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김고은 기자】
배꼽 아래 선명한 한 뼘 길이 흉터.
선천성 배설관 기형으로 태어난 민지에게 네 번의 대수술은 평생 잊기 힘든 상처를 남겼다. 생살을 찢은 자리를 몇 번이고 다시 찢으며 넘어야 했던 생사의 문턱. 갓난아기 민지는 어른도 견디기 힘든 수술을 온몸으로 견디며 간신히 살아남았다.
“애가 뱃속에 있을 때 산부인과 선생님이 ‘항문이 안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설마 했는데 민지는 정말로 항문 없이 태어났어요. 태어나자마자 수술실이랑 중환자실을 오가느라 아이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민지 아빠는 민지가 태어나기 직전부터 갑작스러운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불안한 증상이 하루에도 수차례씩 반복돼 자신의 몸조차 마음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아픈 아이까지 보고 있노라면 스트레스에 심장이 더욱 조여져 왔다. 뭘 어찌할 줄 모르는 자신을 보며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 쌓여갔다.
민지 엄마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딸아이와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남편. 어느 날 가출한 민지 엄마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인공항문을 민지 몸에 달고 치료를 지속하는 3년 동안 병원비는 빚으로 촘촘하게 쌓였다. 중식 요리사였던 민지 아빠는 공황장애와 광장공포증으로 일자리를 잃은 지 오래. 멀쩡하던 큰 딸아이는 엄마가 집을 나간 후 불안 증세가 급격히 심각해져 병원 치료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민지 아빠는 필사적으로 정신을 차려야 했다.
두 딸아이를 키워내기 위해 민지 아빠는 이를 악물었다. 생계를 이어야 했고, 두 딸의 치료비를 마련해야 했고, 이미 한참 쌓여있는 병원 빚을 갚아야 했다. 지역 구직 신문을 찾아 하루짜리 일도 마다않고 나갔다. 하지만 몸은 의지를 따라주지 않았다. 번번이 부모님께, 주변에 도움을 구해야만 했다.
아빠의 시름을 눈치라도 챈 걸까. 민지는 다행히 배설관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부분이 정상적으로 발달하며 비교적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다. 조금만 손길을 거치지 않으면 딱딱해지는 인공항문을 뭉뚝한 기구로 부드럽게 넓혀주고, 주기적으로 관장을 해야만 밥을 먹을 수 있지만, 다른 아픈 곳 없이 자라는 것에 아빠는 가슴을 쓸어내릴 때가 많다.
활발한 성격의 민지는 요즘 어린이집에서 3세 만의 사회생활을 톡톡히 즐기고 있다. 인공항문에서 의지와 상관없이 변이 흐르기 때문에 수시로 기저귀를 봐줘야 하는 것이 신경 쓰이는 일이지만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민지의 기저귀 가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 신경 써 주는 것 같아 고마움을 느낀다는 아빠.
“민지가 굉장히 활동적이에요. 이런 애를 제가 아파서 다른 집 애들처럼 평범하게 놀러 데려가 주지 못하는 게 미안해요. 저도 낫고, 민지도 완쾌하고, 민지 언니도 좋아지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민지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면 아이의 배설기관이 좀 더 발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요도와 질, 직장이 하나로 붙어 있어 각각 기능할 수 있도록 분리해야 하는데, 지금의 발달 상태에서는 분리 수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담당의사도 고개를 흔드는 어려운 수술. 수술이 실패하면 민지는 평생 소변주머니를 차고 살아야 한다. 수술비를 마련할 수 없어 걱정이 크지만 아빠는 민지가 완치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아픈 것 낳고 건강하게.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좋겠어요. 아이에게 바라는 건 그것뿐입니다.”
민지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강원지역본부 김주영 과장은 민지 가족을 위한 주변의 도움이 절실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수술비로 필요한 돈만 1000만 원이 넘는데, 이미 빚이 많이 쌓여 있어 막막한 실정이라는 것.
김주영 과장은 “민지가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일정 부분의 치료비를 지원할 계획으로 정기적인 후원자를 찾고 있다”며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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