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생은 명탐정] 할머니가 남긴 편지 1-1
[전학생은 명탐정] 할머니가 남긴 편지 1-1
  • 소설가 나혁진
  • 승인 2019.06.1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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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혁진 어린이 추리소설 '전학생은 명탐정' 8장

부엉이 아저씨 집에서 나온 시간은 오후 6시였다. 여름이라 아직은 주변이 환했다. 조금 걸어 내려오자 근처에 지붕까지 잘 마련된 호젓한 정자가 있어 그리로 들어갔다. 우리는 정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영지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유서 사진을 볼 준비를 했다. 그런데 들떠 있는 다겸과 영지와는 달리 나는 영 기분이 나지 않았다.

“우리 이래도 되는 걸까? 허락도 안 받고 유서를 멋대로 찍어온 걸 들키면 크게 혼날 텐데. 게다가 친절하게 우리를 대해준 아줌마를 속인 것도 영 찜찜하고….”

“물론 우리가 한 일이 떳떳한 일은 아니지. 하지만 부엉이 아저씨야말로 움직이는 사자상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니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좀 무리한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어.”

다겸이 굳은 얼굴로 답했다. ‘용의자’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 내가 물었다.

“용의자가 뭐야?”

“제일 의심스러운 사람.”

영지가 대신 알려주었지만 여전히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왜 하필 부엉이 아저씨를 의심하는 거지? 난 잘 모르겠어.”

“그래. 나도 부엉이 아저씨가 특별히 문제가 있는 행동을 한 것 같지는 않아. 그냥 친절하게 용재를 도와준 것뿐인데.”

부엉이 아저씨야말로 움직이는 사자상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니까. ⓒ베이비뉴스
부엉이 아저씨야말로 움직이는 사자상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니까. ⓒ베이비뉴스

이번에는 영지가 내 편을 들어주자, 다겸이 사라진 오징어튀김 사건을 해결했을 때처럼 한 번 씩 웃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좋아, 설명해줄게. 나는 우연히 영지의 신문을 읽었을 때부터 부엉이 아저씨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럴만한 이유가 있냐고? 좀 있으면 알게 될 거야. 어쨌든 오늘 용재랑 사건 현장을 차례차례 되짚어 가보면서 내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지. 부엉이 아저씨 말고는 도저히 다른 용의자를 찾을 수 없었던 거야.”

“대체 어디가?”

“자, 신문을 봤을 때부터 제일 이상했던 건 수위 아저씨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갑자기’ 나타났다는 거야.”

“그건 하필 내가 기절해 있는 바람에 아저씨가 오는 걸 못 본 거지. 학교 건물 왼쪽 길이나 오른쪽 길을 통해 오지 않았겠어?”

내 말에 다겸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 않아. 당시 현장은 일종의 거대한 밀실이었어. 아저씨가 절대로 올 수 없는…….”

“밀실?”

“다른 사람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잠긴 방을 뜻해.”

“거긴 방도 아니고 야외에 훤히 열려 있었는데, 뭐가 잠겼다는 거야?”

영지도 잘 모르겠다는 양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아니지. 잘 기억해봐. 건물 왼쪽 길은 용재의 사촌 형과 동생이 용재를 기다리고 서 있느라 막혀 있었잖아. 아까 들어보니 두 사람은 용재가 하도 안 오니까 고개만 빼꼼 내밀어 사자상 쪽을 보았고, 그 순간 용재를 깨우고 있는 부엉이 아저씨를 목격했다고 했어. 만약 아저씨가 왼쪽 길 쪽으로 왔다면 두 사람이 못 봤을 리가 없지.”

“그럼 오른쪽 길로 왔나 보지.”

영지가 별것도 아닌 걸 갖고 그러냐는 듯 심드렁한 투로 말했다.

“그것도 아냐. 너희 둘 다 기억하겠지만 그날 밤에는 벼락이 심하게 쳤어. 그 벼락이 하필 오른쪽 길 뒤쪽의 집채만 한 은행나무에 떨어지는 바람에 은행나무가 쿵 하고 쓰러졌지. 그 은행나무는 너희들도 알다시피 건물의 북동쪽 모퉁이 앞으로 쓰러졌어. 다음 날 바로 치우지 않으면 아무도 못 지날 정도로 큰 나무였으니까 당시에도 분명히 건물의 오른쪽 길을 완전히 막아버렸을 거야.”

