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지능’ 청년도 자립하고 싶다
‘경계선지능’ 청년도 자립하고 싶다
  • 기고=추주형
  • 승인 2019.07.3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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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원책은 초중등교육법 1개뿐… 졸업하면 퇴행 기로

지적장애를 다룬 톰 행크스 주연 영화 '포레스트 검프'. 제목을 듣고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가 주는 풍자 - ‘워터게이트 사건’에 영향을 주고, ‘존 레논’ 등 시대의 아이콘들에게 영감을 주며, 히피문화를 비꼬는 장면 등 - 을 떠올렸다면 당신은 40대 전후일 가능성이 높다. 벌써 4반세기 전인 1994년 작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 갈무리

미국의 어느 마을. 지능이 낮은데다 허약체질인 아동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그 아동은 첫사랑 ‘제니’의 “달려!”라는 외침에, 다리에 달린 교정기가 부서질 정도로 자전거보다 빨리 달려 도망친다. 눈부신 달리기 능력에 미식축구 명문 앨라배마 대학교에 스포츠 특기생으로 입학하고, 미국 대표 선수로 대통령도 만난다. 졸업식에서는 순진한 탓에 육군 입대서를 내지만, 오히려 순진한 덕에 참전한 베트남전에서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전우들을 모두 구출해 영웅이 된다. 느리긴 하지만 단순하고 꾸준한 덕에 탁구에도 재능을 나타내고, 중국 외교사절로도 나서게 된다. 전 재산을 털어 새우잡이배를 산 뒤에는 태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경쟁자 없이 새우를 잡고 회사의 오너가 되며 백만장자로서 기부도 한다. 첫사랑 ‘제니’를 찾아 3년2개월14일16시간동안 달리며 추종자도 만들다가 집으로 돌아와 만나게 된 아들의 이름은 자신의 이름과 똑같은 ‘포레스트 검프’. 자신처럼 친구와 동료들에게 놀림을 받는 삶을 살진 않을까 두려워 하지만, ‘제니’는 아들이 반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말한다.

지적장애를 다룬 톰 행크스 주연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한 장면. ‘포레스트 검프’는 지능지수(IQ) 75로서 ‘경계선지능인’에 해당한다. 극중에선 행운의 캐릭터지만,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파라마운트픽처스
지적장애를 다룬 톰 행크스 주연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한 장면. ‘포레스트 검프’는 지능지수(IQ) 75로서 ‘경계선지능인’에 해당한다. 극중에선 행운의 캐릭터지만,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파라마운트픽처스

◇ ‘숨은 의도 파악 더뎌’, 범죄에 쉽게 노출

‘포레스트 검프’는 사실 지적장애인은 아니다. 지능지수(IQ) 75로서 ‘경계선지능인’에 해당한다. 극중에선, 어쩌다보니 미국 사회의 굵직한 사건과 유명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운의 캐릭터로 분한다.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4반세기가 지난 현재까지도 ‘경계선지능인’의 삶은 녹녹치 않다.

남성들로부터 떡볶이·모텔비를 받았다는 이유로 자발적 성매매 청소년 판결을 받은 ‘경계선지능인’ A양(당시 15세) 사례만 봐도 그렇다. 장애인 범주가 아닌데다 소위 ‘매대’를 받았으니 성폭행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A양은 예측이나 대처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경계선 지능만으로 장애판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도 장애인수준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경계선지능인’은 가까운 미래에 대한 예측이나 적절한 대처능력이 부족하고, 타인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갈등상황에서 자기방어능력이 부족하다”는 게 경계선지능연구소 ‘느리게 크는 아이’ 박현숙 센터장의 말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재학하는 동안에는 괴롭힘이나 소외를 당하고 졸업한 이후에는 타인의 불순한 의도에 이용당하거나 본의 아니게 범죄 등에 연루되기도 한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모양새다.

◇ ‘경계선지능인’ 13.59%, 전체 장애인구보다 2.5배 이상 많다

실제로 미국에서 일반학급교사에 의해 위험군(at-risk)으로 의뢰된 학생 중 48%가 ‘경계선지능인’이다(Macmillan, Gresham, Bocian, & Lambros, 1998). 이들은 성인기에 노숙자, 약물중독, 알콜중독, 십대임신, 실업, 하향취업, 정부보조를 받거나 배우자 폭행으로 구속되기도 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지능의 정규분포 곡선에 따라 추정해보면 ‘경계선지능인’은 전체 지적장애인 2.3%의 6배에 달하는 13.59%나 된다. 전체 장애인구 추산치 5% 대비 2.5배 이상으로, 특수교육 범주에 속하는 전체 학생들보다 더 많은 셈이다.

◇ 국가지원책은 초중등교육법 한 개… 졸업 뒤엔 어쩌나

‘경계선지능인’은 현행법상 장애인이 아니다. 지적장애 진단 기준인 IQ 70보다 높은 지능지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선’에 놓여 있으니, 특수교육지원 대상도 아니고, 적절한 공적 서비스도 제공받기 어렵다.

