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5년 만에 남편과 둘이 외박한 이야기
육아 5년 만에 남편과 둘이 외박한 이야기
  • 정가영 기자
  • 승인 2019.07.26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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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영의 MOM대로 육아] 호캉스 누렸지만, 아이들이 보고 싶네

【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지난 주말, 우리 부부에게 모처럼 둘만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그것도 1박 2일이나 말이다. 동생이 “언니랑 형부랑 오랜만에 데이트 좀 하고 오라”며 주말동안 아이들을 돌봐주겠단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우리 부부만의 시간이라니. 아이를 낳고 또 아이를 낳은 지 5년. 사정상 친정부모 찬스도, 시부모 찬스도 쓰기 어려워 오로지 독박육아만 해왔다. 그런 내게 몇 시간도 아니고 하루도 아니고 1박 2일이란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5년 동안 남편과 나 둘만의 시간을 가진 적이 대체 언제였던가? 굳이 꼽자면 딱 한 번 있긴 했다. 2015년 11월 내 생일 저녁. 시어머니가 며느리 생일 선물로 아이를 봐주시기로 해, 세 시간동안 남편과 데이트를 하고 온 적이 있다. 당시 모유수유를 하던 때라 식당 화장실에서 열심히 유축하며 힘들어하다 급히 집으로 간 기억이 난다. 이때를 빼면 엄마가 된 뒤 아이들을 두고 제대로 남편과 시간을 갖는 건 정말 처음이다.

부부만의 자유시간을 하루 앞두고, 소풍가기 전날 아이들이 잠 못 이루는 것처럼 얼마나 가슴 설렜는지 모른다. 동생은 아이들을 잘 볼 것이다.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저 동생이 내게 준 자유시간을 잘 쓰고 오리라 다짐했다. 반면 남편은 처제가 못미더운지 “처제, 아이들 잘 볼 수 있겠어?” “힘들면 언제든지 연락해”라는 말을 하며 이것저것 알려주느라 바쁘다. 우리 부부는 토요일 오전 11시 30분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 결혼식 갔다가 일 좀 보고 내일 올거야. 이모랑 재밌게 놀고 있어. 맛있는 거 사올게~”하며 집을 나섰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아주 쿨하게 “빠빠이~”를 외쳐줬다.

이렇게 홀가분하게 집을 나선 적이 언제였더라. 잠깐 외출만 하더라도 아이들 여벌옷에 둘째 기저귀, 물통 등 챙길 게 산더미였다. 또 아이들과 현관문을 나서면서부터 “엘리베이터는 내가 누를 거야”, “오늘은 이 샌들 안 신을래”, “카시트 말고 앞자리에 앉고 싶다고!”라는 아이 투정 때문에 출발하기도 전에 진이 빠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오늘은 내 가방 하나, 남편 짐은 핸드폰과 차키 하나뿐이다. 몸도 마음도 너무 가볍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이었다.

육아 5년만에 남편과 나는 '이모 찬스'를 통해 1박 2일의 자유시간을 가졌다. "아이들 잘 놀고 있냐"는 연락에 동생은 내복바람으로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사진을 보내왔다. 정가영 기자 ⓒ베이비뉴스
육아 5년만에 남편과 나는 '이모 찬스'를 통해 1박 2일의 자유시간을 가졌다. "아이들 잘 놀고 있냐"는 연락에 동생은 내복바람으로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사진을 보내왔다. 정가영 기자 ⓒ베이비뉴스

우린 예정돼 있던 지인 결혼식에 참석한 후, 소곱창구이를 먹으러 갔다. 소곱창구이에 청하 한잔은 늘 내가 꿈꾸던 그림이다. 미혼일 때는, 신혼일 때는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었지만, 아이를 데리고 소곱창집에 간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기름 팍팍 튀지, 아기 의자 갖춘 곳은 쉽게 찾아볼 수 없지, 아이가 먹을 메뉴도 없기에 엄두도 못 냈다. 우린 곱창을 안주삼아 열심히 ‘짠~’을 했다. 연애 시절처럼 데이트하는 것 같았다. 주위 눈치 보며 서둘러 먹을 필요도 없었다. 오랜만에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저녁시간을 보냈다.

가장 먹고 싶었던 걸 먹었으니 소화시킬 겸 우리가 머무를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아이들 넘어질까, 다칠까 쫓아다니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천천히 걷고 또 걸으니 참 좋았다. 풍경도, 분위기도, 이 여유로움도 너무 좋았다. 늘 아이들에게만 카메라를 들이밀던 엄마와 아빠였는데, 서로의 모습도 찍어주고 둘이 함께 셀카도 남겼다. 그리고 호텔로 들어와 제일 하고 싶었던 걸 했다. 바로 리모컨을 쥔 상태로 푹신한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 보기. 아무 생각하지 않고 멍 때리기에 텔레비전 보는 것만큼 좋은 게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진짜 자유시간이고 휴식이다. 우리집엔 텔레비전이 없기에 더욱 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리모컨 버튼만 까딱거리며 가만히 누워있으니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지상낙원에 있으니 이상하게 더 아이들 생각이 났다. ‘아이들도 같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원래 엄마, 아빠는 이런건가? 우린 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도 줄곧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소곱창집에서는 “아이들은 밥 잘 먹었을까?”, 둘이 산책할 때는 “여기 애들 데리고 오면 정말 좋아하겠다”, 침대에 누워서도 “자면서 엄마 보고 싶다고 울진 않을까?”라며 아이들을 걱정했다. 우린 핸드폰 속 아이들 사진을 보면서 아이들의 추억들을 이야기하다 잠이 들었다. 굴러다니며 자는 첫째 아이도, 자다 깨서 우는 둘째 아이도 없으니 5년만에 제대로 꿀잠을 잤다. 우린 일어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향했다. 엄마, 아빠를 얼마나 기다릴까 싶은 마음에 후다닥 달려갔다. 그리고 “엄마!”하며 달려오는 아이들을 있는 힘껏 안아주었다. 그리고 보이는 건 지친 표정이 역력한 동생과 육아 사투의 흔적들로 가득한 집안이었다. 동생은 “언니가 왜 그렇게 정신없고 바빴는지 이제 알겠어. 난 아이 못낳을 것 같아”라는 말을 남겼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 소중한 자유시간이었다. 아이들에게만 집중하느라 소홀했던 남편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 행복했다. 아이들과 떨어져 있으니 아이들의 존재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로서, 아빠로서, 서로의 동반자로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육아의 어려움을 이해해주는 공감까지 받으니 더욱 힘이 나는 것 같았다. 가끔은 이렇게 도움받아 부부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았다. 또 언제 이런 자유시간이 생길라나? 안 생길 가능성이 더 높겠지만, 그날을 고대하며 우리 부부는 다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가영은 베이비뉴스 기자로 아들, 딸 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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