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의 단꿈은 길지 않았다
동거의 단꿈은 길지 않았다
  • 칼럼니스트 강백수
  • 승인 2014.08.19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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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그 여자의 짧은 동거 이야기

[강백수 에세이] 그래도 우리는 사랑을 하지


스물일곱 살 프리랜서인 성은은 업무 차 부산에 내려오게 되었다. 부산에 아는 사람이 없어 적적하던 차에 대학시절 교양 수업을 함께 들은 적이 있었던 경환을 만나게 된다. 동갑내기인 그들은 당시에도 같이 조별 과제를 하며 꽤 가깝게 지내게 되었지만 그 때는 성은에게 남자친구가 있었기에 둘 사이가 특별해지지는 않았다. 몇 년 만에 만난 그들의 곁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고, 종종 술잔을 기울이다가 둘은 연인이 되었다.


사귄 지 한 달 만에 성은은 부산에서의 모든 업무를 마쳤다. 한 달. 연인의 애정이 가장 뜨겁게 끓어오를 시기에 장거리 커플이 된다는 것은 어쩐지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성은은 조금 더 부산에 머물기로 했다. 두 달 뒤 서울에서의 프로젝트까지 남은 두 달을 경환과 함께 보내기로 한 것이다. 단기 임대 방을 얻어 살게 되자 경환은 자주 성은의 집에 와 있었다. 어떤 때는 이틀, 어떤 때는 나흘. 얼마 지나지 않아 경환은 자신의 옷가지며 생활용품들을 성은의 집에 가져다 놓게 되었다. 둘의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마트에서 함께 장을 보며 둘은 마치 드라마 속 다정한 부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함께 생필품 쇼핑을 한다는 것이 무척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커플 잠옷을 사서 입었고, 화장실 칫솔 꽂이에는 칫솔 두 개가 나란히 꽂혔다. 아침과 저녁을 번갈아 차려 먹고, 무한도전을 보고, 캔맥주를 마시고, 편하게 섹스를 하고, 팔베개를 하고 잠이 들고. 함께 하는 모든 일상이 데이트였다.


그러나 보름정도 지났을까, 조금씩 둘 사이에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다. 성은은 경환의 사소한 습관들이 못마땅해지기 시작했다. 함께 입기로 한 잠옷은 일주일도 입지 않고 걸어두고 트렁크 팬티에 티셔츠를 입고 생활하는 것이 서운했고, 항상 칫솔꽂이가 아니라 세면대 위에 놓여있는 칫솔이 못마땅했다. 번갈아 하기로 한 설거지를 한 시간 두 시간 미루는 것이 싫어서 결국은 직접 하게 되었고, 팔베개를 해 주지 않고 등을 돌리고 자는 경환이 야속했다. 섹스 빈도가 줄어드는 것이 못내 불안했다.


경환은 항상 부스스한 모습인 성은이 더 이상 예뻐 보이지 않았다. 매일 사소한 일에 잔소리를 할 때면 내가 연인과 살고 있는지 엄마와 살고 있는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말도 안되는 일에 서운해 하는 것도 싫었다. 이를테면 그녀를 혼자 두고 게임을 한다거나, 부산에 친구가 없는 그녀를 두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나간다거나 할 때마다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서운한 티를 꼭 내고야 마는 것이 피곤했다. 벽을 보고 잠이 들어야 잠이 잘 오는 습관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이 싫었다. 섹스도 매일 하니 피곤했다. 섹스와는 별개로 가끔 야동을 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둘은 다시 장거리 커플이 되었다. 떠나는 성은은 경환에게 미안했다. 함께 사는 동안 항상 잔소리만 해 대던 자신의 모습을 돌이키니, 스스로 생각해도 참 싫었다. 기차역에서 결국 우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그녀를 보내고 방 정리를 하러 돌아오는 길, 경환은 드디어 답답했던 두 달이 끝났다는 사실에 쾌재를 불렀다. 당장 내일부터 할 일이 많았다. 친구들과 술도 마셔야 하고, 게임도 하고 야동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방에 도착해 짐을 싸고, 그 곳에서의 마지막 밤을 홀로 보냈다. 벽을 보고 누워있는데, 어쩐지 등 뒤가 허전했다. 벽을 등지고 돌아누웠더니 휑한 방에 우두커니 책상 의자 하나만 놓여 있었다. 경환은 아직도 자기가 그날 왜 그렇게 울었는지 잘 모른다.


둘은 한 달 후 헤어졌다.

 

*강백수는 2008년 등단한 시인이자 2010년 데뷔한 싱어송라이터이다. 2013년 정규 1집 앨범 <서툰 말>을 발매하였고, 2014년 산문집 <서툰 말>을 출간하였다. 그에게 사랑이란 말은 아직 어렵고, 결혼이란 말은 아직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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