일명 ‘느린학습자 지원법’(대표발의 국회의원 조정식, 2016년 개정입법)으로 불리는 초중등교육법이 있긴 하다. 현재로선 유일한 법률이지만, 이마저도 ‘경계선지능인’만을 위한 법제가 아니다. 입법 뒤 지원을 받던 학생들이 벌써 졸업하여 청년이 될 시기니, 일자리를 통한 자립 지원 제도나 서비스가 급한 상태다. ‘경계선지능인’들의 절박한 심정과 달리 입법적 후속조치는 전무하다. 이번 20대 국회 제․개정 발의안은 0건, 사례조차 없다.

경계선 지능·지적장애 대안학교 ‘스타칼리지’. ‘스타칼리지’ 안지은 대표교사는 “부모는 일자리를, 당사자는 같이 놀 친구를 원하는데, 살펴보면 동일한 욕구”라고 말한다. ⓒ추주형
경계선 지능·지적장애 대안학교 ‘스타칼리지’. ‘스타칼리지’ 안지은 대표교사는 “부모는 일자리를, 당사자는 같이 놀 친구를 원하는데, 살펴보면 동일한 욕구”라고 말한다. ⓒ추주형
경계선 지능·지적장애 대안학교 ‘스타칼리지’ ‘스타칼리지’ 안지은 대표교사는 “부모가 말하는 일자리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닌 자녀의 자존감 향상을 위한 것이고, 당사자가 말하는 놀이는 어울리고자 하는 욕구에 기반한다”고 전했다. 두 가지 욕구 모두 사회관계성 증진이라는 같은 맥을 갖고 있다. ⓒ추주형
경계선 지능·지적장애 대안학교 ‘스타칼리지’ ‘스타칼리지’ 안지은 대표교사는 “부모가 말하는 일자리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닌 자녀의 자존감 향상을 위한 것이고, 당사자가 말하는 놀이는 어울리고자 하는 욕구에 기반한다”고 전했다. 두 가지 욕구 모두 사회관계성 증진이라는 같은 맥을 갖고 있다. ⓒ추주형

경계선지능청년을 위한 프로젝트 그룹 ‘더딤(The DIM; The Do It Myself)’은 6월부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 보좌진들을 만나가며 입법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더딤’은 아산나눔재단 프로그램 중 하나인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 훈습생 6명(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 서미연 과장,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김소정 팀장, 사랑의힘 고희경 상임이사, 춘천사회혁신센터 윤효주 팀장, 한국사회복지사협회 추주형 차장, 한국해비타트 정태민 팀장, 이상 단체명 가나다순)이 만든 프로젝트 그룹이다.

◇ 노동자립 통한 사회관계망 형성… 사회적 비용 누수 및 개인 퇴행 방지

‘경계선지능인’과 그 부모가 원하는 건 ‘사회관계망’이다. 경계선 지능․지적장애 대안학교 ‘스타칼리지’ 안지은 대표교사는 “부모는 일자리를, 당사자는 같이 놀 친구를 원하는데, 살펴보면 동일한 욕구”라며, “부모가 말하는 일자리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닌 자녀의 자존감 향상을 위한 것이고, 당사자가 말하는 놀이는 어울리고자 하는 욕구에 기반한다”고 전했다. 두 가지 욕구 모두 사회관계성 증진이라는 같은 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경계선지능연구소 ‘느리케 크는 아이’ 박현숙 센터장은 “학창시절 학습과 대인관계에서의 실패경험이 누적되면서 경계선 지능이 악화되어 청소년기나 성인기에 지적장애 판정을 받기도 하며, 과도한 약물치료나 학교를 떠난 후에 사회적 관계망이 결여되면서 정신병리적 문제가 결부되어 심각한 수준으로 퇴행하는 경우도 있다”며, “장애판정으로 공적부조 영역에 들어오면 오히려 사회적 비용이 더 커지는 만큼, 자립을 지원해 자아실현을 돕는 후속 정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지능인에 비해 학습속도가 느릴 뿐이니 대상에 적합하게 직업교육을 실시하고, 취업 이후에도 지속적인 사례관리를 통해 안정적인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도우면 성공적인 자립이 가능하다”며, “‘경계선 지능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 매뉴얼’을 갖추거나 청년 단계에서의 자립을 지원하는 해외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경계선지능인’이란?

‘경계선지능인’은 IQ 71~84 사이에 해당하는 지적능력을 지닌 사람을 일컫는다. 전체인구의 13.59%라는 연구 보고가 있다. 지적장애인으로 분류돼 특수교육을 받기에는 수준이 맞지 않고, 비장애인 교육을 받기에는 벅찬 상태다. 문자 그대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선’에 놓여, 노동과 복지에서 소외되고, 범죄에도 쉽게 노출되는 등 사각지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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