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곳에 돌아오려고, 낯선 곳으로 떠났다
익숙한 곳에 돌아오려고, 낯선 곳으로 떠났다
  • 칼럼니스트 백운희
  • 승인 2019.08.1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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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키우는 아이] 가족과 떠난 뉴질랜드 캠핑카 여행기

전망 좋은 호텔의 널찍한 침대에서 혼자 눈 뜬 아침이었다. 열흘 남짓의 뉴질랜드 캠핑 여행을 마무리하는 날이기도 했다. 창밖으로 파란 하늘과 그만큼의 바다가 펼쳐졌다.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라는 생각에 한참을 뒤척거렸다. 남반구의 땅은 겨울을 나는 중이었다. 히터를 틀고, 여행용 전기장판을 깔아도 밤에는 서늘한 캠핑카 대신 여행 마지막 날은 아파트형 호텔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전날 숙소에 들어서자 싱글 침대 두 개가 놓인 방에 짐을 먼저 놓으며 아이가 말했다.

"엄마가 저쪽 방 큰 침대에서 편하게 주무세요. 아빠랑 제가 여기서 잘게요. 엄마는 계속 새벽에 깨서 힘들었잖아요."

‘아, 알고 있었구나!’

아이에게 고맙고도 미안한 한편, 대견한 마음도 들었다. 서늘하고 어두운 캠핑카에서 덩그러니 깨는 일은 고역이었다.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새벽 3~4시(한국 시각으로 자정에서 새벽 1시 무렵)면 절로 잠이 달아나 버렸다.

며칠 전에는 요란한 빗소리와 바람 소리에 잠이 깨 동이 틀 때까지 우두커니 앉아 있기도 했다. 사실 여행 중 비를 만나는 일은 익숙했다. 10분 사이에 비가 왔다가, 그쳤다가, 다시 비가 오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며칠 전 그날 밤만큼은 오랜 시간 세찬 비가 내렸다. 새삼 ‘길 위의 여행’이 주는 낯설고 공허한 감정이 몸을 휘감았다. 스스로 물었다.

“왜, 여기에 와 있는 거니?”

북섬의 파파모아 비치에 위치한 캠핑장에서는 겨울에도 여유롭게 캠핑을 즐기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온전한 해돋이의 과정을 목도할 수 있었던 곳. ⓒ백운희
북섬의 파파모아 비치에 위치한 캠핑장에서는 겨울에도 여유롭게 캠핑을 즐기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태어나 처음으로 온전한 해돋이의 과정을 목도할 수 있었던 곳. ⓒ백운희

◇ 아이와 남편이 함께 하는 친밀하고도 치열한 여정… 왜 하필 뉴질랜드였나

많은 사람이 익숙한 것과 거리 두기,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여행의 이유를 꼽는다. 일이든 관계든 피로와 권태는 때때로 엄습하는 법이고, 그 처방으로 여행에서 직면할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말이다.

김영하 작가는 책 「여행의 이유」에서 이렇게 말했다.

"삶의 안정감이란 낯선 곳에서 거부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고 믿는다."

나 역시 그런 유형의 사람일지도 모른다. 단조로움 대신 삶의 생생함을 마주하고 싶으면서도 안정감도 함께 갖고픈 그런 사람 말이다.

낯설고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캠핑카를 타고 이동하며 잠을 자야 하는 여행을 ‘굳이’ 선택한 것은 나였다. ‘차’라는 한정된 공간을 집 삼아,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아이와 배우자까지 셋이 붙어 지내야 하는 친밀하고도 치열한 여정. 여행의 후반부로 갈수록 서로를 힘들게 하거나 상대로 인해 힘들어할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화장실 오물 처리와 같은 극복 과제와 함께 말이다.

카우리 소나무 숲을 향하던 길에 만난 무지개는 여태 보지 못한 크기와 선명함으로 우리 가족에게 선물같은 순간을 선사했다. ⓒ백운희
카우리 소나무 숲으로 향하던 길에 만난 무지개. 그동안 보지 못한 크기와 선명함으로 우리 가족에게 선물같은 순간을 선사했다. ⓒ백운희

◇ '아이를 위한 무료 과일' 포스터 한 장에 뉴질랜드 행을 결심하다

올해 초 뉴질랜드 오클랜드행 항공권을 덜컥 예약했다. 여행의 시기는 배우자의 휴가와 아이의 방학이 함께 있는 한국의 여름, 그러니까 뉴질랜드는 여행의 비수기라는 겨울이었다. 항공권 가격을 낮추기 위해 경유 노선을 택했다. 가는 데만 얼추 하루가 걸리는 일정이었다.

