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이중삼 기자】
교과서에 있는 딱딱한 역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역사책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역사 속 숨겨진 육아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하는 카드뉴스 '역사 속 육아 이야기'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조선시대 왕을 보좌했던 '내시'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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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시대 내시도 아빠가 될 수 있었다?
2. 조선시대 궁녀(宮女)는 결혼할 수 없었지만, 내시(內侍)는 정상적으로 결혼해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3. 하지만 내시의 혼인을 두고 당시 사대부들은 매우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봤다.
4. 조선후기학자 이긍익(李肯翊)이 쓴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따르면 “내시들이 장가들고 가정을 가지는 것은 이치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성인의 법도가 아니다”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5. 하지만 엄연히 내시도 부인을 둘 수 있었다. 다만 내시는 성적으로 고자였기 때문에 양자(養子)제도를 통해 아빠가 될 수 있었다.
6. 해당 내용은 내시 족보인 ‘양세계보(養世系譜)’ 서문에서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7. “성씨(姓氏)의 부자(父子)는 아니지만 각 성씨(姓氏)의 자식을 자손(子孫)으로 삼아 기른 것이 그 대가 오래되었다고 하였다. 아! 길러준 은혜도 낳아준 은혜(恩惠)에 못지않게 의(義)가 큰 것이니 그것을 감히 소홀히 하겠는가.”
8. 조선시대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은 내시의 양자로 3세 이전의 고자 아이를 데려오는 것을 허락한다고 돼있다.
9. 보통 1명~2명을 입양했지만, 재산이 많거나 권세가 큰 내시는 4명~5명의 양자를 들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10. 조선시대 내시도 한 가족의 가장이 될 수 있었다. 심지어 첩까지 둘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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