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면 11월부터 꽃을 틔우기 시작하는 동백꽃. ‘동백’(冬柏)이라는 꽃 이름처럼 겨울에 찾아와 이듬해 봄이 올 때까지 핍니다. 다른 꽃들이 매서운 제주 겨울바람에 맥을 못 추는 사이 동백꽃은 고고한 자태를 선보입니다. 겨우내 제주는 동백나무 아래 수놓은 동백꽃이 레드카펫처럼 깔려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는데요.
그래서 겨울 제주 여행길에는 어느 곳에 가더라도 동백을 가꾸어 놓은 곳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시골마을의 작은 골목에서도 동백나무는 익숙한 듯 우리를 반기는데 겨울 추위를 이겨내며 빨갛게 물든 동백꽃은 여행자의 마음마저 설레게 만듭니다. 초겨울인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제주동백’ 해시태그가 걸린 수많은 게시물이 올라오는 것만 봐도 겨울 제주 동백꽃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 수 있는데요.
제주에 동백나무가 많이 있는 이유는 거센 바람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동백나무를 방풍림으로 심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주 마을마다 돌담과 도로변 곳곳에서 동백나무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동백은 크게 토종동백과 애기동백 그리고 홍동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요. 지금부터 제주에 만개하는 동백은 꽃잎으로 피고 지는 외래종인 애기동백(사상가)입니다. 애기동백들이 먼저 피어나고 나면 잎이 붉고 봉우리째 지는 한국 토종동백이 2월에서 3월까지 만개하고 그 뒤를 이어 홍동백이 제주를 붉게 물들입니다.
동백나무는 상록성 활엽수로 보통 7m 정도 자라는데요. 나무는 화력이 좋아 예전에는 땔감으로 활용되었고, 재질이 무척이나 단단해서 얼레빗, 다식판, 장기알, 가구 등 생활용품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잎을 태우고 남은 재는 버리지 않고 자색을 내는 유약으로 썼으며 동백기름은 머리에 바르면 그 모양새가 단정하고 냄새가 나지 않아 여성들의 머리를 단장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동백은 제주의 아픔을 간직한 제주 4·3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매년 4월이 되면 제주도민들의 가슴에는 동백꽃이 피는데요. 1948년 제주에서 발생한 4.3의 비극 때문입니다. 해방 이후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됐고 그 아픔은 지금도 여전히 제주도민과 제주 전체에 남아있는데요. 강요배 화백의 4·3을 주제로 한 그림 ‘동백꽃 지다’가 1992년 세상에 공개되면서 동백꽃이 4·3 희생자들을 기리는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2018년에는 70주기 4·3기념일을 맞아 유명 연예인과 정관계 인사들이 가슴에 동백꽃 배지 달기에 동참하면서 전국적으로 동백꽃 붐이 일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표적인 동백 관광지 몇 곳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먼저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리에 있는 ‘동백마을’인데요. 이곳에는 300년의 역사를 가진 설촌터이자 제주 지정 기념물인 ‘동백나무군락지’가 있는 곳입니다. 마을 곳곳에 수령이 300~400년 된 토종 동백나무를 볼 수 있는데요. 초겨울보다는 1~2월에 방문하시면 좋습니다. 주민들이 운영하는 동백방앗간에서는 동백 관련 체험도 할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사전에 꼭 문의해서 참여해 보시길 바랍니다.
다음으로 제주 중산간 마을인 선흘리에 있는 ‘선흘곶자왈 동백동산’입니다. 선흘곶자왈 동백동산은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동산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2011년 동백동산(59만㎡)이 람사르습지로 지정되고 2013년에는 동백동산이 있는 조천읍 선흘1리가 세계 최초로 ‘람사르마을’로 시범지정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 있는 ‘동백나무군락지’입니다. 어른 키보다 훨씬 키가 큰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인데요. 농장주가 1977년 씨를 뿌려 40여 년간 가꿔온 이 동백나무군락은 제주도 기념물 제39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황무지였던 땅에 동백나무를 심어 거센 제주 바람을 막았고 나무가 자라면서 황무지는 비옥한 농토가 되었습니다. 그 시간만큼 동백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게 된 곳입니다. 이 외에도 ‘카멜리아힐’과 ‘휴애리자연생활공원’, ‘상효원’에서도 다양한 테마로 이루어져 있는 동백꽃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다른 꽃들이 다 지고 난 뒤 추운 겨울에 피어나면서 더 주목받고 사랑받는 제주의 동백꽃. 겨울의 삭막함을 날려버리는 동백꽃 따라 제주 겨울여행 어떠신가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칼럼니스트 김재원은 작가이자 자유기고가다. 대학시절 세계 100여 국을 배낭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에 사는 '이주민'이 되었다. 지금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제주인의 시선으로 알리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에세이 집필과 제주여행에 대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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