당시 내 머릿속에서는 뉴질랜드를 생각하면 '환대'라는 단어가 바로 떠올랐다. 아이들을 우선하고, 이방인을 환대하는 사회를 향한 궁금증과, 그 사회를 직접 경험하고 싶다는 갈망이 일었다. 유아교육 정상화를 위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교육자라는 이름이 무색해진 이익단체의 몽니와 이를 비호하는 정치권을 바라보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 즈음이었다.

뉴질랜드에 가야겠다고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SNS에서 본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뉴질랜드의 한 마트에 붙어 있는 ‘Free Fruit For Kids(아이를 위한 무료 과일)' 포스터 이미지였는데, 마트에 온 아이들을 위해 무료로 과일을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가족을 뉴질랜드로 이끈 결정적 한 장. 뉴질랜드 마트의 'Free Fruit For Kids' 포스터. ⓒ백운희
우리 가족을 뉴질랜드로 이끈 결정적 한 장. 뉴질랜드 마트의 'Free Fruit For Kids' 포스터. ⓒ백운희

'Free Fruit For Kids' 덕분에 어른들은 장보기에 집중할 수 있고, 아이들은 과일을 먹으며 쇼핑의 지루함을 견뎌낼 수 있으리라. 물론 마케팅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저 아이들을 귀찮고 불편한 존재로 대하거나 아니면 노골적으로 소비자로만 대하는 우리 사회와는 확실히 다른 접근법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이터’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나라답게 뉴질랜드는 어느 곳에나 널찍한 놀이터가 있다. 놀이터의 모습이 모두 다른 점은 매력적이었다. 획일적인 놀이터 구조에 익숙해진 데다 그마저도 친구들은 학원을 가야 해서, 학습지를 풀어야 해서, 대기 질이 좋지 않아서 놀이에 힘들었던 아이에게 다른 사회를 보여주고 싶었다.

캠핑카 여행을 가자는 나의 즉흥적인 계획에 남편은 묵묵히, 그러나 구체적 계획으로 실행력을 더했다. 사실 그의 업무 특성상 축적된 경험치(라고 쓰지만 고생이라고 부르자)와, 언어 구사, 상황 대처 능력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애초에 엄두도 내지 않았을 여행이었다.

아이 역시 좋아했다. 아이는 여행을 떠나기 전 동영상을 보며 우리가 대여한 캠핑카의 구조와 특성, 기능을 익혔다. 현지에서 담당할 역할을 나누고 미리 재정 상황에 대해 공유하는 준비 시간을 즐겼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려 캠핑카로 길 위에 서자마자 마주한 뉴질랜드의 첫인상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배척'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환대는커녕 여행자에 대한 ‘예의 있는 무관심’도 없었다.

우리가 이용한 도로는 북섬을 관통하는 중심도로였지만 한국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좁고 구불거리며 노면도 거칠었다. 게다가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었다. 운전방식과 교통체계, 몸집이 큰 캠핑카의 흔들거림과 덜컹대는 소리에 익숙해지려니 정신이 혼미했다. 그래서 캠핑카 여행책과 렌터카 업체에서는 주행속도를 60~70km 정도로 유지하며 천천히 달리라고 권장했다. 사실 그 이상 속도 내기도 무리였다.

그런데 차들이 경적을 크게 울리며 우리를 거칠게 추월했다. 렌터카 업체에 전화를 걸어 우리 캠핑카가 ‘너무 느려 터졌다’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차들이 얼마나 경적을 세게 울려대는지 처음에는 “이 나라에선 추월할 때 무조건 경적을 울리나 보다”라고 우리끼리 이야기하기도 했다.

우리만 이런 경험을 한 것이 아니었다. 화산 지역인 로토우라 캠핑장에서 만난 한 한국 가족은 아빠가 2년 전 뉴질랜드로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고, 이번에는 같은 코스로 가족 여행을 왔는데 “이곳이 내가 알던 뉴질랜드가 맞나”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남편은 모처럼 동지를 만났다는 기분에 그와 열띤 대화를 이어갔다.

타우랑가 전역을 조망할 수 있는 망가누이 산에 올랐을 때 만난 양떼. 뉴질랜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양떼였건만 아이는 양떼를 볼때마다 반가워했다. ⓒ백운희
타우랑가 전역을 조망할 수 있는 망가누이 산에 올랐을 때 만난 양떼. 뉴질랜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양떼였건만 아이는 양떼를 볼때마다 반가워했다. ⓒ백운희

그러나 첫인상과 달리, 뉴질랜드에서 만난 많은 사람 덕에 뉴질랜드는 그래도 여전히 열린사회임을 느낄 수 있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우리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아이에게 웃는 낯으로 대하며 여정을 물어왔다.

