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게 전한 편지 한 통… “엄마를 찾고 싶어요”
대통령에게 전한 편지 한 통… “엄마를 찾고 싶어요”
  • 최규화 기자
  • 승인 2019.08.05 16: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AD
[인터뷰] 친부모 찾기 나선 노르웨이 한인 입양인 캐서린 토프트 씨

【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1983년 2월 전주에서 태어나 그해 7월 노르웨이로 입양된 캐서린 토프트 씨(Cathrine Toft, 한국명 조혜정). 한국에 있는 친부모를 찾고 있는 그가 네 번째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지난달 25일 서울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토프트 씨를 만났습니다. 그와 나눈 이야기를 1인칭 형식으로 재구성해 전합니다. - 기자 말

지난달 25일 서울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만난 캐서린 토프트 씨.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달 25일 서울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만난 캐서린 토프트 씨.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저는 제 친부모님을 찾으러 한국에 왔습니다. 제 이름은 캐서린 토프트(Cathrine Toft), 기록에 남아 있는 한국 이름은 조혜정(Jo, Hea-jung)입니다. 사실 한국 이름은 입양기관에서 지은 것으로 짐작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저는 1983년 2월 20일 태어났습니다. 저는 전북 전주시 효자동에서 발견돼 파출소로 인계됐고, 3월 1일 경찰에 의해 전주영아원에 전해졌습니다. 제가 입양기관을 통해 노르웨이에 입양된 것은 그해 7월. 그 뒤로 저는 노르웨이에서 36년 동안 ‘캐서린 토프트’라는 이름으로 살았습니다.

제가 친부모님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2009년입니다. 그해 10월 한 TV쇼에서, 한국인 어머니가 입양 보낸 아이를 찾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 TV쇼가, 그 어머니의 이야기가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제 어머니한테 화가 나 있었습니다. 저를 버리고 떠났으니까요. 너무 미웠습니다. 새로 만난 가족 안에서도 저는 문제덩어리였어요. 늘 절망적이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TV쇼에서 아이를 찾는 한 어머니를 봤는데, 그 어머니가 너무 안돼 보였어요. 왜 자기 아이를 키우지 못했는지, 그 사정과 감정을 이해하게 된 거죠. 그래서 그 다음부터 엄마를 미워하지 않게 됐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내 삶이 좋아지려면 내가 마음을 좀 더 열어야 한다는 것을….

한국에 있는 엄마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무엇부터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어요. 처음에는 다른 입양인들이 모여 있는 그룹에 참여하기 시작했죠. 친부모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 물었어요. 그때마다 다양한 이야기와 다양한 모임들을 접할 수 있었죠.

위 세 장의 사진은 1983년 발견 당시의 모습, 아래 사진들은 입양 이후 성장 모습이다. ©캐서린 토프트 제공
위 세 장의 사진은 1983년 발견 당시의 모습, 아래 사진들은 입양 이후 성장 모습이다. ©캐서린 토프트 제공

◇ 1983년 2월 전주에서 태어나 그해 7월 노르웨이로 입양됐어요

사실 좀 지치기도 했어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정보들을 구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버린 거죠. ‘이거 생각보다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한동안 체념한 채 지내기도 했어요.

그런데 2013년에 깜짝 놀랄 만한 이메일 한 통이 왔습니다. 2009년에 제가 본 TV쇼에 관한 기사를 쓴 한국인 기자가 있었거든요. 제가 그 기자에게 친부모 찾는 것을 도와달라는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는데, 4년이나 지나서 답장이 온 겁니다! 그 기자 덕분에 다시 엄마를 찾기 시작한 거죠.

그분은 전주 지역에 있는 신문사에도 연락을 해주고, 제가 연락처를 알 수 없는 여러 기관에 연락해서 약속도 잡아줬어요. 그래서 제가 작년 5월에, 입양 이후 35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 올 수 있었습니다. 

지난 6월에도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노르웨이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겁니다. 지난번 한국 방문 때 청와대 앞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대통령이 얼마나 높은 사람인지 알고 있었죠.

일주일쯤 전에 문 대통령을 만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저는 정말 흥분하고 기대했죠. 문 대통령이 노르웨이 국왕과 함께 제가 사는 베르겐을 방문하셨어요. 저는 삼사십 명의 한국 교민들과 함께 문 대통령을 기다렸죠. 노르웨이 전통의상을 입고, 손에는 태극기와 노르웨이 국기를 들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문 대통령을 만났을 때, 저는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한국어는 그것뿐이었어요. 문 대통령은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몇 마디 하셨죠. 저는 “Welcome to Norway”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어요. 제 옆에 있는 교민 분이 저를 대신해서 크게 얘기해주셨죠.

제 이름이 무엇인지, 제가 언제 입양됐는지, 그리고 미리 준비한 편지를 문 대통령에게 전해주면서 제발 편지를 읽어달라고 부탁했죠. 편지에는 친부모를 찾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내용을 한국어로 적었거든요.

