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출생이 기록되지 않는 아이들
어디에도 출생이 기록되지 않는 아이들
  • 정가영 기자
  • 승인 2013.11.0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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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전문가들 "외국인 배제한 가족등록제 개선해야"

【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베트남 출신 여성노동자 응웬(가명) 씨는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게 됐다. 아이의 아빠도 한국인이 아니다. 아이를 함께 책임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응웬 씨는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 뒤 겨우 아이를 낳긴 했는데, 몇 주안에 다시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비자가 취소되는 상황. 하지만 한국에 오기 위해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베트남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아이만이라도 베트남에 보낼 생각에 방법을 알아봤지만, 대사관 관련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들어 포기했다. 결국 아이를 고아인 것처럼 해 보육원에 맡겼다. 그렇게라도 해야 아이가 출생신고를 하고 보살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응웬 씨는 아이가 보고 싶어도 만나러 갈 수 없다. 아이가 베트남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강제추방을 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샤룩(가명)은 한국 나이로 이제 6살, 경기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남아시아의 A국가 출신이고 어머니는 B국가 출신으로 샤룩이 태어날 당시 모두 난민 인정을 신청한 상태였다. 샤룩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우선 아이가 강제출국 당하지 않으려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서 신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방법은 부모와 같이 난민 인정을 신청하고 난민신청접수증을 받는 것밖에 없었다. 아이의 신분증이 고작 접수증이라니, 만약 난민 인정이 안 되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 걱정이다. 그렇다고 A국가, B국가 대사관에 가서 출생신고를 할 수도 없다. 정부의 박해를 피해 도망 나왔는데 무슨 피해를 입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민센터에 가서 출생신고서를 써서 제출했지만, 출생 내용은 없고 서류 접수에 관한 내용만 적힌 수리증명서를 발급해 줄 뿐이다. 천신만고 끝에 어머니가 난민 인정을 받아 샤룩도 같이 난민 인정을 받게 됐지만, 샤룩의 외국인등록증 국적 난에는 A국이라고 쓰여 있다. A국에서는 샤룩이 태어난 사실도 모르는 상황인데 무슨 영문인지 알 길이 없다. 부부는 아이가 제대로 출생신고를 했는지, 혹시라도 불이익은 없을까 걱정만 앞선다.


이처럼 대한민국에는 출생 등록 문제에 부딪혀 출생이 기록되지 않은 아이들이 있다. 난민신청자의 자녀나 미등록 외국인의 자녀, 무국적자의 자녀 등이 그러하다. 대한민국 출생등록제도는 일반적으로 부모 등 가족이 이미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돼 있어야 출생등록이 가능하다. 아니면 부모가 확인되지 않거나 없는 ‘기아’의 경우에만 등록할 수 있다. 이것도 아니라면 태어났어도 태어났는지에 대한 기록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아동의 인권 보장을 위해선 외국국적을 가진 아이들도 출생등록이 가능하도록 현행 대한민국의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가족관계등록제도가 아니라, 보편적 출생등록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강변한다.

