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라는 인생 최대의 과도기… 나를 살린 소설 속 ‘그들’
육아라는 인생 최대의 과도기… 나를 살린 소설 속 ‘그들’
  • 최규화 기자
  • 승인 2019.07.10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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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무것도 모르는데 엄마가 되었습니다」 김연희 작가

【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아무것도 모르는데 엄마가 되었습니다」를 쓴 김연희 작가. 김근현 기자 ©베이비뉴스
「아무것도 모르는데 엄마가 되었습니다」를 쓴 김연희 작가. 김근현 기자 ©베이비뉴스

“책 속 등장인물들은 나의 오랜 친구였다. 그들은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고, 나는 그들의 삶의 일부를 나누어 가졌다. 나는 그들의 삶에 내 삶을 비춰보고, 그들과 함께 여행했다. (…) 나는 육아를 하는 동안 그들을 만나며 위안을 얻고, 쉬었다.”(「아무것도 모르는데 엄마가 되었습니다」 7쪽)

특이한 책이다. 흔한(?) 육아 에세이인가 했더니, 소설가의 섬세한 눈길로 고르고 뽑은 40여 권의 책 이야기가 함께 있다. 그러면 ‘육아+독서 에세이’쯤 될까 했더니, 유용한 약 정보도 사이사이 알차게 들어 있다. 특이한 구성으로 눈길을 끈 책. 읽기 시작하니 세심한 감각과 포근한 공감이 책장마다 배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엄마가 되었습니다」(걷는사람, 2019년)를 쓴 김연희 작가는 여섯 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그리고 2009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으며 등단해 소설집 「너의 봄은 맛있니」(자음과모음, 2016년) 등을 출간한 소설가. 그리고 또 하나, 약사라는 직업도 가졌다. 책의 독특한 구성이 이해되는 이력이다.

지난달 7일 서울 신천동의 한 카페에서 김 작가와 마주 앉았다. 고백하자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라는 말 말고 준비한 질문이 별로 없었다. 기자 역시 김 작가와 동갑인 아이를 키우고 있다. 질문을 많이 만들려면 책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의심(?)하며 읽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책 속에 퐁당 빠져서 그냥 읽어버린 거다.

아이 키우는 고충도 이야기하고, 슬쩍슬쩍 아이 자랑도 좀 하면서, 인터뷰인지 수다인지 모를 대화를 두 시간 남짓 나눴다. 작가인 그의 삶과 독자인 나의 삶이 책 위에서 즐겁게 만났다.

◇ 초보 엄마의 혼란에서 나를 구해준 ‘소설’ 속 오랜 친구들

「아무것도 모르는데 엄마가 되었습니다」를 쓰는 데는 1년 정도 걸렸다. 엄마로, 소설가로, 또 약사로 바쁘게 살면서 어떻게 책을 쓸 시간을 만들었을지가 제일 궁금했다. 비결은 바로 일기. 김 작가는 매일 두 권의 일기를 쓰고 있다. 하나는 자신의 일기, 또 하나는 매일 자라는 아이의 삶을 기록하는 일기.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이나, 아이가 잠들고 난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처음부터 기한을 정해두고 쓴 것은 아니다. 매일 기록해둔 일기가 바탕이 됐고, 시간을 쪼개 쓴 글들이 모여 결국 책이 됐다.

“책 속 등장인물들은 나의 오랜 친구였다”(7쪽)라고 밝힌 김 작가. “그들을 공유하고 싶다”(7쪽)는 것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밝힌 집필의 이유다. 인터뷰에서 다시 물었더니 “외로웠나봐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지난달 7일 서울 신천동의 한 카페에서 김연희 작가와 마주 앉았다. 김근현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달 7일 서울 신천동의 한 카페에서 김연희 작가와 마주 앉았다. 김근현 기자 ©베이비뉴스

“소설가는 사실 자기 경험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데, 제가 애를 키우는 동안에는 애를 보는 게 저한테 영감을 많이 줬죠. 그래서 내가 이 글들을 쓴 것 아닌가 싶어요. 육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고,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어요. 다 같이 공감하고 싶은 마음. 애 키우면서 집에서 혼자 외로웠나봐요.”

김 작가는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책 속 그들 덕분”(7쪽)이라고도 썼다. 기저귀 가는 것 하나 도와줄 수 없는 책 속 인물들이 대체 무엇을 줬길래. 김 작가는 아이를 낳고 난 뒤 “사회에서 분리됐다는 고립감과 몸의 변화, 거기다 엄마가 됐다는 책임감 때문에 정신적으로 혼란스럽고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럴 때 소설 속의 인물들, 소설 속의 인생들이 다독여줬다. 김 작가는 특히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마음산책, 2013년)을 언급하며, 책 속 인물들의 인생을 통해 “힘들지만 지금은 이 순간은 지나갈 거고, 어쩌면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일 수도 있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육아기를 “인생 최고의 과도기”라고 표현했다. 항상 책 읽고 글 쓰는 것으로 자신을 위해 투자하며 살아가던 삶이, “예측불허”와 “혼란”의 삶으로 완전히 바뀌어버린 거다. 김 작가는 “내가 사는 삶이지만 내 삶이 아닌 것처럼. 나는 단지 애를 낳겠다고 결정했을 뿐인데 그 뒤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책에 소개된 40여 편의 작품들은 그 “예측불허”와 “혼란”의 시기에 김 작가를 살아 있게 해준 생명줄이었다. 김 작가의 머릿속에 살고 있는 천 명 이상의 작품 속 주인공들을 통해 그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고, “그들에게서 위안을 얻고, 그들을 만나며 쉬었다”. 그리고 그들을 공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런데 기자가 책을 처음 봤을 때, 좀 마음에 안 든 구석이 있었다. 바로 제목. ‘아무것도 모르는데 엄마가 되었습니다’라고 하니, 그럼 엄마가 되려면 뭔가 많이 알아야 된다는 소리인가 싶었다. 안 그래도 부모가 되려면 이것저것 알아야 할 것도 갖춰야 할 것도 많다고 겁을 주는 세상이라, 좀 삐딱한 생각이 들었다.