우리가 하나를 질문하면 질문에 대한 답뿐만 아니라 더 많은 정보를 보태줬다. 우리는 그저 이 길이 맞는지 알고 싶었을 뿐인데 그들은 여기서 거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 사고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줬다.

식당에서는 요청하지 않은 소스를 건네주고, 남편이 음식을 먹다가 나무젓가락을 부러트린 민망한 상황에서도 “오, 머슬맨”이라며 농담을 걸어오는 이들 덕에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아이도 조금씩 그 속에 녹아들었다. 여행 전 마음고생을 호되게 했던 아이는 어느새 뉴질랜드에서 마음껏 뛰고 웃었다. 한국, 특히 서울과 비교하면 어둡기 그지없고 지나는 이들마저 드물어 스산한 밤거리에도 거리낌 없이 함께 나섰다.

행선지가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놀이터에 환호했고, 한국에서라면 겁부터 냈을 놀이를 먼저 시도했다. 특히 콸콸 흐르는 강물 옆 숲속 캠핑장에 머물 땐 ‘집라인’을 타려고 이른 아침 일어나자마자 달려가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아이는 추운 캠핑카 안에서도 잘 잤고, 잘 먹었다. 한국에서보다 오히려 식사량이 늘었다. 혹시 몰라 챙겨간 상비약은 단 한 번도 먹지 않았다. 오랜 비행시간과 기류로 인한 흔들림에도 아이는 의연했다.

그동안 환하게 거리를 비추는 조명과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이어가는 가게들, 특히 음식 배달문화까지 한국의 일상적인 환경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느꼈다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 순간에 감사했다. 며칠이나마 뉴질랜드의 이방인이 되어, 사회적 약자로 지냈던 지금의 순간이, 앞으로 아이에게 닥칠지도 모를 억울하고 부조리한 상황에 ‘힘’이 될 수 있길 바랐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백운희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백운희

◇ 완벽히 낯설어지기에는 실패했지만,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갈 용기를 얻었다

우리는 돌아올 곳이 있다. 환대받지 못한대도 언제든 다시 돌아와 속할 곳이 있으니 낯선 땅이 불편할 순 있었으나, 절박할 필요는 없었다.

또한 우리가 지닌 정보와 경험, 언어 등의 자산은 우리가 ‘배척의 대상’이 되게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여행하며 무료 캠프 사이트가 많았음에도 안전을 생각해 유료 캠핑장을 이용했다. 캠핑카에도 화장실이 있지만 캠핑장에서 조금 더 편안하게 몸을 씻고, 세탁하며 요리를 하고 휴대기기의 배터리도 충전했다. 어린이가 있으니 먹을거리에 더욱 신경 썼고, 여행 경비 역시 여유롭게 책정했다.

그래서 나는 충만하였으나 또한 자책하였고 그리하여 침잠했다.

한국을 떠나 있었지만, 인터넷 연결이 되는 곳에서라면 언제나 한국의 소식을 확인했다. 뉴질랜드에서 접한 한국의 소식은 이랬다. 악화일로를 걷는 한일 관계 속에서 언설은 적대의 수위를 높여갔다.

땡볕이 연일 내리쬐는 도심 철탑 위에서 노동자가 단식을 이어가고 있고, 또 다른 곳에선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병에 걸린 아이의 엄마가 책임지지 않는 기업과 싸움을 위해 다시 거리에 나섰다. 나는 그들에게 물을 건네주지도, 그늘을 만들어주지도 못하는 처지에 발을 굴렀다.

한국에서 나는 기후를 걱정하며 에어컨 사용조차 꺼리는 사람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뉴질랜드에서는 장시간 비행해야 도착할 수 있는 외국을 여행하는 사람이었다. 비행기로 이동할 때 온실가스 배출량은 1km당 285g. 같은 거리를 놓고 봤을 때 자동차는 158g, 기차는 14g이 배출된다. 비행기를 타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기는 ‘플뤼그스캄(Flygskam)’의 배경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확실한 것은 나와 아이는 이번 여정을 통해 계속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다시 일상이다. 우리 사회가 보다 ‘환대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노력을 담아내는 일이 내게 숙제로 남았다.

*칼럼니스트 백운희는 여전히 육아와 관련한 이야기에는 흔들리는 눈빛과 팔랑거리는 귀를 가지고 초등생 딸을 키우고 있는 전업모입니다. 아이와 함께 부모로 성장하며 겪은 시행착오들을 통해 조금 덜 실망하고 좌절하는 육아 팁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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