8일 세이브더칠드런과 유엔난민기구, 국가인권위원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2층 제1소회의실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무국적과 이주배경 아동 출생등록에 관한 컨퍼런스’에서는 외국인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가족관계등록제도를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8일 세이브더칠드런, 유엔난민기구, 국가인권위원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2층 제1소회의실에서 공동으로 개최한 ‘무국적과 이주배경 아동 출생등록에 관한 컨퍼런스’에서는 외국인을 배제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가족관계등록제도를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정가영 기자 ky@ibabynews.com ⓒ베이비뉴스
8일 세이브더칠드런, 유엔난민기구, 국가인권위원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2층 제1소회의실에서 공동으로 개최한 ‘무국적과 이주배경 아동 출생등록에 관한 컨퍼런스’에서는 외국인을 배제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가족관계등록제도를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정가영 기자 ky@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세이브더칠드런이 최근 펴낸 연구보고서 ‘이주배경 아동의 출생등록’의 책임연구원인 김철효(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대학 사회학 박사과정 수료) 씨는 발제자로 나서 “출생등록은 여전히 아동의 신분을 국가기관이 증명해주는 제도라는 점에서 중요한 아동의 권리며 다른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 된다”며 “외국인을 배제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제도는 보편적 출생등록이라는 국제적인 기준을 고려해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출생등록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나이조차 확인할 수 없어 사법적인 부분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난민의 경우 가족 재결합 원칙에 있어 성인인 자녀는 가족재결합을 허용하지 않는데, 자녀의 출생등록 기록이 없으면 성인인지 아닌지 여부가 불분명해 이 부분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출생등록이 안 되는 것은 경제적, 사회적 권리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씨는 “한국은 신고하면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이 된다. 즉, 가족이 하나 생김을 확인해주는 것일 뿐, 가족이 아닌 사람이 출생등록을 하는 건 어렵다는 것”이라며 “외국인 부모가 출생신고를 할 경우엔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할 수 없는 사람이 신청한 것으로 보고 신고서는 ‘특종신고편철’로 처리, 보관한 채 수리증명서를 발급하는 게 전부다. 그들에겐 수리증명서가 유일하게 출산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가 이날 밝힌 자료에 따르면 영국이나 태국, 이탈리아의 경우 국내에서 출생한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보편적 출생등록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는 출생등록 시 불법체류자가 피해보는 것을 예방하는 차원으로 불법체류자의 발견에 관한 공무원의 통보의무를 면제하고 있다. 미국이나 호주는 출생과 함께 국적을 취득하는 속지주의이기 때문에 출생등록이 당연한 시스템이 된지 오래다. 보편적 출생등록이 여러 나라에서 일반화돼 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속인주의인 우리나라는 출생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편제가 되는 사건별 편제 방식의 출생등록제도가 아니라 한 개인의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기록을 편제하는 인적 편제방식에 따라 출생등록을 한다. 뿐만 아니라 그 편제가 개인 중심이 아닌 과거의 호적제도에 바탕을 둔 가족 중심으로 이뤄져, 개인의 출생을 증명하는 별도의 출생증명서도 발급되지 않는다. 이 같은 제도는 대한민국 국적자만을 위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외국인등록을 할 수 있지만, 이는 외국인의 체류관리일 뿐, 출생 등 개인의 신분을 등록 및 증명하는 제도가 아니다. 외국인이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되기 위해선 대한민국 국민이 혼인이나 입양 등을 통해 외국인과 새로이 가족관계를 형성했을 때 가능하다. 

 

1993년 9만 명이 채 되지 않던 국내 장기체류 외국인의 수는 불법체류자를 포함해 2013년 5월 현재 13배에 이르는 124만 명에 달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각종 제도와 시민 의식은 빠른 변화를 따라 가지 못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가족등록제도는 양성평등의 원칙에 입각해 개선됐지만 비국민에 대한 차별을 바탕으로 여전히 가족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고. 


김 씨는 “국내에서 출생한 모든 아동이 출생등록에 관한 최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선 모든 아동의 출생에 관한 사실을 공공기관이 기록하고 증명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현행 가족관계등록제도상 특종신고편철제도를 보완해 국내에서 출생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출생등록·증명제도를 마련할 수 있는데, 이때 아동의 권리에 관한 차별금지원칙과 아동의 최선의 이익 원칙이 준수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선 보편적 출생등록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국내에서 출생하는 모든 아동들에 대해 출생사실에 관한 내용을 정부기관에 신고하고 등록해 출생사실을 증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담당공무원의 ‘통보의무’ 면제 제도를 도입해 불법체류 외국인이 배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도 “보편적 출생등록제는 아동이 태어난 즉시 어떤 장벽도 없이 출생이 등록되는 시스템이며 주로 병원에서의 자동 등록을 통해 이뤄진다”며 “보편적 출생등록은 입양특례법 시행에 의해 신설된 입양 대상 아동의 출생신고 의무요건과 관련해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부장은 “병원을 통한 자동등록시스템에 의해 모든 출생 사실이 정부에 신고된다면, 아동의 부모가 난민신청자건 미등록 이주자건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현행 출생신고 시스템 전반을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는 출생등록제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반응이다. 장준호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는 “방향에 대해선 공감하나 출생등록제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출생등록제로 인해 출생등록을 두려워한 미혼모의 낙태문제나 의료기관에 가지 않는 일이 생길 수 있고 문화적인 부분도 있다. 가족관계법이 시행된 지도 얼마 안 된 상황에서 당장의 논의는 무리가 있다.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고 부처 간 협의가 이뤄져야지만 가능한 부분”이라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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