싶어 옷 매무새도 더 가다듬고 집을 나선다고.
이 글을 쓰기 위해 연지 씨와 통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 연지 씨의 목소리가 기죽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집과 아이밖에 모르던 연지 씨를 '투사'로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예전에는 이른바 '태극기부대'가 토요일에만 광장에 나왔어요. 그땐 유가족도 없었고, 일주일에 한 번 푸닥거리하는 것쯤이야 견딜 수 있었는데, 기억 공간이 이전한 이후에는 대한애국당에서 매일 시비를 걸어와요. 유가족에게 '시체팔이'라고 말하는데 도저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어요."
유가족과 세월호지킴이의 요구는 이렇다. 강력한 권한을 갖고 세월호 참사를 수사할 수 있도록 '특별수사단'을 설치하라는 것이다.
퇴선 방송을 하지 않은 것이 승객들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지, 그게 몇 퍼센트인지를 따지는 재판이 아니라 현장에 출동한 해경 전원이 승객을 '일부러' 구조하지 않은 이유와 그 책임을 해경에는 물론, 해수부, 청와대, 국정원, 기무사에 묻고 벌하는 재판을 해달라는 것이자,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침몰 원인을 밝혀달라는 것이다. 연지 씨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세월호가 침몰한 원인이 밝혀졌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아직 내부적 결함에 의한 침몰인지 외력에 의한 침몰인지도 밝혀지지 않았어요. 네덜란드에서 실험한 결과 세월호는 내부적 요인으론 절대 침몰할 수 없는 배라고 했어요. 그래서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해서 구조를 방기한 책임뿐만 아니라 그 침몰 원인 또한 밝혀야 한다는 거예요."
연지 씨를 보며 사안에 온몸으로 맞선 시민은 그 누구보다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광장에 남아 있는 많은 '연지 씨'의 끈질김에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연지 씨의 손을 꼭 잡고 싶었다. 그러면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이 조금이나마 사라지지 않을까.
아직, 광화문에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 다시 손을 내밀어야 할 때인 것 같다.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