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여인, 그리고 바다의 왕자
해변의 여인, 그리고 바다의 왕자
  • 칼럼니스트 강백수
  • 승인 2014.07.2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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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없는 그 놈들의 헌팅 실패담

[연재] 강백수 에세이 '그래도 우리는 사랑을 하지'


대한민국은 반도 국가이다. 삼면이 바다로 되어 있어 해양 무역에 유리하며 풍족한 수산 자원을 얻을 수 있다지만, 이십대의 강백수는 그런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고 다만 여름이 오면 뜨거운 백사장의 모래알보다 빛나는 뭇 여성들의 비키니차림에만 정신이 팔려있었더랬다. 유흥문화가 발달한 한국에는 규모가 큰 클럽이나 나이트가 많은데, 여름이 되면 대자연과 인간의 욕망이 혼연일체가 되어 그 어떤 클럽이나 나이트와도 비할 수 없는 거대한 욕망의 공간이 탄생하니, 서로는 대천이라 하고 동으로는 경포대라 하고 남으로는 해운대라 하겠다.


2006년 여름, 고등학교 동창들과 청운의 꿈을 안고 무궁화를 탔다. 헐리웃 영화에 나오는 여름밤의 뜨거운 로맨스 같은 것 말이다. 여행의 낭만은 역시 기차지! 하며 친구들과 돈을 걷었을 때, 우리는 좌절하고 말았다. 당초 34일의 여행계획을 23일로 줄여도 간당간당한 처지였다. 당연히 입석으로 티켓팅을 하고 우리는 드디어 대천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대충 장을 보고 숙소를 잡았다. 오션 뷰의 낭만적인 민박집을 상상했으나 우리가 잡을 수 있었던 숙소는 볕이 들지 않고 낡은 이불쪼가리 몇 벌만 갖춰져 있었던 작은 사각의 방이었을 뿐이었다. 허름한 방 하나만 겨우 잡은 우리는 뜨거운 하룻밤 같은 건 비용 상의 문제로 포기했지만 그래도 최소한 여행이 끝난 후에도 연락을 지속할 수 있는 그런 만남을 기대해 보기로 했다.

 

바다는 넓지만 인생은 녹록치 않았다. 저렇게 날씬했는데도. ⓒ강백수
바다는 넓지만 인생은 녹록치 않았다. 저렇게 날씬했는데도. ⓒ강백수

 

밖으로 나와 한 시간 정도 물놀이를 하니 바로 기진맥진. 방에 들어와 고기를 구워 먹고 잠을 잤다. 엄청 잤다. 눈을 떠보니 벌써 밤. 이제 우리는 낮에 본 비키니 언니들과의 즐거운 여름밤을 위한 본격적인 행동을 시작해야 했다. 분홍색 파랑색 조명과 클럽뮤직까지. 마치 그 바다는 처음부터 남녀간의 헌팅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호기롭게 헌팅을 했다. 일행이 있단다. 또 헌팅을 했다. 자기들끼리 놀겠단다. 또 헌팅을 했다. 남자친구가 있단다. 또 헌팅을 했다. 집에 갈 거란다. 또 헌팅을 했다. 아까 거절한 그녀들이었다. 우리를 거절한 그녀들은 근육이 우락부락한 남자들을 만나 조개구이를 먹으러 갔다. 더 이상 해변에 말 한 번 붙여보지 않은 여성 무리들이 없는 것 같았던 그 무렵, 그나마 우리 중에 몸매가 제일 좋았던 한 녀석이 한 무리의 여자애들을 데려왔다. 우리도 보란 듯이 그녀들과 조개구이를 먹으러 가고 싶었다.

 

어느 정도 배가 찼을 무렵, 또 다른 전쟁이 하나 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먹고 튀려는 그녀들과, 먹였으니 같이 노래방이라도 가고, 민박집에서 술자리 게임이라도 해야겠다는 우리들의 보이지 않는 눈치게임이 시작되었다. 조개만 실컷 먹고 자꾸 피곤하다는 그녀들과 조금만 더 놀자고 애원하는 우리들. 결국 협상은 그녀들의 전화번호를 받고 내일 다시 이 바다에서 즐겁게 노는 것으로 타결되었다. 남은 밤을 숙소에서 우리끼리 노래방에 갔다가 라면에 소주를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다음 날, 오늘은 큰 고생없이 여자애들이랑 같이 놀 수 있겠구나 싶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낮의 물놀이를 즐겼다. 여자 일행들이랑 같이 온 근육남들도 부럽지 않았다. 그런데 오후 무렵 그녀들에게 전화를 했을 때 그녀들은 이미 서울로 올라가고 있다고 했다. 그 밤에도 몇 차례 헌팅을 시도했으나 이미 우리는 모든 의욕을 상실한 뒤였다. 대충 술을 마시고 신세한탄을 하며 잠이 들었다. 뜨거운 여름밤의 로맨스는 권상우같은 몸을 갖거나 요트를 한 척 사기 전까지는 어렵겠다고 판단하며, 이후로는 여름이 와도 바닷가 헌팅 같은 건 하지 않게 되었다.


*강백수는 2008년 등단한 시인이자 2010년 데뷔한 싱어송라이터이다. 2013년 정규 1집 앨범 <서툰 말>을 발매하였고, 2014년 산문집 <서툰 말>을 출간하였다. 그에게 사랑이란 말은 아직 어렵고, 결혼이란 말은 아직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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