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공감]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 바로 나
‘나’로 살던 내가 ‘엄마’로 성장하면서 느끼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 어디 털어놓을 곳은 없을까. 베이비뉴스는 엄마가 되고 성장해가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엄마 공감' 사연 공모 이벤트를 진행한다. '엄마 공감'은 '나'가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면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른 엄마들과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된다. 엄마들의 꾸밈없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완모하기'
'이유식은 엄마표'
'세 돌 지나면 어린이집 보내기'
아이를 낳은 후 나름대로 세웠던 계획이다. 나는 이 세 가지를 모두 지켰고, 고작 이런 것들로 스스로가 훌륭한 엄마의 모습에 한발 다가갔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아이의 세 돌이 지나고 예정대로 일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근처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처음하는 단체생활에 낯가림도 심하고 적응도 잘 못하는 성격이라 걱정이 많았다. 그리고 역시나 아이는 거부감이 심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전쟁은 시작됐다. 밥을 먹일 때도, 옷을 입힐 때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갈 때도, 카시트에 앉힐 때도 아이는 내게 “어린이집 안 가!”라는 말만 무한 반복. 안 된다고 하면 끝내는 울며 소리를 질렀고, 어린이집 앞에서는 발버둥을 치며 내 옷을 놓아주지 않았다.
또 어린이집에 들어가면 잔병치레로 고생한다더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감기에 걸려 힘들어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렸다. 집에서 쉬게 해주고 싶어도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줘야 하는 현실이 너무 원망스러웠고 나 자신이 한없이 무능하게 느껴졌다.
어린이집에 보낸 지 얼마 안 돼 해가 점점 짧아지더니 6시도 안 돼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1분 1초라도 더 빨리 가기 위해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을 하며 내달리기 일쑤. 그렇게 도착해 내 아이의 신발만 덩그런히 놓여있는 어린이집 신발장을 마주하는 순간, 미안함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 이후 몇 번이나 지는 해를 보았을까. 어느 날 아이가 "엄마, 깜깜한 거 세 개야. 깜깜해 세 개"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아이에게도 어두운 하늘은 충격이었는지 내가 어두울 때 데리러 간 횟수를 세고 있던 것. 그날 밤 밤새 흐르는 눈물을 참느라 참 힘들었다.
그렇게 눈물을 삼켜가며 어린이집에 보낸지 석 달. 아이 반 담임선생님께서 면담을 요청하셨다. 전화로는 좀 힘든 이야기가 될 것 같으니 직접 얼굴을 보고 말씀을 드리겠다고.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면담하며 긴장되고 몸도 떨렸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 선생님은 아이가 정서적 발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병원에 가서 진지하게 상담을 받아보라고 조언했다. 적응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말도 거의 하지 않는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은커녕 눈길도 잘 주지 않는다고.
"OO이는 대답을 안 해요. 사실 말도 거의 하지 않지만, 선생님들이 이름을 부르거나 뭘 물어도 대답을 안 하네요. 혹시 집에서도 그러나요?"
"아뇨. 제 앞에서는 말 잘하는데…"
낯가림이 유독 심하고 적응을 잘 못하는 아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른 아이들처럼 언젠가 웃으며 어린이집으로 뛰어들어갈 거라고 애써 위로했었다.
면담을 마치고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려고 아이를 찾다가 그동안 참고 참았던 감정이 울컥 쏟아졌다. 다른 아이들 틈에 끼지 못한 채 구석에서 혼자 무표정으로 앉아 있는 아이. 무심한 눈빛으로 앉아있던 아이는 자신을 부르는 사람이 엄마라는 걸 발견하고는 화사하게 웃으며 뛰어왔다. "엄마~~~"하고 내 품에 안기는 내 아가, 내 아이.
그동안 얼마나 혼자 힘들었을까. 내가 일하러 가기 싫은 그 심정처럼 아이도 그랬을까? 어린이집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다독여주지 못했으니 말도 못 하는 그 속은 얼마나 문드러졌을까. 아파도 어린이집에서 아파야 하고 다른 아이들이 다 가버린 텅 빈 어린이집에서 깜깜한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을 아이의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아이를 카시트에 앉히면서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운전을 하는 동안에도 나는 쉴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내가 눈물을 흘리는지 어쩐지도 모르고 한껏 신난 얼굴로 어린이집에서 뭘 했는지, 뭘 먹었는지, 뭘 봤는지 열심히 입을 움직여댔다.
그렇게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가시가 돼 내 가슴에 박혔다. 그날 집으로 가는 길은 그 어떤 날보다 멀었다.
이후, 우리 부부는 많은 얘기를 나눴다.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실제로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 다방면으로 알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를 더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조금은 더 지켜보자'였다.
분명 우리 아이는 낯가림도 심하고 적응력이 떨어지는 게 맞다. 하지만 그게 조금 더딜 뿐이지 도저히 큰 문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3년 남짓 가장 가까이에서 아이의 모든 걸 봐온 엄마니까.
그리고 올 봄, 다니던 어린이집이 5세 반을 없애면서 정원 300명의 꽤 큰 규모 어린이집으로 옮기게 됐다. 아이들이 많으니 그 안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 지 걱정이 컸다.
지금보다 더 큰 데로 가는 게 맞는 걸까? 아이들이 많으니 더 고립되면 어쩌지?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새로 옮긴 어린이집 선생님께도 똑같은 얘길 듣는다면 그때는 다 인정하고 치료든 뭐든 시작하자고 생각했다.
굳게 각오를 다진 내가 무색하게 아이는 빠르게 적응하기 시작했다. 담임 선생님도 첫 날부터 밥도 두 그릇이나 먹고, 인사도 잘하고, 말도 잘 한다고 칭찬해주셨다. 다음 날에는 어린이집에 빨리 가자며 내 손을 이끌기도 했다.
"물론 아이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어린이집 선생님만의 입장이잖아? 아이 의견은 들어봤어? 아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몰라~ 어린이집이 어떨지 누가 알고?"
아이 입에서 "어린이집 좋아~"라는 말을 들으며, 예전에 남편 직장 상사분께서 해주신 말이 생각났다. 맞는 말이다. 아마 모든 것을 아이의 책임이라 생각하고 병원으로, 상담센터로 데리고 다녔다면 아이의 상처는 더욱 깊어지지 않았을까.
그래.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 엄마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내가 정한 방법이 틀릴 수도,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상처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온전히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걸 잊지 말고 살아가야지. 난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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