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한글 못 뗀 첫째 때문에 아내와 담판을 준비한다
아직 한글 못 뗀 첫째 때문에 아내와 담판을 준비한다
  • 칼럼니스트 문선종
  • 승인 2019.06.13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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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문선종의 '아빠공부'] 아내와 나의 분단된 교육철학, 어떻게 통일하나?

며칠 전 퇴근길 미래 사회의 삶은 배틀그라운드와 같이 '각자도생'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어느 칼럼니스트의 글을 봤다. 배틀그라운드 게임은 배틀로얄 형식의 슈팅게임으로 최대 100명의 플레이어와 전투를 벌이는데, 전략과 무기를 활용해 최후의 1인으로 남는 것이 이 게임의 묘미다. 앞으로 우리의 삶이 이런 게임처럼 될 것이라는 참담한 예견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퇴근길이었다.   

◇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녀석의 잔인한 한 수 ⓒ문선종
녀석의 잔인한 한 수 ⓒ문선종

퇴근 후 첫째 서율이와 블록 쌓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아빠랑 번갈아 블록을 쌓아보자. 얼마나 높이 쌓을 수 있을까?"

협동심을 높이기 위한 아빠의 빅픽쳐였지만 단 1분 만에 깨지고 말았다. 서율이가 세모 블록을 올린 것이다. 내가 더 올릴 수 없도록 말이다. 마치 끝말잇기를 할 때 '산기슭' 같은 단어로 뒷사람이 더 이상 끝말을 잊지 못하도록 하는 것 같은 이치….내가 더 이상 블록을 쌓지 못하자 서율이는 킥킥대며 아빠의 당황함을 즐긴다.

딸아이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여러 게임과 놀이에서 자기가 이겨야 한다는 '우월함'의 추구에 혼내야 할까? 잘했다고 칭찬을 해야 할까? 심히 망설여지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탈자기화를 추구하며 타인에게 양보와 배려의 자세로 살아가라 가르칠 계획이다. 그러면 '꼰대'라고 할 것 같은 요즘 시대다. 

◇ 경쟁. 나의 생존이 누군가의 죽음이 되는 세상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사회복지사로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이타적인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가슴'이 있기 때문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런 '가슴'들이 보이지 않는 '손'에 피멍이 드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경쟁은 누군가의 생존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선명하게 나타낸다. 누군가가 대출금을 갚는 데 성공한다면 한 극단에는 누군가가 파산으로 절망을 맞이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작동 원리 '창조와 파괴'로 누군가의 창조는 누군가의 파괴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까? 누군가가 1등을 한다면 누군가는 꼴등을 한다. 부모 중 그 누구도 꼴등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양보보다는 자신이 노력한 만큼의 가치를 누리는 권리를 말한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 아내와의 담판을 준비하며

요즘 아내와 아이 교육문제로 자주 부딪힌다. 서율이가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아직 한글을 모르는 상황에 대해 책임의 화살을 맞고 있다.  아내는 "거봐! 다른 친구들은 다 아는데 서율이만 몰라서 자존심이 얼마나 상하는데!"라며 나를 몰아붙인다.

미래 시대의 철학은 '재미'라며, 한글도 본인이 재미있어할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한 나의 뜻에 동참해준 아내가 이제는 '내 아이는 남들보다는 뛰어나야 한다'는 덫에 걸려버린 것 같다.

그러나 아내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간다. 지금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님은 서율이를 빼고 반 아이들 모두 한글을 안다고 했다. 그리고 또래 엄마들 사이에서 입수한 정보와 수많은 학원과 교육 광고에 현혹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것을 정확히 '두려움의 덫'이라 정의한다. 

놀다 지쳐서 잠이 든 둘째, 아빠가 바라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문선종
놀다 지쳐서 잠이 든 둘째, 아빠가 바라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문선종

아내는 그 두려움으로 서율이를 공부방에 보내 매일 한글 공부를 시키고, EBS '한글이 야호' 교재로 매일 밤 서율이의 한글 습득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영어공부까지 시킨다.

유치원 교사 출신인 아내는 이런 선택이 서율이의 자존감을 지키는 방편이라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경쟁 세계에 진입하기 위한 몸풀이로 보인다. 철학을 좋아하는 내가 공자의 중용과 노자의 여백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면 아내는 '잡소리 치우라'며 신경질을 낸다. 

미취학 아동 서율이가 벌써 경쟁의 늪에 빠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아빠로서 참 안타깝기만 하다. 온탕과 냉탕만큼의 온도차를 보이는 나와 아내. 놀다가 지쳐서 잠든 서율이는 이제 공부에 지쳐서 잠들지 않을까? 이것이 나의 큰 두려움이다. 조만간 큰 폭풍을 치를 준비를 하면서 나의 논조를 가다듬어 본다. 

*칼럼니스트 문선종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해 두 딸아이의 바보가 됐다. 아이들을 좋아해 대학생활 동안 비영리 민간단체를 이끌었으며 구룡포 어촌마을에서 9년간 아이들이 행복한 공동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수행했다. 현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실에서 어린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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