토프트 씨는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이 노르웨이를 방문했을 때 문 대통령을 만나 친부모를 찾아달라는 편지를 전달했다. ©캐서린 토프트 제공
토프트 씨는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이 노르웨이를 방문했을 때 문 대통령을 만나 친부모를 찾아달라는 편지를 전달했다. ©캐서린 토프트 제공

◇ 한국에 올 때마다 제 자신을 더 알아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교민 분이 문 대통령님께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주변에 있던 분들이 모두 놀라서 이야기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교민 분은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아주 큰 소리로 이야기하셨죠. 사람들은 감동받은 것처럼 보였어요. 문 대통령 뒤에서 이야기를 듣던 김정숙 여사님은 눈시울을 붉히며 저와 눈을 마주치기도 하셨습니다.

저는 정말 놀랐고 엄청 흥분한 상태였어요. 제 생각에 그때 베르겐에서 문 대통령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모두 한국 교민들이었고, 입양인은 저 혼자였어요. 대통령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특별하고 자랑스러운 기회죠. 이제 저 역시 다른 교민들처럼, 한 사람의 한국인이 된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지난해에만 세 번 한국을 방문했고, 이번에 네 번째 방문이에요. 아직 친부모님 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저는 많은 것을 얻고 있어요. 그래서 계속 다시 오는 거죠. 한국에 올 때마다 제 자신에 대해 더 알아간다는 기분이 들어요. 자신에 대해 더 알기 위해서 저는 한국에 또 돌아와야 해요.

한국에 계속 온다고 해도, 친부모님은 못 찾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 자신을 찾을 수는 있겠죠. 한국에 올 때마다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되고,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집니다. 아주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요. 올 때마다 여기 머물고 싶어서, 노르웨이로 돌아가는 게 번번이 너무 힘들어요.

한국에 올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저는 정말 운이 좋았어요. 모든 입양아들이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사실 저는 한국도 많이 미워했습니다. 왜 아이를 버려야 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몰랐으니까요. 저는 화가 많았고, 어디에도 어울릴 수가 없었어요. 

거울을 보면 그 안에는 아시아 사람의 얼굴이 있었어요. 그래서 화가 났죠. 가족들은, 형제들은 저처럼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절망했죠. 가족들은 모두 ‘저를 포함해서’ 우리는 노르웨이 가족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아니야, 난 달라, 난 이 가족에 속할 수가 없어, 이 사진을 봐’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웃고 있는 사진이 없었어요. 하지만 한국에 와서 찍은 사진을 보고는 어머니가 말씀하시더군요. “너 한국 친구들하고 찍은 사진에서는 잘 웃는구나. 행복해 보여.” 그러고 보니 제가 봐도 정말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가족들이 모두 알게 됐죠. 제가 한국에 오는 게 나를 위해서 좋은 일이라는 걸.

토프트 씨는 한국에 올 때마다 자신을 더 알아가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토프트 씨는 한국에 올 때마다 자신을 더 알아가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 보고 싶어요 제가 누굴 닮았는지, 알고 싶어요 내가 어디서 왔는지

저는 노르웨이에서도 한국에 대해 다시 공부하고 있습니다. 특히 입양제도에 관해서 알아보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한국의 현실이 과거에 비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부유한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버려지는지 알면 충격을 받습니다.

과거에 한국에서는 미혼모들이 사회적인 상황이나 가족들의 강요 때문에 양육을 포기하는 일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제 엄마 역시 미혼모였을지 모르죠. 한국 미혼모들의 상황을 알게 되면서, 제 엄마도 이해하게 됐어요. 그래서 한국미혼모가족협회를 알게 됐고, 교류하게 됐습니다. 그녀들의 삶을 보면서 저도 이해하게 됐고, 제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제 가장 큰 소원은 엄마를 만나는 겁니다. 엄마는 괜찮은지 묻고 싶어요. 그리고 보고 싶어요. 제가 누구를 닮았는지. 저처럼 생긴 사람들을 정말 보고 싶어요. 그리고 알고 싶어요. 내가 어디서 왔는지. 또… 알고 싶어요. 나를 왜 떠났는지. 너무 어려운 질문이지만 나를 왜 떠났는지 알고 싶어요.

화가 나서 알고 싶은 게 아니에요. 어떤 엄마도 자기 자식을 버리고 싶어서 버린 엄마는 없다는 걸,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걸 이해해요. 저는 엄마를 용서할 수 있어요. 이해하니까. 하지만 그냥 알고 싶어요. 왜 나를 떠났는지.

미워했어요. 내가 엄마로부터 나왔는데 엄마는 나를 떠났으니까.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고 미워했어요. 그래도 엄마를 찾고 싶어요. 엄마가 나한테 삶을 줬으니까. 그리고 내가 잘 살아왔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그런데 엄마가 어디 있는지 몰라요. 다른 가족이라도 만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토프트 씨의 가족에 대해 아시는 분은 아동권리보장원(구 중앙입양원 02-6943-2654∼6) 또는 한국미혼모가족협회(02-2682-3376)로 연락해주십시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실시간 댓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