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이중삼 기자】
[베이비뉴스 특별기획] 유모차는 가고 싶다
“유모차를 끌고 한번 까치산역을 이용할 때면 역무원 도움 없이는 혼자서 오르락내리락 못해요. 저같이 영유아를 키우고 있는 주변 친구들도 까치산역을 이용할 때면 불만이 많아요.”
15일 오후 지하철 5호선과 2호선 환승역인 까치산역에서 만난 이아무개(33. 여성) 씨는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 유모차를 지하철 승강장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까치산역에는 출구가 4곳이 있지만 지상으로 연결돼 있는 엘리베이터는 단 한 개도 없어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유모차를 동반한 시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유모차를 직접 들고 계단을 이용하거나 '유모차 탑승 금지'라는 메시지가 적힌 볼라드를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야 한다. 유모차를 직접 들고 가는 것이 힘들 때에는 역무원 호출 버튼을 눌러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알려진 서울 지하철의 엘리베이터 보급률. 실제 서울 지하철 역 가운데 88%가 엘리베이터만으로 지상에서 타는 곳까지 연결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국 지하철(튜브)의 경우, 현재 엘리베이터 보급률이 26%에 불과한 실정. 지난해 세계 최대 규모 여행정보 사이트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에서는 '서울 지하철을 꼭 타야 한다'며 서울 지하철 교통 시스템에 대해 극찬하기도 했다.
세계적 찬사에도 불구하고, 유모차 이용자, 장애인, 노인 등 교통약자들은 지하철 접근성이 만족스럽지 않다. 아직 엘리베이터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이 엄존하는 현실이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다고 하더라도 지상부터 지하까지 모두 완벽하게 접근성을 보장하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서울 지하철역(총 14곳)
3호선 교대역, 충무로역
5호선 까치산역, 종로3가역, 상일동역, 마장역(현재 공사 중), 마천역(2018년 공사 예정)
6호선 상수역(2017년 공사 예정), 대흥역
7호선 고속터미널역, 남구로역
8호선 복정역, 남한산성입구역, 수진역(2017년 공사 예정)
◇ 출구만 4곳…그러나 엘리베이터 없는 까치산역
까치산역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 아니다. 지상에서 대합실이 있는 지하 1층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는 없지만, 지하 1층에서 지하 2층 승강장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 1대가 있다. 하지만 이 엘리베이터는 정확하게 지하 2층 승강장으로 연결돼 있지 않다. 지하철 선로 위쪽의 별도의 공간으로 연결해주기 때문에, 승강장으로 가려면 또 다시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이 씨는 “지하부터 지상까지 한 번에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꼭 좀 만들어졌으면 한다. 까치산역에 경우 유모차를 이용하기 매우 불편하다”고 말했다.
15일 오후 기자가 직접 유모차를 끌고 5호선 지하철을 타고, 까치산역으로 찾아가봤다. 까치산역에 도착 후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지하 1층으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 거의 대부분의 시민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 앞에는 '유모차 탑승 금지'라는 메시지가 적힌 볼라드가 설치돼 있다. 이 메시지를 보고도 어쩔 수 없이 유모차를 끌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엄마들도 눈에 들어왔다. 유모차를 끌고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한 한 엄마는 “에스컬레이터가 위험한 것은 알고 있지만 계단을 이용하면 지상으로 나가기 힘들다. 물론 역무원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번번이 받기가 민망해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을 선택했다. 유모차를 들고 30여 개의 계단을 오르고 나서야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유모차 두 대가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매우 비좁았다. 대합실에 도착해 지상으로 나가기 위해 4곳의 출구를 돌면서 엘리베이터를 찾았지만 없었다. 결국 역무원을 호출할 수 있는 버튼이 각 출구마다 마련돼 있어 기자는 역무원 호출 버튼을 눌러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 지상으로 나갈 수 있었다.
◇ 12개의 ‘마의 구간’ … ‘경사로 만들어주면 좋을 텐데’
지난 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지하철 2호선 삼성역과 코엑스를 잇는 계단. 베페 베이비페어 행사장에 가기 위해 유모차를 끌고 온 김아무개 씨는 12개의 계단이 나타나자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이날은 베페 베이비페어 박람회 측이 고용한 유모차를 들어주는 아르바이트생 덕분에 계단을 오를 수 있었다.