“저는 이 제목이 좋았어요. 거꾸로 생각했거든요. ‘엄마가 되기 전에는 내가 몰랐던 게 많구나. 모생애가 이런 거구나. 아이 키우는 행복이 이런 거구나.’ 아이가 웃어줄 때, 아이가 달려와서 안길 때….

정말 행복한 순간이 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그 순간 ‘아 나는 이런 행복을 몰랐는데, 사람들이 저마다 이렇게 다들 자기 집에서 행복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몰랐던 지식을 알게 된 게 아니라, 엄마가 돼서 행복을 알게 됐죠. 제2의 인생을 산다는 말도 있잖아요.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고 그런 걸 알게 됐어요.”

“이렇게까지 행복해도 되는 걸까. 걷고 있는 은호를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은호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열기가 퍼지면서 행복이 번졌다. 뿌듯하고, 기뻤다. 다른 부모도 비슷하리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세상에 내가 몰랐던 행복이 가득했구나, 싶었다.”(206~207쪽)

지난 5월 출간된 육아 에세이 「아무것도 모르는데 엄마가 되었습니다」. 김근현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5월 출간된 육아 에세이 「아무것도 모르는데 엄마가 되었습니다」. 김근현 기자 ©베이비뉴스

◇ “‘쓰기’는 나를 쌓아가는 행위… 같이 읽고 쓰며 위로받길”

누구든 하나의 이름만으로 사는 사람은 없다. 김 작가 역시 소설가라는 이름과 엄마라는 이름으로 동시에 살아가고 있다. 소설가의 삶과 엄마의 삶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고 있을까.

“저한테 엄마는 본능 같아요.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기보다 본능적으로 움직여지는 거죠. 하지만 소설가는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되잖아요.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행동은. 저한테 소설가의 삶과 엄마의 삶은 본능과 의지 사이에 있죠. 본능에 따라 아이를 키우고 의지로 소설을 밀고 나가는 것.

사실 지금은 본능이 의지를 많이 방해하죠. 시간은 유한한데, 아이한테 시간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니까. 하지만 나름 좋아요. 일하고 집에 와서 한두 시간 글을 쓴다고 해도, 정말 아까운 시간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시간을 좀 더 열심히 쓰려고 하고. 재미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글을 쓰는 거니까.”

김 작가에게 ‘쓰기’는 곧 “나를 쌓아가는 일”이다. 김 작가는 “쓴다는 것은 현실을 재현할 수도 있고 내 뜻을 전달할 수도 있고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최고 난이도의 예술”이라며, “최고 난이도의 예술에 작은 시간이라도 들이면서 제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쓰기’를 통해서) 삶 속에서 계속 소진되는 게 아니라 계속 나를 충전한다고 할까. 제일 기본이 일기라고 생각해요. 다른 분들도 일기를 쓰면서 ‘내가 쌓여가는 느낌’을 받으면 좋겠어요. 시간도 흘러가고 기억도 흘러가버리지만, 글로 나를 쌓아가는 거죠. 그런 걸 같이 공유하고 좋은 책도 같이 읽고 나누면 좋겠어요.”

“모든 가정에 작은 서재가 있었으면 싶었다. 인생의 어느 한 시기를 함께 한 소설로 이루어진 작은 컬렉션을 모든 사람이 소장한다면 어떨까. 아주 클 필요는 없었다. (…) 누군가의 집을 방문해서 그 혹은 그녀의 컬렉션을 보며 소설과 작가와 인생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도란도란 나눌 수 있다면.”(225~226쪽)

「아무것도 모르는데 엄마가 되었습니다」가 서점에 나온 것은 지난 5월. 김 작가는 한 중년 남성이 인터넷에 올린 서평을 우연히 보고 참 기분이 좋았다. 자기 며느리가 생각나고, 며느리가 참 고생한다는 내용.

김 작가는 “그런 반응도 제가 원한 것 중 하나였다”며, “엄마들하고도 공감을 하고 싶었고,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아기를 키우는지 다른 세대들과도 공감하고 싶었는데 그분이 읽어주셔서 참 좋았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앞으로 육아 에세이 책을 두 권 정도 더 낼 계획으로 이야기를 모으고 있다. 장편소설 작업도 함께.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당부의 주제 역시 ‘소설’이었다. 소설을 통해 “예측불허”인 인생의 한 시기를 다독이며 지내온 사람이, 역시나 그 험난한 시기를 건너고 있는 또 다른 ‘나’들에게 전하는 진심.

“소설의 가치는 다양성이죠. 소설에는 무한히 많은 사람, 무한히 많은 장소, 무한히 많은 상황이 있어요. 사람은 하나의 시간대에서 살 수밖에 없는데, 소설의 문으로 들어가면 무한히 많은 인생을 살 수 있어요. 한 가지 인생을 산 사람과 무수히 많은 인생을 산 사람은 분명 달라요. 소설을 많이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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