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이중삼 기자】
나쁜 어른들의 침묵이 악마를 만들어냈다. 영화 ‘어린 의뢰인’(장규성 감독, 2019년 5월 22일 개봉) 이야기다.
영화 '어린 의뢰인'은 오직 성공만을 바라는 변호사인 주인공 정엽(배우 이동휘)이, 일곱 살 친동생인 민준(배우 이주원)을 죽였다고 자백한 열 살 소녀 다빈(배우 최명빈)을 만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2013년 8월 경상북도 칠곡군의 한 가정집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을 모티프로, 114분짜리 영화 속에 이야기를 담아냈다.
주인공 정엽은 대형 로펌 면접에 낙방한 후 한 지방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게 된다. 로펌에 들어가기 위한 잠깐의 정차였다. 그렇게 정엽은 정도 안 가는 사회복지사 일을 하게 되는데, 계모의 구타를 참지 못한 다빈이가 계모를 경찰에 신고하면서 정엽과의 인연이 만들어진다.
다빈이는 어른들의 말을 믿고 경찰에 엄마가 구타를 한다고 신고했지만, 경찰은 형식적인 절차만 진행하고 사회복지사를 불렀다. 하지만 수사 권한이 없는 사회복지사는 다빈이와 민준이가 새엄마에게 폭행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한다.
“어차피 우리는 수사권이 없어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영화 속 아동복지 담당자 대사)
영화를 보면서 ‘방관자 효과’가 떠올랐다. 방관자 효과는 주위에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다. 이웃, 경찰, 학교 선생님, 사회복지사 모두 침묵하는 모습에 기자는 그저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분노한 장면이 있다. 바로 정엽이 다빈이 담임선생님에게 “선생님, 다빈이에게 이런 일(아동학대)이 반복된 것을 알고 계셨어요?”라고 묻자, 선생님은 “예,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장면. 기자는 잠시 리모컨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냉수를 한잔 들이켰다.
아이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놈의 법이 뭔지, 영화 속에서 경찰은 법을 들먹거리면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아랫집 아줌마인데, 괜찮니? 누구 도와줄 사람도 없어?” (영화 속 이웃집 아줌마 대사)
“원래 아이들이 이렇게 찾아와요? 업무도 많아 죽겠는데 부담스럽습니다.”(영화 속 정엽 대사)
“엄마가 한 대 쥐어박았다고 신고나 하고, 요즘 애들 무섭다.”(영화 속 경찰 담당자 대사)
매일같이 다빈이와 민준이가 맞는 소리, 더 나아가 비명 소리가 아파트에 울려 퍼졌지만 주변 이웃들은 침묵했다. 이런 침묵은 계모인 지숙이라는 악마를 자라나게 했다. 여기에 공권력의 방관이 더해져 악마가 완성됐다.
영화가 끝난 후 어른으로서 부끄러움과 깊은 책임감이 들었다. 손익분기점 100만 명의 비교적 작은 규모의 영화였지만, 안타깝게도 약 20만 명의 관객만이 이 영화를 봤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알라딘’이 1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을 보면서 마음이 더 무거웠다.
분명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실화를 다룬 영화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도 보는 이의 몰입도를 높이려 노력했어야 했다. 하지만 '어린 의뢰인'은 실제 사건을 그저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는 방식을 선택하면서 보는 이의 흥미를 떨어뜨렸다. 이야기 전개가 무난했다. 사건을 재현한 한 편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마주한 듯한 착각도 들었다.
여기에 아이들이 학대를 당하는 장면이 너무 구체적으로 묘사됐다. ‘굳이 넣었어야 했나’란 의문도 생겼다. 꼭 눈으로 봐야만 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영화 초반 아동학대에 대해 충분히 표현했음에도 후반부에 그보다 더 강한 폭행 장면들이 나오면서 보는 내내 견디기 어려웠다.
영화 속 재판 결과 새엄마는 징역 16년, 친아빠는 5년을 선고 받는다. 실제 대법원까지 간 재판 결과에서는 새엄마 징역 15년, 친아빠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경각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아니라는 무관심, 혹시나 나한테 피해가 가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 등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에도 ‘착한 어른’들의 도움을 절실히 원하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희생돼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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