김 씨는 "베이비페어가 열리지 않으면 유모차 들어주는 아르바이트생도 배치되지 않기 때문에 코엑스를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항상 올 때마다 불편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경사로 하나만 만들어주면 좋을 텐데 너무 아쉽다. 유모차를 끌고와서 사람들에게 유모차를 들어줄 수 있냐고 부탁하기도 민망하다"고 덧붙였다.
지하철 삼성역에서 하차해 코엑스로 가는 사람이라면 5·6번 출구 쪽 계단을 반드시 거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유모차를 들고 오르락내리락 하기 버거워 1·4·8번 출구 쪽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상으로 올라가 코엑스에 갈 수는 있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다음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는 등 거리도 멀고 불편해 대부분 엄마들은 할 수 없이 계단을 이용하고 있다.
삼성역은 다른 역사와 비교해 엘리베이터가 3대나 있기 때문에 유모차 혹은 휠체어 이용자가 지상으로 이동하기에 편리한 역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삼성역 이용자들이 주로 찾은 코엑스 건물로 들어가는 메인 통로, 삼성역 5·6번 출구 쪽에 설치된 계단이 교통약자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코엑스에서는 지난해 1년동안 여섯 차례의 육아박람회와 어린이박람회가 진행됨은 물론 아쿠아리움과 대규모 극장 등 다양한 문화·쇼핑 공간으로 많은 엄마들이 찾는 곳이다. 하지만 경사로 없이 계단으로 돼 있는 5·6번 출구는 엄마들 사이에서 ‘마의 구간’으로 여겨지고 있다.
◇ 당연히 많을 줄 알았던 광화문역, 딸랑 지상 엘리베이터 하나 … 불편한 진실
시민, 외국인 관광객 등 하루 약 9만 명이 방문하는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5호선 광화문역은 지상으로 연결되는 출구가 9곳이 있다. 이곳은 세종문화회관 쪽 출구들과 교보문고 쪽 출구들의 거리가 꽤 먼 것이 특징이다. 출구 선택을 잘못하면 건장한 청년이라도 다리가 아플 만큼 되돌아 걸어가야 한다.
광화문역에는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9번 출구 한 곳만 존재한다. 세종문화회관 방향이다. 이마저도 지하철 내에서 지상까지 바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에스컬레이터나 계단을 올라서 개찰구를 통과해야지만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은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해 계단을 올라가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으며,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들의 경우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지난 15일 아이와 남편과 함께 광화문을 찾은 박아무개 씨는 광화문역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했다. 박 씨는 "현재 아이와 외출을 할 때면 휴대용 유모차를 이용한다. 디럭스 유모차에 경우 남편이 없으면 광화문역 같은 경우는 이용하기가 매우 불편하다. 이러한 경우 역무원을 불러 도움을 요청하기는 하는데, 매번 불러서 도와달라기 미안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유모차를 끌고 온 한 엄마는 "광화문역에는 당연히 지하부터 지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을 줄 알았는데 찾지 못했다. 개찰구를 통과해야지만 엘리베이터를 찾을 수 있었다"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상임대표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나 유모차를 이용하는 엄마들에게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은 ‘곤혹’일 수밖에 없다. 단순하게 일반인 관점에서 장애인 엘리베이터를 하나 설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장애인의 입장으로 바라봤을 때, 장애인의 이동권을 충분히 고려해서 정부가 좀 더 세심하게 고민하고 신경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덧붙여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지하철에서 내렸을 때 엘리베이터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중요하며 지하철 내에서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표식도 잘 돼 있는지,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에서는 역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빠르게 도와주는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까치산역에 경우 보도폭이 협소해 현재까지 설치 계획은 없으며, 광화문역 역시 현재 엘리베이터를 추가 설치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삼성역의 경우, 삼성역 경사로 설치 검토는 잔여 천장고 부족으로 추진이 불가한 상태이며 구조물 확장에 관해서도 막대한 예산 소요로 추진이 어렵다. 다만 삼성역 계단구조 조정 등은 향후 영동대로 통합개발 사업 시 반영될 수 있도록 서울시 등 유관부서와 협의해 승객 이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 지하철 엘리베이터 보급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부족한 부분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까지 역 내부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미설치 역사에 대해서는 현재 단계적으로 설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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