나와 영지는 서로를 마주 보며 입만 떡 벌렸다. 건물 뒤쪽으로 통하는 왼쪽 길은 사촌들, 오른쪽 길은 나무로 완전히 막혀 있었다는 다겸의 얘기는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이제 아저씨가 얼마나 수상한지 알겠지? 유일한 두 길이 전부 막혀버렸는데, 어느새 짠 하고 용재 앞에 나타난 거잖아. 나는 맨 처음 영지의 신문을 볼 때부터 그 점에 주목했어. 그래도 혹시나 내가 모르는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오늘 용재랑 같이 가본 거지.”

“다른 길이 있었어?”

영지가 물었다.

“한 가지가 있었어. 부엉이 아저씨가 건물 현관문을 통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가 후문으로 나오는 방법 말이지. 아마 그 방법을 통해서라면 용재 사촌들의 눈에 띄거나, 은행나무에 가로막히지 않고도 사자상으로 나올 수 있었을 거야.”

“그럼 그렇게 한 것 아니야?”

다겸은 이번에도 시원스레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렇지 않아. 우선 건물의 현관문은 분명히 잠겨 있었다는 용재의 기억이 있어. 나는 용재의 기억을 절대로 의심하지 않아. 게다가 학교 후문은 의심스러운 사람이 산에서 내려와 학교로 들어올까 봐 맨날 잠궈놓는다면서. 그럼 그날 밤 학교 현관문과 후문은 모두 잠겨 있었던 거잖아. 어쩌면 부엉이 아저씨가 열쇠를 가지고 있어서 현관문과 후문을 열쇠로 연 다음에 다시 잠그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했는데, 용재의 말을 들어보니 그것도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어.”

“그건 또 왜?”

“부엉이 아저씨는 정신을 잃은 용재를 안고 학교 현관문 앞 유리 지붕 밑으로 와서 앰뷸런스를 기다렸대. 그날 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으니까 비를 피하려고. 그전에 용재는 빗속에서 기절하는 바람에 온몸이 흠뻑 젖었고, 체온도 많이 떨어져서 덜덜 떨고 있었지.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만약 아저씨한테 열쇠가 있었다면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앰뷸런스를 기다렸을 게 분명해. 그렇게 하지 못한 걸 보면 아저씨는 그 당시에 건물 열쇠가 없었던 거야.”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나와 영지는 완전히 감탄해 입만 떡 벌렸다.

“자, 이제 부엉이 아저씨가 유일한 두 통로가 완전히 막혀 있는 밀실에 갑자기 나타났다는 내 말을 이해하겠지?”

그때 다겸이 한 가지 가능성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아저씨가 나타날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있잖아! 우학산으로 올라가는 계단 말이야.”

“오, 용재가 의외로 날카로운걸. 맞는 말이야. 우학산 위에서 내려왔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것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잖아. 아저씨가 밤새도록 있어야 하는 수위실을 벗어나서 그 폭우가 쏟아지는 밤중에 우학산에 올라가 있는 것도 정상적인 행동은 아니지.”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다겸이 신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럼 어딘가 수상한 용의자는 부엉이 아저씨로 정해졌는데, 아저씨한테 물어봤자 아이들인 우리한테 제대로 대답을 해줄 리가 없잖아. 사건을 거의 다 해결했다고 생각했다가 거기서 딱 막혀버렸어. 아저씨가 집에 없는 틈을 타서 아줌마한테 정보를 캐봤지만 특별히 이렇다 할 것도 없었고. 이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무기는 바로 저것밖에 없어.”

다겸이 손가락을 뻗어 가리킨 것은 영지가 들고 있던 스마트폰이었다. 우리는 마지막 남은 할머니의 유서에서 뭔가 쓸 만한 게 나오면 좋겠다는 간절한 희망을 갖고 유서를 한 장, 한 장 읽어보았다.

*소설가 나혁진은 현재 영화화 진행 중인 「브라더」(북퀘스트, 2013년)를 비롯해 모두 네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조카가 태어난 걸 계기로 아동소설에도 관심이 생겨 '전학생은 명탐정'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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